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영 “슬럼프 때 만난 ‘백일의 낭군님’, 내겐 인생작”
작품이 해피엔딩이라도 인물에 따라 새드엔딩이 존재한다. tvN 월화드라마 ‘백일의 낭군님’(극본 노지설, 연출 이종재) 속 무연(김재영)이 그런 경우다. 극 중 어린 시절 동생 이서(홍심/ 남지현 분)와 헤어져 아버지를 죽인 원수 김차언(조성하 분)의 손에 자란 무연은 세자 이율(원득/ 도경수)을 암살해야 하는 살수로 성장한다. 김차언의 지시로 이율 암살을 시도하지만, 실패한 무연은 정인(情人)이자 세자빈 김소혜(한소희 분)와 멀리 떠나려다 죽음을 맞게 된다. 가장 비극적인 운명이다.
그러나 이런 무연을 연기한 김재영은 요즘 행복하다. 배우로서 처음으로 주목을 받고 있기 때문. 김재영은 “뭐라고 표현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모든 게 감사할 따름이다. 갑자기 SNS 팔로워 수도 늘어나고, 알아보는 사람도 많아졌다. 이렇게 관심을 받는 게 처음이라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얼떨떨하고 신기하다. 감사하다는 말 밖에 표현할 방법을 모르겠다”며 웃었다.
김재영은 싸늘한 무표정 뒤에 천진난만한 얼굴을 드러냈다. 무연과 정반대의 성격이다. 그렇기에 무연을 연기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이번에 처음 사극 연기를 해보는 거라 부담이 많이 됐어요. 특유의 사극 톤과 액션 연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무엇보다 무연 캐릭터를 연구하는 게 어려웠어요. 저와 너무 달라거든요. 잘 웃고 활발한 저와 달리, 무연은 신비스러울 정도로 과묵해요. 모든 상황에 무덤덤한 편이에요. 그렇다고 연기하는 상황이 쉬운 것도 아니에요. 무연의 상황은 늘 함축적이에요. 감춰진 부분이 많고, 설명도 없어요. 다행히 현장에서 많은 도움을 줬어요. 잘못된 부분은 지적받아 고쳤고, 배우들의 도움으로 지금의 무연 캐릭터를 완성한 것 같아요. 어렵게 친해진 캐릭터라서 그런지 지금은 무연에게 더 애착이 가요.”
함축적인 무연의 이야기에는 사랑도 담겨 있다. 세자빈 김소혜와 스토리가 그것. 김재영은 “대본 리딩할 당시 노지설 작가님이 나와 (한)소희 씨에게 러브라인이 있다고 귀띔해줬다.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설정이라고 하더라. 그래서 언제쯤 두 사람의 서사가 방송되나 했는데, 후반에서야 그려지더라. 물론 촬영한 내용에 비해 편집된 내용이 많아 아쉽지만, 만족스럽게 그려졌다. 미움받던 무연과 소혜가 마지막에는 응원받아 기쁘다”고 이야기했다.
이미 모델계에서 ‘중견급’인 김재영은 배우 세계에서 아직 신인으로 통한다. 2011년 tvN ‘꽃미남 캐스팅 오보이’에서 처음 연기를 접하고 연기자의 꿈을 키운 김재영은 2013년 영화 ‘노브레싱’을 통해 배우로 데뷔했다. 이후 드라마 ‘아이언맨’, ‘너를 기억해’, ‘마스터-국수의 신’, 영화 ‘두 남자’, ‘골든 슬럼버’ 등을 통해 연기 경력을 쌓았다. 그리고 이번에 ‘인생작’인 ‘백일의 낭군님’을 만나 처음으로 연기자라는 타이틀이 어색하지 않은 순간을 맞고 있다.
“그동안 ‘모델 출신’이라는 타이틀이 싫어 빨리 떼고 싶다는 마음이 컸어요. 연기자로 성공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런 수식어가 불편했던 게 사실이고요.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모델 출신’이든 아니든 연기를 잘하면 돼요. ‘모델인데 연기도 잘한다’고 칭찬받으면 되더라고요. 이렇게 생각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아요. 한동안 슬럼프였어요. ‘이 길(연기)이 내게 맞나’ 고민했어요. 그때 만난 작품이 ‘백일의 낭군님’이에요. 덕분에 제 생각도 마음가짐도 달라졌어요. 그래서 ‘백일의 낭군님’은 제게 너무 특별한 작품이에요. ‘인생작’이죠. (웃음)”
절친한 모델 친구들보다 빠르게 배우로 자리 잡아가는 김재영의 대세다운 면모다. 또 일찌감치 차기작이 결정돼 방영되고 있다. 바로 올리브 ‘은주의 방’이 그것. 특히 ‘은주의 방’ 제작진 일부가 ‘백일의 낭군님’ 제작진이라는 점에서 인연은 더욱 뜻깊다. 그렇지만 전작의 성공을 기대하지 않는다. 김재영은 “‘은주의 방’ 이야기는 2030 여성 시청자를 타깃으로 한 드라마인 만큼 ‘백일의 낭군님’만큼의 성공을 예상하지 않는다. 다만, 많은 공감대가 있을 거로 예상한다. 한 번쯤 꿈꿨을 그리고 현실에 있을 법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많은 시청자가 공감했다면, 그게 성공한 게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100kg이 넘는 체중을 감량하고 모델이 된 김재영은 또다시 밑바닥부터 시작하고 있다. 진짜 배우가 되기 위해서 말이다. 초심을 잃지 않는 연기자로 자리 잡고 싶다.
“어릴 때는 일찍 성공해서 편하고 살고 싶었어요. 그래서 꿈도 요리사였어요. 잘 된 식당으로 여러 분점을 내는 게 꿈이었어요. 정말 허황된 꿈이죠. 요즘에는 연기로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만 가득해요. ‘김재영 연기 잘 한다’는 말을 듣고 싶어요. 그리고 제가 변하지 않았으면 해요. 지금 모습이 좋아요. 주변 모델 친구들이 ‘연예인 병’ 증세를 보일 때 핀잔을 줬기에 제가 그러면 안 될 것 같아요. 지금처럼 초심을 잃지 않고 연기를 잘 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그렇게 되도록 노력할 거고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동아닷컴 홍세영 기자 projecthong@donga.com
사진|HB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