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 스틸컷.
한국영화 대호평…잇따른 수상
필름마켓서도 해외바이어 관심
“마음을 비우고 우리만의 방법으로 관객과 소통하다보면 상은 저절로 올 듯하다.”
24일(이하 한국시간) 제63회 칸 국제영화제(이하 칸 영화제)에서 영화 ‘시’로 각본상을 수상한 이창동 감독의 소감이다.
이번 영화제 경쟁부문에서 호평을 받으며 수상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은 그는 그 부담을 떨쳐내지 못했다. 이 감독은 “내심 윤정희 선생의 여우주연상을 기대했다”고 말했고 윤정희는 이에 “영화제는 올림픽에서 기록이나 승패를 겨루는 게 아니다. 나 자신부터 거기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걸 비우면 내게 큰 에너지가 될 것 같다”고 화답했다.
두 사람의 말처럼 ‘시’는 자신을 비운 듯 살아가던 60대 여인 미자가 시를 배워가는 과정에서 인생의 아름다움을 꿈꾸는 이야기다. 미자는 홀로 돌보던 외손자의 비행으로 인생의 뜻하지 않은 고통에 맞닥뜨리게 된다. 삶의 아름다움과 고통 사이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미자는 과연 누구일까.
이창동 감독의 ‘시’는 그런 화두를 관객에게 던졌고, 잘 짜여진 구성과 스토리로 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번 각본상 수상은 2007년 ‘밀양’으로 여우주연상을 전도연에게 안겨주고, 지난해에는 경쟁부문 심사위원으로 활약한 데 이은 것으로 그가 세계적인 거장의 반열에 올랐음을 말해준다. 그는 ‘초록물고기’ ‘박하사탕’ ‘오아시스’ ‘밀양’ 그리고 ‘시’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깊은 본성에 대한 내밀한 탐색과 치열한 문제 의식을 드러내왔다.
한국 영화는 올해 칸 영화제에서 알찬 수확을 거뒀다. ‘시’ 외에 홍상수 감독의 ‘하하하’가 한국영화로는 처음으로 주목할 만한 시선상을 받았다. 경쟁 부문의 ‘하녀’와 비평가주간에 초청된 장철수 감독의 장편 데뷔작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도 해외 언론의 좋은 평가를 이끌어냈다. 필름마켓에서도 ‘시’ ‘하녀’ ‘악마를 보았다’ ‘포화속으로’ 등의 작품이 해외 바이어들의 관심을 모았다.
이런 성과는 그동안 한국영화가 이뤄낸 성취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국영화는 2000년 임권택 감독이 ‘취화선’으로 사상 처음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이어 2002년 임 감독이 ‘춘향뎐’으로 감독상을, 2004년 ‘올드보이’와 2009년 ‘박쥐’로 박찬욱 감독이 각각 심사위원대상과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하지만 한국영화는 이런 해외 영화제에서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흥행만을 위한 특정 소재 및 장르에 쏠렸고, 신선한 기획력이 뒷받침되지 못했다. 원활하지 못한 제작 투자 환경 역시 아쉬움을 남긴다. 좀 더 다양한 영화에 대한 영화계 내부의 관심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창동 감독은 25일 귀국할 예정이고, 윤정희는 남편인 피아니스트 백건우 씨가 29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을 해 26일 한국을 찾는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칸(프랑스)|김원겸 기자 gyumm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