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우리’ 구교환 “타고난 배우 결코 아니야…난 성장형 캐릭터”[인터뷰]

사진제공｜쇼박스

구교환과 문가영이 초라하지만 뜨거웠던 20대를 지나 10년 만에 재회한 ‘옛 연인’으로 스크린에서 만난다. 31일 개봉해 겨울 극장가에 짙은 여운을 남길 영화 ‘만약에 우리’를 통해서다. ‘건축학개론’ 너의 결혼식 등으로 이어져 온 ‘첫사랑 멜로’의 계보를 잇는 이번 작품은 현실의 벽 앞에 무너졌던 평범한 청춘들의 연애사를 세밀하게 복기한다.

극 중 서로에게 단 하나뿐인 따뜻한 안식처였지만 혹독한 서울살이 앞에서 결국 이별을 선택하고 마는 연인을 연기한 구교환과 문가영은 모두가 서랍 속에 묻어두었던 옛 연인에 대한 기억과 ‘그때 우리가 만약에 달랐더라면’이라는 질문을 소환하며 깊고도 현실적인 공감을 이끌어낸다.

O“이야기에는 유통기한이 없다”

구교환은 ‘만약에 우리’에서 장난기 많고 다정한 정원(문가영)의 남자친구였지만 실패를 거듭하며 정원을 함부로 대하기 시작하는 은호 역을 맡았다. 그는 은호의 변화가 영화에 비호감으로만 담기지 않을 수 있었던 건 배우 출신인 김도영 감독의 뛰어난 연출력 덕분이었다고 했다.

“김도영 감독님은 부산영평상 신인여우상까지 받은 배우 출신이라 연기 지도가 정말 섬세했어요. 뛰어난 배우이기도 해서 내년 개봉하는 제 연출작 ‘너의 나라’에 ‘연기자’로 캐스팅하기도 했죠. 서로의 작품에 배우로 출연하는 ‘아름다운 품앗이’라고 생각해요.”

성공한 게임 개발자를 꿈꿨지만 계속되는 실패로 좌절하는 은호의 모습을 보며 과거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기도 했다. 다만 은호와 달리 구교환은 “실패의 감정에 함몰되지 않도록 노력했다”고 자신을 돌아봤다.

“‘안 팔리는 게임’이라는 이유로 계속 거절당하는 은호의 작품들처럼 제게도 거절당했던 수많은 시나리오가 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거절 당했던 작품들도 이후 어떻게든 사용되더라고요. 제가 최근 단편영화 형식으로 연출한 에스파의 ‘리치맨’ 티저에 나왔던 주요 장면들도 다 예전에 썼던 시나리오 속에 있던 것들이에요. 이야기에는 유통기한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영화 ‘만약에 우리’ 스틸, 사진제공｜쇼박스

O“나는 노력형+성장형 배우”

그는 ‘만약에 우리’에서 함께 연인으로 호흡한 문가영의 뛰어난 몰입력에 대해서도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영화 속 멜로 장면들은 정원 역을 맡은 문가영의 깊은 감정 덕분에 더욱 애틋하게 완성될 수 있었다고 했다.

“눈물을 흘려야 하는 어떤 장면에서 제가 그렇게까지 오열할 줄은 몰랐어요. 그냥 문가영의 얼굴을 보니 저도 모르게 서럽게 눈물이 쏟아지더라고요. 상대 배우에게 좋은 감정적 영향을 주는 배우죠.”

이번 영화에서 20대 시절을 무리 없이 소화한 것은 물론, 출연하는 작품마다 40대라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의 ‘소년미’를 보여주고 있는 그는 동안의 비결을 묻자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다”며 쑥스럽게 웃었다.

“매 작품마다 맡은 역할을 찰떡같이 소화하고 싶다는 제 야망이 그렇게 드러난 게 아닐까 싶어요. 물리적 나이를 넘어 그 캐릭터 자체로 보이기 위해 애쓸 뿐이죠. 캐릭터 소화력이야말로 제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욕심 가운데 하나거든요.”

특유의 자연스러운 ‘날 것의 연기’로 충무로에서 ‘가장 함께 연기하고 싶은 배우’로 꼽히는 그는 ‘타고난 연기자’라는 동료들의 평가에 대해 손사래를 쳤다. 그러면서 “제게 재능이 하나 있다면 그건 노력”이라고 힘줘 말했다.

“전 노력형 배우이고 ‘성장형 캐릭터’에요. 연기를 하기 전에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시뮬레이션을 해보고 중요한 장면이 있으면 반복해서 연습하고 또 연습해요. 드리블을 잘하는 선수라고 드리블 연습을 안 하지는 않잖아요.”


이승미 기자 sm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