랭킹1위이세돌전격휴직

입력 2009-06-09 0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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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9단. 사진제공 |타이젬

프로기사총회징계가결에큰충격…내달부터18개월간공식대국불참
국내 프로기사 랭킹1위 이세돌 9단이 바둑판에 돌을 던졌다.

이9단은 8일 오후 2시 10분께 친형인 프로기사 이상훈 7단을 통해 한국기원(이사장 허동수) 사무국에 휴직계를 제출했다. 이로써 이9단은 2009년 7월 1일부터 2010 년 12월 31일까지 18개월간 공식대국에 참가하지 않는다.

이9단은 최근 “정신적, 육체적으로 지쳐 대국을 할 수 없다”며 휴직할 뜻을 밝혀 왔다. 주변에서는 이9단이 지난 달 26일 프로기사 총회에서 자신의 징계 여부를 표결에 붙인 결과 찬성 86표, 반대 37표(기권 2표)로 징계 쪽이 압도적인 우세를 보인 데 대해 심한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프로기사 총회의 표결 결과는 다음달로 예정된 한국기원 이사회에 반영될 전망이다. 여기서 이세돌 9단에 대한 최종 징계 여부가 가려지게 된다.

국내 바둑 최강자의 휴직으로 한국바둑계는 당장 혼란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현재 진행 중인 기전들이다. 삼성화재배, 국수전, 명인전 등 4관왕에 올라 있는 이세돌은 거의 모든 기전의 본선에 진출해 있어 대다수 기전들이 파행 운영을 피할 수 없다.

국내 최고(最古)의 전통을 자랑하는 국수전의 경우 53년 기전사상 처음으로 챔피언 없는 타이틀전을 벌여야 할 국면에 놓였다.

만약 이들 후원사들이 기전 파행에 대한 책임을 한국기원에 물어 올 경우 기전 총 예산의 일부인 주관료로 살림을 꾸리는 한국기원으로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다. 내년도 기전 예산의 인상은커녕 있던 기전도 떨어져나갈 판이다.

1인자의 부재는 바둑 전체의 인기에도 영향을 미친다. 갈수록 바둑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이세돌이 18개월 동안이나 기전에 참가하지 않는다면 팬들이 대거 이탈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바둑계가 매년 최고의 빅 매치로 내세워 온 ‘이창호 vs 이세돌 카드’ 역시 휴지가 되어 버렸다.

이세돌 없이 앞으로 국제대회에서 한국이 얼마나 버텨줄지도 우려된다. ‘바둑 최강국’을 자랑하며 세계바둑계의 패자로 군림해 온 한국이지만 근년에는 중국에 맞서 힘겨운 싸움을 벌여 왔다. 한국은 2008 년 이후 9개 국제대회 개인전에서 5차례 우승했다.

이 가운데 4개가 이세돌이 가져 온 우승컵이다. 다른 국내기사들이 외국기사들에게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는 가운데 이세돌은 이들을 상대로 지난 해 13승 3패라는 독보적인 활약을 펼쳤다. 지금의 흐름이라면 이세돌이 없는 동안 한국은 중국에 많은 우승컵을 내주어야 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더욱 암울한 사실은 18개월이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바둑계를 떠났던 이세돌이 돌아왔을 때, 바둑계가 오늘과 같으리란 법이 없다는 사실이다.

부끄럽지만 1인자의, 그것도 불명예스러워 보이는 휴직은 한중일 바둑사를 통틀어 초유의 사건이다. 한국기원의 존재여부에 대해 심각하게 고려해봐야 할 상상 못할 사고다.

중국과 일본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바둑계가 이 사건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번 일로 그 동안 세계바둑계의 선도부 역할을 해 온 한국바둑은 치부를 고스란히 내보이고 말았다. 한국기원 64년 역사에서 가장 망신스런 사태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이9단의 휴직 소식에 바둑팬들은 한국기원 홈페이지와 사이버오로, 타이젬 등 바둑사이트 게시판에 댓글을 쏟아내며 뜨겁게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

한시가 급한 상황임에도 7월 2일에야 이사회를 여는 한국기원의 변함없는 늑장행마도 도마 위에 올랐다.

한국기원은 휴직계를 들고 온 이상훈 7단에게 “휴직을 재고해 달라”며 만류했지만 이세돌 9단의 뜻을 돌리는 데는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기원은 “이9단의 휴직에 대해 현재로서는 어떤 입장도 밝힐 수 없다. 모든 것은 이사장에게 보고 후 결정될 것이다”라고만 간단히 밝혔다. 한국 바둑이 이세돌 한 사람 때문에 참 딱하게 됐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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