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②] 전석호의 마음을 울린 고창석의 강렬한 한마디

tvN 드라마 ‘미생’은 2년이 흐른 지금도 두고두고 회자되는 수작이다. 대한민국 청춘의 애환과 직장인의 현실을 현실감 있게 담아낸 이 작품은 2014년 겨울 방송 당시 하나의 신드롬을 일으켰다. 덕분에 ‘미생’에 출연한 배우들도 ‘미생 신드롬’ 수혜의 대상이 됐다. 이성민 임시완 강소라 강하늘 변요한 등의 주연진뿐 아니라 스치는 단역까지도 재조명받았다.

배우 전석호도 ‘미생’을 통해 대중에 얼굴을 알린 수혜자 중 하나다. 어쩌면 전석호라는 본인의 이름보다 ‘미생’ 극 중 역할인 ‘하대리’가 더 친숙할지도 모르겠다. 강소라와 직속 선후배 관계를 연기한 전석호는 그의 표정에서 따온 이모티콘 ‘ㅡAㅡ’와 함께 큰 사랑을 받았다.

‘미생’은 충무로와 대학로를 지켜온 전석호의 드라마 데뷔작이다. 첫 술에 배가 부르고도 넘쳤다. 단숨에 유명세를 탔으니 대중적으로 더 큰 도약을 노려볼 만 했다. 하지만 전석호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작은 영화로 눈길을 돌렸고, 무대로 회귀했다. 크랭크업 2년여 만에 11월 30일 개봉을 앞둔 영화 ‘작은 형’(심광진 감독)은 전석호가 ‘미생’을 마칠 무렵 선택한 작품이다.


인터뷰①에서 이어집니다.



Q. 그렇다면 말랑말랑한 로맨스나 멜로를 할 가능성은 낮겠네요.

A. 이 사랑이 판타지로만 보일 것이냐 아니면 또 다른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게 느껴지느냐가 중요할 것 같아요. 그 지점이 있다면 ‘OK’죠. 알콩달콩한 사랑만 보이는 작품을 제가 한다면 손가락 한 마디 정도가 없어지거나 손톱이 자라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인데요. 하하.


Q. ‘작은 형’ 심광진 감독이 “전석호는 기본적으로 연출 감각이 있는 배우”라고 말했어요. 작품을 해석하는 능력과 캐릭터 구축에 대해서도 칭찬했는데 연출에 욕심 있나요.

A. 광진이 형과는 아이디어 토론을 많이 했어요. 하나 찍고 나서는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눴어요. 한 장면 한 장면 허투루 가지 않았죠. 그러다보니 광진이 형이 ‘네가 그런 말을 왜 하는 거야. 네가 연출이야?’ 한 적도 있어요. 하하. 그래도 연출의 힘을 100% 믿어요. 선택은 감독이 하는 거고 배우는 그를 믿고 가는 거죠.

연출은 제 영역이 아닌 것 같아요. 연출자들은 저와 다른 종족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저는 연기할 때 인물에서 시작해서 거미줄처럼 엮어가는 편이에요. 연출을 하면 인물뿐 아니라 신경 써야 할 게 너무 많아요. 한 장면을 찍으면서도 앞 뒤 장면과 음악 미쟝센 색감 등 이것저것 계획하고 밸런스를 잡아야 하죠. 연출도 하는 배우들을 보면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저는 제 것 하나만 해도 벅찬데 연출자들은 ‘A부터 Z까지 생각하면서 어떻게 해내지’ 싶어요. 예를 들어 ‘조난자들’ 노영석 감독은 본인이 음악까지 만들어요. ‘미생’ 김원석 감독님도 정말 디테일해요. 다들 특화된 점이 있어요. 그들이 가진 달란트를 보면서 저 스스로 아닌 건 확실히 발 뺀 거죠.

Q. 배우로서의 방향성이 확고하게 느껴져요. 하지만 널리 알려질수록 챙겨야 할 부분도 많아지고 관계의 영향으로 작품을 하는 경우도 있을 텐데요.

A. 매번 고민하는 지점이에요. 그래서 많이 가지지 않으려고 해요. 가진 게 많으면 잃을까봐 두려워할 것 같거든요. 일을 생각보다 많이 안 해요(웃음). 지금이 마지막인 것처럼 현재에 충실하면서 즐기려고 하죠. 그래서 이전에 작업한 분들이 서운해 하기도 해요. 저는 불특정 다수를 위해 공연하지는 않아요. 연기도 마찬가지고요. 특정 소수를 위해서, 저랑 생각이 같은 사람들을 위해서 연기하고 싶어요.

제가 올해 서른셋이에요. 지금의 제가 느낄 수 있을 만큼의 연기를 해요. 좋은 기회가 오더라도 제가 표현할 수 없다면 과감히 안하죠. 서른셋에 할 수 있는 연기가 생각보다 많지 않더라고요. 친구들만 봐도 대부분 대리거든요. 서른셋의 대리가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아요. 어떤 순간에는 바보가 되기도 하죠. 저도 마찬가지예요.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욕심내지 않고 많이 가지려고 하지 않아요. 그래서인지 아직 자유가 많네요.


Q. 사진 요청 등 유명세로 인한 불편함은 없나요.

A. 사람들과 사진 찍는 것도 예전에는 요청받으면 어영부영 웃어넘긴 적이 많았어요. 그런데 고창석 선배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부터는 웬만하면 찍어드리는 편이에요. 선배는 엄청 잘 찍어주는데 그 모습이 너무 신기하더라고요. 그런데 선배가 ‘너는 누군가에게 사진 찍어달라고 할 용기가 있느냐. 저 분들은 얼마나 용기 내서 말한 것이겠냐’고 하더라고요. 특별한 이유 없이 거부하면 그 기회와 용기를 말살시키는 거라면서요.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남을 생각하는 모습에서 크게 배웠죠.

사진 같이 찍었다가 제가 너무 이상하게 나오면 공개 안 하고 지켜주시지 않을까요. 그 사람들을 믿어요. 최근에도 광화문에 나갔는데 어떤 분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더라고요.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고민했어요. 그분이 먼저 ‘어디 올리지는 않겠습니다’라고 하더라고요.

회사에서는 조마조마해 할 때도 있는데 막 돌아다녀요. 딱히 어렵지 않아요. 사람들이 길을 막거나 지나가던 차가 멈출 정도로 알아보진 않아요. 아직 그 정도는 아니랍니다. 대중교통도 잘 이용하고요. 재밌어요.

동아닷컴 정희연 기자 shine256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동아닷컴 방지영 기자 dorur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