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정진영이 감독이 돼 첫 데뷔작인 ‘사라진 시간’을 최초로 공개됐다.
9일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열린 영화 ‘사라진 시간’ 언론시사회에서는 연출을 맡은 배우 정진영을 비롯해 조진웅, 배수빈, 정해균이 참석했다.
‘사라진 시간’은 의문의 화재사건을 수사하던 형사 ‘형구’가 자신이 믿었던 모든 것이 사라지는 충격적인 상황과 마주하면서 자신의 삶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 배우 정진영이 극본을 쓰고 연출을 맡았다.
정진영은 “어렸을 때 꿈이 영화 연출이었다. 산 대부분의 시간을 배우로 살았고 연출 꿈을 접고 살았다. 그런데 50세가 넘어서 능력이 되든 안 되든 내 이야기를 소박하게 해보자는 생각을 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예전엔 세상에 망신 당할 수 있다는 생각에 못했지만 망신 당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시도했다. 2017년에 글을 쓰고 2018년에 찍었다”라며 “촬영할 때까지만 해도 개봉이라는 생각도 안 했던 것 같다. 후반작업도 빨리 끝나서 느낌이 안 오다가 개봉 날짜가 다가오고 기자간담회에 서니까 이게 이렇게 무서운 자리였다는 느낌을 다시 받았다”라고 덧붙였다.
첫 연출을 하며 정진영 감독은 “단 한편을 만든다면 어떤 이야기를 할지 하다가 늘 갖고 있던 ‘나는 뭘까? 내가 생각하는 나와 남이 규정하는 나는 왜 충돌할까’로 출발한 것 같다.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외로울지를 자연스럽게 떠올리며 글을 썼다”라고 말했다.
이어 “굳이 말하자면 연약한 인간의 외로움을 담은 슬픈 코미디인 것 같다. 그런데 이 영화가 하나의 장르고 규정하기엔 오해가 생길 수 있다. 홍보팀도 굉장히 힘들었을 거라 생각한다”라며 “이 영화가 미스터리라고 알려져 있는데 이 영화는 끝까지 답을 알려주지 않아 미스터리라고 표현하기도 어렵다. 처음부터 답을 주려고 만든 것은 아니었다”라고 덧붙였다.
글을 쓰는 당시 규정된 어법이나 규칙을 생각하지 않고 쓴 정진영은 “연출을 결심 후 시나리오를 하나 썼는데 익숙한 관습들이 들어가 있어 쓰고 버렸다”라며 “훌륭한 감독들이 이미 있는데 내가 굳이 연출을 한다면 새롭고 이상한 것을 해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장점이자 단점이 낯섦이다”라고 말했다.
극 중에서 ‘형구’ 역을 맡은 조진웅은 “예전에 방은진 감독님과도 작업을 했지만 현직 배우인 연출과 만나면 가장 이로운 것은 소통이 잘 된다. 배우의 간지러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서 이야기가 잘 통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미묘한 지점이 항상 존재하더라. 처음 이걸 보면 ‘이게 말이 되나’ 였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세상에 말이 안 되는 것이 많다”라며 “지금도 마스크를 쓰며 영화를 본다는 게 말이 되나. 코로나 바이러스가 있는데 우리가 관객들한테 극장에 오라는 게 말이 되나”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극 중에서 외지인 부부의 비밀을 가장 먼저 알게 된 주민 ‘해균’ 역을 맡은 정해균은 “저는 뭔지도 모르고 하겠다고 했다. 이런 게 말려드는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 시나리오도 제대로 읽지 않고 무조건 하겠다고 했다가 후회 많이 했다. 지금도 저는 헷갈린다”라고 말했다.
이어 “배우이시기 때문에 꼼꼼하게 잘 챙겨주셨다. 그런데 가끔은 배우로 심하게 몰입하셔서 내가 ‘빨리 모니터 앞에 가시라’고 말할 정도였다. 현장 분위기도 좋았다”라고 덧붙였다.
비밀을 지닌 교사 ‘수혁’ 역을 맡은 배수빈은 “이 시나리오를 봤을 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으신 건지 고민해봤다. 열정을 불태워서 일했던 가치관이 세상이 변하면서 무의미하게 되고 퇴색되고 그래서 그냥 나는 열심히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어떤 상황이든 나도 배우로서 어떻게 걸어가는 것보다 그냥 계속 걸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정진영 감독도 이 시나리오가 이해가 안 될 수 있다고 하더라. 그런데 이 이야기가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참여하고 싶었다”라고 덧붙였다.
이 배우들을 캐스팅한 이유에 대해 정진영 감독은 “시나리오를 쓰다 보면 인물이 말투나 제 머릿속에 그리게 된다. 내가 인간 조진웅의 모습을 알고 있기 때문에 형구 캐릭터를 쓰면서 조진웅을 생각하며 썼다”라고 말했다
이어 “내가 그랬던 이유는 조진웅의 여리고 순한 모습을 좋아한다. 키도 훤칠하고 덩치고 커다랗고 허세도 클 것 같은데 굉장히 여린 사람이다. 형구는 고난을 이겨내는 인물이 아닌 세상에 순응하고 살 수 밖에 없는 사람이다. 여린 모습의 조진웅을 영화 속에 형구로 모시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정진영 감독은 “배수빈의 내면의 따뜻함을 잘 알고 있어서 그 눈빛을 이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라며 “정해균은 가끔 배우로서 이중적인 모습을 보일 때가 있어 해균 캐릭터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라고 덧붙였다.
연출자로서 첫 발을 내딛은 정진영은 “정말 행복했다. 촬영 내내 싱글벙글 웃고 다녔다. 하지만 개봉이 다가올 수록 이 자리가 이토록 무서운 자리일 줄 몰랐다. 그럼에도 내가 결정했던 일 중 가장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영화 ‘사라진 시간’은 6월 18일 전국 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