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수범죄[暗數犯罪]. 실제로 발생된 범죄지만 수사기관이 인지되지 않거나 용의자 신원이 파악되지 않는 등의 문제로 범죄 통계에 집계되지 않은 범죄를 일컫는 말이다. 영화 ‘암수살인’은 이 암수범죄로 일어난 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다.
SBS 시사 교양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에 방송된 실화를 모티브로 한 작품. 감옥에서 7건의 추가 살인을 자백하는 살인범과 자백을 믿고 사건을 쫓는 형사의 이야기를 다뤘다. 형사와 소시오패스 살인범이 나오지만 ‘암수살인’은 이들을 앞세워 스펙터클하고 화려한 형사물로 그리지 않는다. 긴장감 넘치는 퍼즐 핑퐁 속에서, 어쩌면 거의 스러져가던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수면 위로 올렸다. 배우 김윤석이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다.
“보통의 형사물은 범인을 추적해서 잡으면 끝나는데 우리 영화는 다르죠. 범인이 잡힌 상황에서 시작해 피해자를 쫓아가요. 어쩌면 존재하지 않았을 지도 모르는 피해자가 주인공인 영화죠. 굉장히 독특하고 완성도가 뛰어난 시나리오더라고요. 액션으로 ‘땜빵’하기보다는 차근차근 밀도 있는 전개가 좋았어요. 청량감 넘치는 시원한 영화는 아니지만 이런 여운이 오래가는 영화를 하고 싶었어요. 우리 영화는 조미료나 탄산이 필요없어요. 이대로만 가도 짙은 향이 날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전에 제가 맡은 형사들은 ‘형사라는 직업을 가진’ 중년 남성에 가까웠죠. 한 아이의 아버지, 한 집안의 가장. ‘암수살인’ 속 형사가 어쩌면 형사로서의 초점이 가장 스탠다드하게 맞았다고 볼 수 있죠. 한 형사의 집념과 열정으로 볼 때 가장 마음에 드는 형사였어요.”
형민의 모델이 된 실존 형사와 만난 적은 있지만 캐릭터는 시나리오에 집중해 구상했다고 밝혔다. 김윤석은 “형사님이 촬영장에 한두 번 정도 오시긴 했지만 따로 만나진 않았다. 캐릭터는 감독님의 시나리오에서 차용했다. 감독님도 ‘실화에서 가져왔지만 허구로 재구성한 영화다. 꼭 이 분과 닮을 필요는 없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김윤석에게 ‘암수살인’은 끓어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는 작업의 반복이었다. 그는 “법정에서 형사의 의지를 담아 설득하지 않나. 태오가 또 사람을 죽일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연기할 때 막 끓어오르더라. 그럴 때마다 이성과 감정을 잡기 위해 노력했다”고 털어놨다.
“태오 역할은 배우로서 탐날 수도 있지만 동시에 겁나는 배역일 수 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맡은 거죠. 주지훈을 만나 처음 느낀 점은 ‘얘는 무모할 정도로 온몸을 던지는 구나. 하나도 안 사리는 구나’ 싶었어요. 연기에 대한 자세가 정말 훌륭했어요. 이미지 관리에도 신경을 안 쓰고요. 계속 자신을 던지는 배우들은 발전하거든요. 그런 부분에서 주지훈에게 굉장히 높은 점수를 주고 싶어요. 배우로서 좋은 모습이죠.”
김윤석은 마치 테니스 같았다고 설명했다. 한 명이 있는 힘껏 치면 상대가 받아치는, 팽팽한 랠리. 김윤석은 “이야기 나누다 갑자기 욕을 하기도 하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며 “주고받으면서 즉흥의 재미가 있었다. 미묘한 줄다리기가 정말 팽팽했다”고 회상했다.
탄탄하고 밀도 있는 스토리, 김윤석과 주지훈의 열연을 담은 ‘암수살인’은 손익분기점을 돌파, 26일까지 357만명의 사랑을 받았다. 김윤석은 ‘암수살인’을 떠나보내며 형민과 같은 또 다른 ‘시대의 파수꾼’이 나타나기를 희망했다. “형민보다 더욱더 발전된 다른 캐릭터를 누군가가 맡아줬으면 좋겠다”면서.
동아닷컴 정희연 기자 shine256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쇼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