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소녀, 남자가 되어 날다

입력 2009-11-28 21:4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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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 자른 머리, 중성적인 목소리, 털털한 성격 그리고 가슴을 꽁꽁 동여맨 압박 붕대…. 남장(男裝) 여자가 뜨고 있다.

SBS 드라마 '미남이시네요'에서 여주인공 박신혜는 남성 4인조 꽃미남 아이돌 그룹의 멤버로 들어가 좌충우돌 해프닝을 벌인다. 사고로 활동을 못하게 된 쌍둥이 오빠의 자리를 메우기 위해 남장을 하고 투입된 것.

MBC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주인공 덕만 역의 이요원이 화랑도 낭도 복장을 하고 백제와의 전투에 참가했다. 좀더 거슬러 올라가면 '바람의 화원'(2008, SBS)의 문근영, '커피프린스 1호점'(2007, MBC)의 윤은혜도 남장 여자 신윤복과 고은찬 역으로 화제를 모았다.

해마다 남장 여자 캐릭터가 드라마에 나오는 이유는 뭘까.

\'바람의 화원\' 화가 신윤복(문근영). 문근영은 당시 보수적인 화풍에 반발해 자신만의 자유로운 예술적 세계를 펼치는 남장 여자 신윤복으로 열연했다.

▶ 중성적 외모에 흔들리는 여심

우선 '미소년 이미지'로 드라마의 주요 시청층인 여성들을 공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장 여자 드라마의 시청자 반응은 대개 "언니, 정말 멋있어요~!"다. 여학교에 한두 명 있는 보이시한 선배가 얼마나 많은 밸런타인데이 초콜릿을 받는지 다녀본 사람은 안다. 멀리는 1988년 '담다디'를 불렀던 가수 이상은에서 최근 걸그룹 '에프 엑스'의 엠버까지 남자인지 여자인지 헷갈리는 언니들에겐 진짜 오빠 못지않게 오빠 부대들이 따르기 마련이다.

남장 여자에 대한 호감은 그녀의 댄디한 남장 패션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말쑥한 슈트에 보타이를 매치하거나 클래식한 슈트에 컨버스화를 신는 박신혜의 믹스매치 패션은 '미남 룩'으로 불리며 10~20대 여성들의 완소(완전 소중한) 스타일이 됐다.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 윤은혜가 아무렇게나 걸쳐 입었던 티셔츠도 '톰보이' 스타일로 불리며 한동안 유행했다.

SBS 드라마 '미남이시네요'의 주인공 정용화 (강신우 역), 박신혜 (고미남/고미녀 역), 장근석 (황태경 역), 이홍기 (제르미 역). 수녀를 꿈꾸던 고미녀가 쌍꺼풀 수술 부작용으로 미국에 재수술 받으러 간 쌍둥이 오빠 고미남을 대신해 아이돌 그룹 A.N.JELL(에이 엔젤)에 구성원으로 들어가며 벌어지는 해프닝으로 담고 있다.


▶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한 동경

남장 여자 캐릭터를 '동성애' 코드의 차용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동성애 코드는 2005년 영화 '왕의 남자'의 성공 이후 대중 문화계의 인기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금지된 사랑 동성애는 극중 멜로적인 갈등을 유발하는 좋은 소재이기 때문이다.

'왕의 남자'가 예쁜 남자 신드롬을 만들어내며 1000만 관객 돌파에 성공하자 '후회하지 않아'(2006) '앤티크' '쌍화점'(2008) 등 동성애 영화가 줄줄이 개봉했다.

영화계에서 성공한 동성애 코드는 '남장 여자'로 수위 조절을 한 뒤 안방극장으로 옮겨왔다. 남장 여자와 진짜 남자와의 사랑은 동성애적인 갈등을 유발하지만 '저 예쁜 소년은 여자였다'는 '안전장치'를 둘러놓는 식이다. 결국 남장 여자는 여자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극적인 갈등도 깔끔하게 해결된다.

'미남이시네요'에서 아이돌 그룹의 멤버인 제르미(이홍기)는 고미남(박신혜)이 여자라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하고 남자에게 끌리는 자신의 감정에 혼란을 느낀다.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도 남장여자 은찬(윤은혜)과 한결(공유)이 이성애와 동성애를 넘나드는 아슬아슬한 사랑을 하지만 결국 은찬의 정체가 드러나 행복한 결말을 맺는다.

'바람의 화원'에서는 남장여자 신윤복(문근영)이 남자 주인공인 김홍도(박신양)보다는 기생 정향(문채원)과 애틋한 멜로 연기를 펼쳐 좀 더 진보적인 동성애를 선보였다.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 남장 여자 ‘은찬’ 역을 맡아 인기를 얻은 윤은혜.

▶ 남자들과 잦은 스킨십 대리 만족

남장 여자라는 설정은 사회적인 성 역할 굴레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여성 캐릭터를 그려내기에도 유리하다. '바람의 화원'과 '선덕여왕' 모두 시대를 앞서간 여성이 주인공이다.

'바람의 화원'에서 남장 여자 신윤복은 보수적인 화풍에 반기를 든 천재였다. 그가 남장을 하지 않았다면 남성 중심의 미술계에서 자신의 화풍을 소신 있게 펼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우리 역사 최초의 여왕을 다룬 '선덕여왕'에서 주인공 덕만은 여왕이 되기 전까지 고난의 시기를 남장 여자로 살아냈다.

금녀의 영역에 들어선 남장 여자는 표면상 남자이기 때문에 다른 남자 캐릭터들과 스킨십이 자유롭다. 이런 잦은 스킨십에 여성 시청자들은 대리만족을 느낀다.

남장 여자 배역은 여배우들이 연기력을 인정받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바람의 화원' 문근영은 그 해 연기 대상까지 거머쥐며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걸그룹 '베이비 복스' 출신 윤은혜도 은찬 역을 맡은 뒤 연기자로 거듭 났다. '선덕여왕'의 타이틀 롤을 맡은 이요원은 벌써부터 연기대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최현정 동아닷컴 기자 phoeb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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