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7전8기’ 김길중 “박효신 스승? 사실은…”

입력 2013-05-23 09:3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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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김길중은 “대중과 음악으로 공감하고 소통하는 뮤지션으로 남고 싶다”고 말했다. 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제가 가수 박효신의 스승이라고요?”

가수 김길중(31)은 “말도 안 된다. 어떻게 그럴 수 있나”라며 손사래를 쳤다. 어디서 어떻게 시작된 소문인지 본인도 의아해했다. 오히려 나이도 박효신이 더 많다. 하지만 여전히 포털 사이트에서 그의 이름을 검색하면 ‘박효신 스승’이라고 적힌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김길중은 사연이 있을 것만 같은 감성, 허스키한 음색, 절규하는 듯한 고음으로 귀를 쫑긋 세우게 하기 매력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 이렇다 할 빛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초등학생 시절 가수 김수희의 ‘정거장’이란 노래를 수없이 따라 부르며 시작된 김길중의 음악 인생은 7전 8기,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급하게 갈 마음은 없어요. 생활고에도 시달려보고 밴드를 하며 여러 일을 겪다 보니 결국 내가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죠. 천천히 그리고 오랫동안 이 길을 걷고 싶어요.”

대학교에서 실용음악을 전공한 김길중은 2004년 방영된 KBS ‘오! 필승 봉순영’의 O.S.T에 참여하며 가수로 데뷔했다. 이후 스플래쉬로맨스와 비갠후라는 밴드를 통해 다양한 음악인생을 살아왔다. 그는 지난해 개봉한 영화 ‘퍼펙트게임’에서 O.S.T인 들국화의 ‘그것만이 내세상’을 열창해 뛰어난 가창력을 뽐내기도 했다. 당시 영화를 본 관객들이 O.S.T를 부른 가수가 누군지 궁금해 찾아봤을 정도다.

그런 김길중이 최근 생애 첫 솔로 앨범인 ‘바람불어’를 발매했다. 모든 가수가 그렇듯 김길중에게 이번 앨범이 갖는 의미는 크다. 삶의 큰 숙제 중 하나를 해결한 셈이기 때문이다.

‘바람불어’는 애절한 록 발라드 곡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한 남자의 슬프고도 아픈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녹음 하며 많이 울었어요. 노래를 부르다 보면 문득 옛날 생각이 나서 많이 울었어요. 노래 가사와 제 과거 이야기가 많이 닮아있거든요. 누군가를 좋아해 본 사람들이라면 모두 공감할 수 있을 거예요.”

특히 김길중은 “‘세상을 내 멋대로 살아 이 모양 이 꼴입니다’라는 가사가 마음에 파고 들더라”며 “사실 나는 고집이 굉장히 세다. 사랑을 해도 주장이 강해 상대방이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만난 김길중은 고집만큼이나 마음속에 희로애락을 품고 사는 사람이다. 그에게 노래를 잘하는 비결을 묻자 “잘한다는 칭찬이 감사할 따름이다”라고 쑥스러워하면서도 “내가 느끼는 감정을 대중이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한다.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 그것이 노래의 매력이다”라고 소신 있는 답변을 내놓았다.

인터뷰가 진행되면 될수록 그의 음악과 인생이 궁금해졌다.

가수 김길중. 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김길중의 ‘희로애락(喜怒哀樂)’

-희(喜)
“실용음악을 전공하던 대학생인 것 같아요. 1학년 때 가수 김연우 씨가 지도 교수였는데 전인권과 임재범, 윤도현에 빠져 살던 제 노래를 듣더니 ‘목소리에 개성이 없다’며 마이클 볼튼(Michael Bolton)의 음악을 추천해주셨어요. 당시 제겐 신선한 충격이었어요. 세상에 ‘예쁜 허스키 보이스’도 존재할 수 있다는 걸 그때 알게 됐죠. (웃음)”

-로(怒)
“비갠후라는 밴드 활동을 할 때인 것 같아요. 열정이 대단하던 때였죠. 하지만 밴드를 하며 자신감을 많이 잃었어요. 그때 살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노래 부르는 게 재미없다고 느꼈었어요.”

-애(哀)
“어려서부터 피아노를 배우고 싶었어요. 그래서 피아노를 가지고 싶어 했지만, 집이 부유한 편은 아니었기에 피아노를 남들처럼 쉽게 살 수 있는 여건이 안 됐어요. 아르바이트도 하고 열심히 일을 하며 꿈을 좇았어야 했는데 부모님 도움만 받으려고 했어요. 열심히 생활하신 부모님 덕에 다행히 학비에 대한 부담 없이 학창시절을 보냈어요. 지금 생각하면 당시의 저를 이해할 수 없지만, 그때는 그냥 그렇게 노래만 하면서 살았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전 정말 고집이 센 놈 같아요. 남들은 레슨을 해서 돈을 벌었지만, 저는 그마저도 제대로 하지 않았어요. 겨우 가이드 녹음을 몇 번 하는 정도였죠. 그런 저를 위해 아버지께서 정년퇴직 후 일을 하시다 병을 얻었고 결국 몇 년 뒤 돌아가셨어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슬프고 힘들…. (그는 끝까지 말을 잇지 못했다. 한참 시간이 지난 뒤에야) 지금도 생각하면 눈물을 참을 수가 없어요.”

-락(樂)
“사실 요즘이 가장 행복하고 즐거워요. 가수라면 자신의 앨범을 내는 게 당연하고 쉽다고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자기만의 노래를 시작하는 한다는 것은 정말 엄청난 일이에요. 저의 이야기를 제 이름이 적힌 앨범으로, 또 제 노래로 할 수 있어 매우 즐거워요.”

앞으로 대중들은 어디에서 어떤 음악으로 김길중을 만나볼 수 있을까.

김길중은 “장소와 상황을 가리지 않고 무대에 서고 싶다. 애절한 발라드와 록 음악을 더 열심히 할 생각이다”며 “만약 기회가 주어진다면 시간이 좀 더 지나 블루스와 트로트에도 도전해 보고 싶다. 틀에 갇히지 않고 다양한 모습으로 대중들과 만나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다. 여기 누구보다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싶은, 이르진 않지만 그렇다고 늦지도 않은 신인 가수가 있다.

“2000년도 초반에 온라인에 노래하는 동영상을 올리고 누리꾼들에게 사랑받던 시절 제 카페가 있었어요. 회원도 3만8000여 명이나 됐었죠. 그런데 그분들 지금 어디 계신가요. 네? 제발 다시 돌아와 주세요.”

이제 곧 여름이다. 더위를 잊게 해줄 시원한 바람을 기다리듯, ‘바람 불어’를 외치는 김길중의 활약을 기대해 보는 건 어떨까.

동아닷컴 오세훈 기자 ohhoon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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