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마을②] 귀양 간 형님은 잘 살고 있나…형제 섬 사이로 석양이 진다

입력 2016-10-18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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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는 형 섬(왼쪽)과 동생 섬 뒤로 천지를 물들이며 저물어간다.고흥(전남)|김진환 기자 kwangshin@donga.com

해는 형 섬(왼쪽)과 동생 섬 뒤로 천지를 물들이며 저물어간다.고흥(전남)|김진환 기자 kwangshin@donga.com

■ 동일면 동포마을 ‘형제 섬’

동일면 동포마을에는 석양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형제 섬’이 있다. 크고(형 섬) 작은(동생 섬) 두 섬 사이를 물들이는 노을빛이 고흥군에서도 단연 최고라 일컫는다. 하루 두 번 간조 때 바다가 열리면 섬은 오롯이 그 자태를 드러내며 화려한 색채를 뽐낸다.

‘형제 섬’은 아름다움 만큼 슬픈 옛 이야기를 품고 있다. 18세기 초 조선시대 경종을 지지하던 소론이 연잉군(영조) 세력의 노론을 숙청한 사건인 ‘신임사화’ 때로 거슬러 오른다. 장희빈의 아들 경종에 맞서 연잉군의 세제 책봉을 주장한 ‘노론 4대신’의 1명인 좌의정 이건명은 이 사건으로 나로도에 유배됐다. 유배온 지 넉 달 만에 향년 60세에 참형됐다. 유배지는 당시 ‘돌섬’이라 불렸던 ‘형제 섬’ 인근. 그는 썰물에 돌섬이 모습을 드러내고 육지와 연결되는 것을 보고 언젠가 경종의 오해가 풀려 사면될 것이라는 희망과 함께 또 다른 4대신인 사촌 이이명을 떠올렸다. 이이명 역시 남해에서 귀양살이를 했다. 같은 뜻을 품었던 사촌형제는 병고와 외로움, 적막함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이후 사람들은 이 섬을 ‘형제 섬’이라 부른다. 이건명과 이이명이 손을 잡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동포마을 이영복 이장은 “해질녘이면 형제 섬 사이에서 보이는 일몰이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며 “한참을 바라보면서 마음을 다지는 명소가 됐다”고 말했다. 이 섬 앞에 펜션을 짓고 관광객을 모으고 있는 우창현씨도 우연히 보게 된 아름다운 석양에 반해 아예 정착했다. 지금은 우씨의 소유라 동네 주민들과 펜션 이용객들에게는 무료로 개방하고 있다.

고흥(전남)|이정연 기자 annjo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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