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영37세인생,별로지다

입력 2009-09-02 0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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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의 삶은 그 누구보다 빛나고 아름다웠습니다.’  배우 장진영이 1년여의 위암 투병 끝에 1일 세상과 작별했다. 동료 배우들과 측근들은 “연기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순수함을 간직한 배우”로 고인을 추억했다.    스포츠동아DB

 

위암발병1년만에악화…입원하루만에숨거둬“가족·연인에작별인사…그리고편안히잠들었다”
신부전을 동반한 호흡부전으로 4시 5분경 사망했다. 보호자하고

인사를 나눴다.

어제 처음 올 때부터

안 좋은 상황이었다.

호흡도 불규칙했고,

혈압도 낮았다.

저녁에 잠깐 깨어났다가 오늘 점심 12시경 호흡이 안 좋아지면서

4시경 기점으로 운명했다.

임종하는 순간에

의연한 자세로 가족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어떤 분들보다

편안하게 잠들었다.


- 담당 주치의 소견

염창환 교수


‘국화꽃 향기를 남기고 간 당신.’

스크린을 빛내던 별이 졌다. 배우 장진영(37)이 1년여에 걸친 위암 투병 끝에 1일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다. 장진영은 8월31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 서울성모병원에 급거 입원, 하루 만인 1일 오후 4시5분께 결국 마지막 숨을 거두고 말았다.

병원 측은 이날 “신부전을 동반한 호흡부전”이 사망 원인이라고 밝히고 “입원 당시부터 불규칙한 호흡과 낮은 혈압 등 상태가 좋지 않았다”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병원에 따르면 장진영은 영면 순간 가족, 친구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등 짧은 생과 이별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의연함을 보였다. 병원 측은 “어느 누구보다 평안하게 잠들었다”는 짧은 말로 숙연함을 샀다.

고인이 숨을 거둔 뒤 5분이 흐른 이날 오후 4시10분께 유가족과 측근들은 병실에서 나와 빈소가 차려진 서울 풍납동 아산병원으로 향했다.

고인과 이별을 미처 준비하지 못했던 탓에 빈소를 마련할 경황조차 없었기 때문이었고 좀 더 큰 공간에서 생전 그녀를 추억하는 이들을 맞기 위해서였다. 장진영의 시신은 곧바로 엘리베이터로 이동, 성모병원 지하 3층에 대기 중이던 구급차에 실려 빈소로 옮겨졌다.

장진영은 지난해 9월 위암 선고를 받고, 힘겹지만 치유의 희망을 잃지 않는 굳은 의지로 병마와 맞서왔다.

최근에는 미국으로 요양 치료를 다녀와 ‘상태가 호전됐다’는 희망적인 소식을 팬들에게 직접 전하기도 했으나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암세포를 이겨내려는 당당한 의지와 함께 장진영은 ‘영화 같은 사랑’도 팬들에게 전해 더욱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사업가인 김 모 씨와 1년간 꽃다운 사랑을 싹틔워온 것이다.

장진영이 “힘겨웠던 투병 생활에서 가장 큰 힘이 됐다”고 팬들에게 소개한 김씨는 연인의 마지막 순간까지 곁을 지켜 위대한 사랑의 힘을 몸소 보여줬다.

고인의 소속기획사인 예당 엔터테인먼트는 이날 “마지막 순간까지 삶의 끈을, 배우의 대한 열정을 불태웠던 그녀”로 장진영을 기리며 “마지막에도 미소로 아름다움을 잃지 않았다. 작품을 통해 보여준 고인의 열정을 기억할 것”이란 입장을 밝혔다.

1993년 미스코리아 충남 진에 선발되며 연예계에 데뷔한 장진영은 2000년 영화 ‘반칙왕’과 2001년 ‘소름’, 2002년 ‘오버 더 레인보우’에 잇달아 출연하며 충무로의 기대주로 떠올랐다.

장진영의 연기 열정이 더욱 빛을 더한 때는 2003년. 영화 ‘싱글즈’와 ‘국화꽃 향기’를 통해서였다. 2005년 영화 ‘청연’에서 최초의 여성 비행사인 박경원을 연기했던 그녀는 영화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서 절정의 연기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생전 마지막 작품은 2007년 SBS 드라마 ‘로비스트’가 됐다.

허민녕 기자 justi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 이정연 기자 annjo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동아닷컴 박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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