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어릴 때, 저희 마을에는 저를 포함한 다섯 명의 악동들이 있었습니다. 저희 다섯 명은 ‘악동’이라 불리는 것을 은근히 즐기면서 꼭 다섯 명이 뭉쳐 다니며 궂은 짓만 골라서 했습니다.
특히 저희 멤버들이 가장 자주 했던 악동 짓은 바로 ‘서리’였습니다. 서리라고 하면 잠자고 있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즐겨했기 때문에, 저희의 서리 전적은 그야말로 다채롭고 화려했습니다. 닭서리부터 시작해서 토끼, 수박, 참외, 복숭아, 사과, 자두, 감, 고구마 등 입에 넣어서 소화가 되겠구나 싶은 것이면, 뭐든지 다 저희들의 목표물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여름 날 밤, 그 날도 어김없이 저녁식사가 끝나고 저희 다섯 명은 마을 초입에 있는 구멍가게로 몰려들었습니다. 구멍가게 앞 평상에 앉아서 오늘 밤은 어떤 사고를 치나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녁을 금방 먹었는데도 배는 출출하고, 저희는 이 출출한 배를 어떻게 달랠 것인가 작전 회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의견이 나왔는데, 결국 두 가지로 좁혀지게 되었습니다. “요즘 몸도 허약해진 것 같고, 날도 더운데 닭서리를 하자”는 의견과 “목도 컬컬하고, 저녁도 금방 먹었으니까 수박으로 하자”는 의견이었습니다.
두 가지 의견을 신중하게 듣고 있던 우리의 행동대장 종혁이가 수박밭으로 가자고 결정을 내렸습니다. 저희 모두는 그 결정에 따르기로하고 이웃마을 수박밭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리고 팔뚝에 살짝 소름이 돋는 약간의 긴장과 스릴을 느끼며, 조용히 목표한 수박밭으로 진입하게 되었습니다. 최하위 서열이었던 성호를 망보는 역할로 남겨두고, 저희 모두는 수박 따는 일에 열중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원두막 위에서 인기척이 나는 겁니다. 저희는 모두 바닥에 납작 엎드려서 그 사람의 행동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그 사람은 저희를 발견한 게 아니었고, 잠결에 소변이 급해서 깬 사람이 저희가 밭에 있는 줄도 모르고, 밭을 향해 시원하게 소변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필 소변이 떨어지는 그 위치에 최하위 서열인 성호가 있었다는 점입니다. 모두들 웃음을 참으며, 저걸 어떡하나 하고 호기심 가득해 지켜봤는데, 성호는 오로지 대를 위해서는 소가 희생되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끝까지 그 상황을 견뎌냈습니다. 수박 주인이 아무런 의심 없이 원두막으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 모두들 성호의 인내에 탄복을 했습니다. 그렇게 수박 주인은 다시 원두막에 올라가 잠이 들었고, 저희는 조심조심 수박서리를 해서 그 밭을 빠져나왔습니다.
밭으로 나오자마자 행동대장이 성호를 크게 칭찬하기 시작했습니다. 일순간 성호는 우리의 영웅이 되었고, 대장의 신임 덕분에 성호는 망을 보던 최하위 서열에서 단숨에 두 계단이나 올라가는 ‘넘버 3’의 서열을 갖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도 거의 마지막 서열에서 맴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 총각 선생님을 만나면서 제 운명도 달라졌습니다. 선생님께서 저희 다섯 명을 댁으로 부르셔서 공부를 가르쳐주셨는데, 거의 꼴찌에서 맴돌던 제가 전교 1등을 해버렸습니다. 비록 작은 시골학교라서 가능한 일이었지만, 그 덕에 서열도 올라가고, 고등학교도 인문학교로 가서 대학공부까지 마칠 수가 있었습니다.
나중에 선생님께서 결혼을 하셔서 신혼의 단 꿈에 빠져 계실 때도, 저희들은 선생님 댁에서 공부한다는 핑계로 밤늦게까지 선생님 댁에 있었습니다. 아마 그 때 사모님께서는 저희가 많이 원망스러우셨을 겁니다.
어쨌든 아주 특별한 추억으로 남아 있는 중학교 3학년 그 시절, 그 때가 벌써 20여 년 전 일이지만, 저희들은 아직까지도 연락을 하며, 한 달에 한번 부부 동반 모임까지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연락 한번 끊기지 않고 우정을 잘 유지해 준 우리 악동들. 이런 친구들이 세상에 또 없다는 걸 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진한 우정과 의리가 죽을 때까지 계속 되길 바라며, 다음 달 또 만날 때까지 다들 열심히 살아주길 바랍니다.
경남 진주 | 서상제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