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임현정 “투병생활 10년…내 머릿속은 오직 음악뿐”

입력 2018-05-03 06: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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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임현정이 10년 공백 끝에 최근 신곡을 발표했다. 갑작스런 혈액염, 공황장애 등으로 긴 공백을 보냈던 그는 “음악에 대한 생각을 막을 수 없었다. 지금은 마음가짐이 편해져 과정이 힘들더라도 즐길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사진제공|감성공동체 물고기자리

■ ‘사랑은 봄비처럼 이별은 겨울비처럼’으로 인기 끈 싱어송라이터 임현정

부정맥·공황장애로 생사 오가
전인권 선생님 “살자” 응원에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 배웠죠
‘사랑이 온다’로 행복 드릴게요


할 말이 많았다. 짧은 질문에도 5분 이상의 긴 답변이 이어졌다. 10년이라는 긴 공백으로 생긴 갈증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갔다. 2000년대 초반 ‘첫사랑’ ‘사랑은 봄비처럼 이별은 겨울비처럼’을 히트곡 대열에 올려놓은 후 2008년 ‘물고기자리’를 끝으로 돌연 모습을 감춘 가수 임현정(44) 이야기다. 그는 최근 10년 만에 싱글 ‘사랑이 온다’를 발표하고 활동을 시작하며 그동안의 이야기를 1시간 넘게 풀어갔다.

1996년 ‘양철북’으로 데뷔한 그는 국내 여성 가수들 가운데 처음으로 전곡 작사, 작곡, 프로듀싱한 앨범을 선보였다. 그런 그가 누구보다 더 탄탄한 싱어송라이터의 길을 걸을 것이라는 평가를 뒤로하게 된 것은 “참 많이 아팠기 때문”이었다.

그는 2003년 활동하던 중 갑자기 온몸에 멍이 생겨 병원을 찾았고, 당시 혈액염 진단을 받았다. 설상가상으로 2008년에는 공황장애까지 앓았다.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지금도 “오랫동안 병을 앓아 긴장을 하면 어지럽고 숨이 가쁘다”고 했다. 하지만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어느 때보다 기운이 넘쳤고 농담도 조금씩 섞었다.

“제가 활동할 때와 환경이 많이 달라져 모든 게 생소하고 어리둥절하다. 활동을 하지 않던 기간에도 두세 달에 한 번씩 음원사이트에 들어가서 어떤 가수가 인기가 있는지 확인해가며 공부했다. ‘역주행’이라는 말이 재밌더라. 하하!”

가수 임현정. 사진제공|감성공동체 물고기자리


“괜찮다”고 말은 편하게 해도 그는 생과 사를 오갔다. 왜 그렇게 아팠는지 지금도 원인은 모른다. 당시 그를 치료했던 담당 의사는 “운명”이라고 했단다. 워낙 예민한 성격인지라 작은 것 하나라도 온몸으로 받아들여 아프다는 것이었다.

“공황장애도 금방 극복할 줄 알았다. 해외여행(유학을 준비하다가 포기)을 다니며 약을 한 짐씩 싸들고 다녔다. 그러다 2012년 심장이 메트로놈처럼 뛰고 몸이 마비되더라. 휠체어를 타고 다니기도 했다. 부정맥이 심해서 잠들 때마다 ‘이러다 잘못되면 어떻게 하지?’ ‘다음 날 숨을 쉬게 될까?’라는 극한의 공포에 휩싸였다. 누군가의 손만 닿아도 감당이 안 될 정도였다. 아픈 나를 보고 전인권 선생님이 ‘현정아, 살자’라며 병원에 가라고 했다.”

부정맥과 공황장애, 그로 인한 심한 스트레스와 조울증, 트라우마…, 모든 게 정신적인 문제라고 판단했다. 병원에서도 딱히 원인을 찾지 못하니 그럴 수밖에.

“성공에 대한 부담이 병이 된 것 같다. 성공하지 못한 사람은 왜소한 사람으로 취급한다. 그땐 실패하면 내 책임이라고 나를 압박했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 때는 농사를 짓고 살고 싶었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게 가장 아름다운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픈 와중에도 음악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는 걸 막을 수 없었다.”

그는 아픈 와중에도 침대에서 “기어서 움직여” 곡을 만들었다. ‘사랑이 온다’는 몸무게가 38kg까지 내려갈 정도로 몸을 움직이기 힘들던 시기인 2016년에 썼다. 평소 그를 아끼던 전인권이 ‘네가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나와 노래하는 걸 보고 싶다, 내 후배라는 걸 자랑하고 싶다’고 격려해준 게 큰 힘이 됐다.

가수 임현정. 사진제공|감성공동체 물고기자리


“오랜 투병으로 얻은 것은 ‘나를 사랑하는 법’이다. 전인권과 윤도현 선배도 그걸 가르쳐줬다. 나를 사랑해야 남도 사랑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현재를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도 기본적으로 나를 사랑하는 데서 비롯되더라. 나에게 거는 일종의 ‘주문’ 같은 거다. 누구든 자신에게 ‘사랑이 온다’라고 주문을 걸었으면 좋겠다. 가을쯤에는 희망을 담은 새 앨범도 낼 계획이다.”

포기하지 않고 어렵게 복귀한 그를 보고 주위의 사람들은 “그저 기특하다”고 말한다. 마흔 중반 나이에 “기특하다는 말을 들으니 자신감이 생긴다”고 한다.

“마음가짐이 편해져서 그런지 모든 게 좋다. 예전에는 나를 더 많이, 크게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면, 이제는 목소리가 빈약해도 기술적으로 보완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난 최선을 다했고, 이게 나다’라고 마음을 먹으니 과정이 힘들더라도 즐길 수 있게 됐다.”

이정연 기자 annjo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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