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위키드’ 김선영 “‘여왕’ 수식어, 민망하면서도 책임감 생겨”

입력 2014-07-07 10: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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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배우 김선영은 팬들 사이에서 일명 ‘여왕’이라 불린다. 그의 아름다운 외모도 외모지만, 카리스마로 무대를 장악하는 모습이 흡사 한 나라를 지배할 것 같은 고귀한 ‘여왕’ 같아서 일 것이라. 그런 그가 잠시 ‘왕관’을 내려놓고 고깔모자를 쓰고 지팡이를 잡는다. ‘여왕’ 직함도 떼고 ‘초록마녀 엘파바’라는 이름표를 달고 ‘위키드’ 무대에 섰다.

“역할을 가리지 않고 하고 싶어 하는 스타일이에요. 작품은 말할 것도 없었고 역할도 나무랄 데가 없었죠. 제 취향이기도 하고…. 동화 같은 작품을 좋아해서요. 게다가 메시지도 있고 보고 나오면 행복하고요. 이런 작품이 또 어디 있겠어요. 이 때 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았죠. 물론 고민도 많이 했죠. 아무래도 처음부터 함께 한 사람이 아니라 호흡이 잘 맞을지 걱정했어요. 그런데, 그런 걱정은 조~~금 했고요. ‘위키드’는 그런 두려움마저 사라지게 하는 작품이라 주저 없이 선택했어요.”

명작 ‘오즈의 마법사’의 프리퀄(오리지널 필름에서 왜, 어떻게 사건이 일어났는지 설명하는 기능)과도 같은 ‘위키드’. 태풍에 휘말려 오즈로 날아온 도로시가 겁 많은 사자와 심장이 없는 양철통 등과 함께 초록마녀가 사는 성으로 가 물에 녹여 죽인다는 이 이야기는 어렸을 적 우리가 재미있게 들었던 동화다. 그 ‘도로시’가 오즈로 오기 전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위키드’는 브로드웨이를 비롯해 세계 각국에서 사랑받은 뮤지컬이다. 특히 김선영이 맡은 ‘엘바파’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좇는 신(新)여성 캐릭터. 오즈의 동물들이 점점 말(言)을 잃어버리는 비정상적인 일이 일어나고 엘파바는 사건의 전막을 알게 된다. 이에 그는 이를 바로잡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고 이를 본 사람들은 그가 ‘사악한 마녀’라고 외면해버리고 죽여 버리려고 하고 엘파바는 이에 맞서게 된다.

한때 김선영도 그런 때가 있었다. 불의에 참지 못하고 불합리한 것을 못 견뎠다. 그는 “정의감인지 무모함인지 모를, 하지만 ‘엘파바’와 같은 구석이 내게 있었다”며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사회생활을 하다보니 타인의 시선도 신경 쓰이고 이상적인 현실은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변한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엘파바를 연기하며 자신의 생각도 같이 무대로 던지고 있다고 했다.

“극중 엘파바는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왕따를 당했고,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쫓겨나잖아요. 그렇지만 그런 고난을 통해서 성숙하고 성장하는 아이예요. 사실 우리네 삶이나 엘파바의 인생은 비슷한 것 같아요. 우리 모두 성장통을 겪으며 자라잖아요. 알게 모르게 미움도 당해보고 자책해보기도 하고요. 저도 지난 10년간의 배우의 삶을 돌아보면 ‘내가 그 땐 참 아팠구나’하는 지점이 있어요. 또 작품의 이야기가 주는 메시지를 통해 배우는 점도 참 많았죠. 그동안 깨닫지 못했던 것을 상기시켜 주기도 하고요. 그렇게 배우나 우리의 삶을 말하는 작품도 함께 성장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걸까. 김선영이 연기하는 ‘엘파바’는 뭔가 다르다. 김선영보다 먼저 지팡이를 잡았던 옥주현과 박혜나가 오리지널 ‘위키드’의 감동을 고스란히 전달한다면 김선영은 노래를 부르거나 대사를 말할 때 그만이 갖고 있는 특유의 호흡과 감성이 나온다. 그렇다고 큰 차이는 아니다. 단지 한 템포를 쉬며 말한다든지, 노래를 하는 그런 미세한 차이에서 나오는 큰 ‘다름’이다.

