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FF인터뷰] 서현우 “시시각각 대처하는 여유있는 배우 꿈꾼다”

입력 2018-10-06 17: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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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F인터뷰] 서현우 “시시각각 대처하는 여유있는 배우 꿈꾼다”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을 때마다 배우 서현우의 상황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지금보다 덜 알려지고 연기활동의 폭도 크지 않을 때는 영화제를 축제로 즐기는 한 사람이었다. 영화의 주연으로 레드카펫을 밟은 건 지난해가 처음. 작년 부산에서 시선을 끈 화제작 가운데 한 편인 ‘죄 많은 소녀’을 통해서였다.

1년이 지난 올해는 상황이 또 달라졌다. 영화제를 상징하는 개막작의 출연 배우로 개막식의 레드카펫을 밟았고, 주요 행사에 빠짐없이 참여하고 있다. 서현우(35)는 “개막식 무대에 올라 앉아있는 관객을 마주보니 벅차올라 울컥울컥했다”며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는 잊지 못할 순간의 연속”이라고 했다.

태풍 콩레이가 부산을 관통한 6일 오전 11시. 해운대 주변 상점들의 간판이 날아가고 심지어 버스정류장이 통째 부서질 만큼 강풍이 몰아치는 속에서 배우 서현우를 만났다.

마린시티 인근 호텔에 머물고 있던 그는 태풍경보로 인해 주변이 통제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강풍을 뚫고 인터뷰 장소에 나타났다. 창 밖으론 재난영화의 한 장면 같은 풍경이 펼쳐졌지만, 서현우의 이야기는 막지 못했다.

○ ‘뷰티풀 데이즈’ ‘보희와 녹양’ 두 편 부산서 공개

서현우는 개막작 ‘뷰티풀 데이즈’(감독 윤재호)에서 이나영과 호흡을 맞췄다. 탈북한 뒤 중국을 거쳐 다시 남한에 온 주인공 엄마가 ‘정착하는’ 남자가 서현우가 맡은 인물. 영화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캐릭터에 따로 이름이 없는 탓에, 서현우가 그린 남자도 그저 ‘엄마 애인’이라고 표현돼 있을 뿐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가 그렇지만 서현우가 맡은 ‘엄마 애인’에서도 결코 눈을 뗄 수 없다. 20년간 비극적인 사건을 겪어온 엄마를 묵묵히 지켜내는 남자이자, 이를 통해 영화에 온기를 보태는 인물이기도 하다.

“완성된 영화를 개막식 상영에서 처음 확인했다. 그 기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무대에 올라 객석을 꽉 채운 관객을 쭉 훑어봤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 여러 상황이 스쳐지나가더라.”

서현우는 ‘뷰티풀 데이즈’에 참여한 과정을 특별한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배우들이 전부 입을 모아 칭찬하는 영화의 시나리오를 향한 기대, 대사 한 마디 표정 하나까지 세밀하게 쌓아올려 함께 완성한 작품이기에 그렇다.

“엄마(이나영)가 남한에 와서 정착하는 ‘종착역’ 같은 남자다. 역사가 깊은 한 여인을 정착하게 했으니, 그 남자에겐 어떤 이유가 있지 않을까. 건달 같은 남자라는 표현도 나오지만 그렇게 단순한 유형의 캐릭터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안에 따뜻한 마음에 내재돼 있기도 하고 말이다.”

이나영과의 작업도 서현우에게 자극이 됐다.

“이나영 선배의 영화를 보면서 자랐다. 그러니 선배와의 첫 만남부터 당연히 설렐 수밖에 없었지. 하하! 아주 꼼꼼하고 세밀하게 준비하는 모습을 보고 촬영장에서 여러 번 놀라기도 했다. 첫 촬영 때는 내가 조금 긴장하고 있으니까 ‘괜찮으니 하고 싶은 대로 표현해 달라’고 먼저 말해줬다. 그건 정말 고마운 일이다.”

이나영은 서현우가 마음껏 감정을 표출하도록 문을 열어줬고, 이를 되받아 자신의 감정을 보태 한 장면씩 완성해나갔다. 덕분에 영화에서 주인공 엄마와 그 애인인 두 사람이 만들어가는 장면은 애틋하고 따뜻하면서도 유일하게 희망을 품고 있다.



○ ‘독전’부터 ‘죄 많은 소녀’까지…왕성한 스크린 활동

서현우는 대학을 다니다가 더 늦기 전에 배우의 꿈을 실현하자는 마음으로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진학해 연기자가 됐다. 대학을 관두는 아들을 걱정하는 부모님께는 “연극영화를 전공해 관련 학과의 교수가 되겠다”는 ‘선의의 거짓말’을 한 뒤 얻어낸 승낙이다.

그렇게 크고 작은 영화의 단역을 거치면서 실력을 쌓았고, 최근 2~3년 사이에는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올해 서현우의 행보는 더 없이 분주하다.

500만 관객이 본 영화 ‘독전’에서 형사 역으로 활약했고, 앞서 ‘1987’에서도 사건에 결정적으로 기여하는 검사 역을 맡아 인상을 남겼다.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통해 인지도를 높인 것은 물론 얼마 전 MBC 드라마 ‘시간’에도 참여했다.

그런 서현우가 9월에 내놓은 영화 ‘죄 많은 소녀’도 빼놓기 어려운 작품이다. 한 소녀의 죽음을 둘러싼 의심과 오해, 상처를 담아낸 이야기에서 그는 담임교사 역을 통해 자신의 진가를 다시 확인시켰다.

“처음 시나리오를 볼 땐 담임교사가 정상인이 아닌 것 같았다. 아이들을 보듬어 주지 않는 걸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촬영을 진행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젊은 어른’인 담임교사가 점차 기성세대처럼 돼 가고 있는 상태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촬영 현장에서 내 역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됐다.”

활발한 활동은 서현우의 인지도를 올려놓고 있기도 하다. 특히 ‘나의 아저씨’ 출연 이후에는 알아보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이번 부산국제영화제 일정을 마무리한 뒤 그는 새 영화 ‘해치지 않아’ 촬영을 시작한다. 11월 중순에는 또 다른 영화 출연이 계획돼 있다.

소위 ‘다작 활동’의 흐름에 합류했다고 보이지만, 서현우는 어떤 배역을 맡아도 배우에 신뢰를 주는 자신만의 행보를 착실히 이뤄가고 있다.

“몸은 바빠도 마음은 좋다. 원래 여행을 할 때도 휴양보다는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여 돌아다니는 스타일이라 거뜬하다. 이런저런 작품에 호기심이 생기고, 그 안에서 내가 맡게 될 인물들도 궁금해진다. 내가 현장에서 겪는, 필사적인 고민이 어떻게 완성됐는지 작품으로 확인하는 일도 재미있다.”

말을 더 보탰다.

“어떤 작품이든 그 경험이 점층적으로 내 안에 쌓이는 것 같다. 점점 성장하는 기분이고, 거짓말 같지만 현장에는 늘 깨달음이 있다. 물론 지금도 마음 한 구석엔 불안함이 있다. 그걸 경계한다. 예전엔 연기로 단단한 탑을 쌓고 싶었지만 이제는 시시각각 대철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진 배우가 되고 싶다.”

해운대(부산)|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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