“특별히 차별점을 두겠다는 생각은 한 적이 없어요. 온전히 제 안에 있는 것을 솔직히 꺼내보자고 생각했죠. 최대한 발휘해보자고 마음먹었어요. 엘파바는 다양한 면모가 있는 아이잖아요. 격하게 분노하거나 화내는 반면 마음이 따뜻하고 남을 보살필 줄 아는 마녀예요. 그렇기에 단편적인 인물이 아닌 풍부한 인물로 보였으면 좋겠어요.”


‘위키드’는 배우들이 휴일도 자동반납하게 하는 혹독한 훈련과 연습시간을 자랑하는 작품 중 하나다. 작년 9월부터 시작된 연습은 하루 12시간, 36명의 배우들이 모두 참석하는 것은 기본 철칙이다. 김선영에게 지팡이를 넘긴 옥주현 역시 “역대 가장 힘든 연습”이라며 “지켜야 할 약속도 많고 매우 힘들다”고 토로했을 정도다.

“(옥)주현이가 ‘언니, 뭐 해야 할 것 되게 많아요. 진짜 힘들어요’라고 하더라고요. 각오하라는 소리겠죠? 하하. 다른 배우들에게도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거라 각오를 하고 임했어요. 근데 정말 힘들더라고요. 인터미션(1막과 2막 사이 쉬는 시간)때도 거의 쉬지 못해요. 처음에는 체력 안배를 잘 못해 죽을 뻔 했는데 지금은 괜찮아요. 특히 저는 중간에 투입돼서 그동안 호흡을 맞춰왔던 사람들과 해야 했죠. 그런데 혼자 투입되니 그동안 잊었던 것이 기억이 나더군요. 다른 사람과 합을 이루기 위해 힘든 과정을 겪고, 그 여정을 거쳐 발을 딛고 무대에 서는 순간의 성취감이요. 늘 무대에 오르니 당연시 생각된 성취감이 ‘위키드’에선 다르게 느껴져요. 진짜 힘든 건 뭐나면, 힘들어도 그렇게 보이지 않게 하는 거예요. 하하. 관객은 우리 모습을 보고 즐거워해야 하잖아요. 저도 관객석에서 즐겁게 본 이유도 무대 뒤에선 구슬땀을 흘린 배우들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여성관객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뮤지컬산업은 덕분에 남배우를 톱으로 세우는 공연이 허다하다. 물론 여배우도 주연을 하지만 이야기의 흐름 상 남성 캐릭터 중심인 경우가 대다수라 여배우의 존재감이 희미한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시장에서 김선영의 존재감을 대단하다. 그는 무대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꾸준히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 머무른다. 심지어 남배우 중심의 무대에서도 그만의 카리스마를 내뿜는다. 후배들에겐 좋은 롤모델로, 관객들에겐 여왕이라 불리는 이유는 바로 그의 존재감 때문이다.

“지금까지 누군가를 의식해서 이런 배우가 되겠다는 생각이 없었어요.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해 최상의 것으로 관객들에게 보여야겠다는 생각밖에는. 후배들에게 조언도 안 하거든요. 어쩌면 저로선 작품마다 최선을 다 한 것뿐인데 후배들이 잘 봐주고 좋은 자극이 된다면 그것만큼 좋은 것은 없는 것 같아요. 오랫동안 배우생활을 하다보면 누리고 있는 것에 둔해지고 교만해질 수 있어요. 10년간 이 생활을 해왔으니 당연히 성장통도 있기 마련이고요. 배우를 하는 게 맞을까 심각하게 고민할 때도 있어요. 그럴 때마다 고비를 넘기게 하는 건 역시 ‘작품’이에요. 그 안에 있는 메시지를 통해 반성도 하고 태도도 달라지고요. 무대가 재미있어지는 동시에 어렵고 조심스러워질 때죠. ‘무대’는 제게 제일 좋은 선생님이기에 무대에 선 순간 저는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어요.”

더불어 ‘여왕’이라는 별명에 대해서도 “여성스럽지 않으니 ‘공주’나 ‘여신’은 아니고 또 남성스럽지 않으니 팬들이 ‘여왕’이라 부르는 것 같다”며 웃으며 답했다.

“묘한 느낌이에요. ‘여왕’이라는 존재가 크잖아요. 가끔 듣기 민망한데 팬들이 제게 바라는 희망사항일거란 생각도 들어요. 이 별명을 듣고 웃고 지나갈 수도 있지만 동시에 책임감도 느껴져요. 뮤지컬을 많이 보고 사랑해주는 분들이 붙여주시는 별명인 만큼 더 많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더 멀리 생각 안 하고 오늘의 공연에 최선을 다하려고요.”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설앤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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