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미우나고우나울남편”

입력 2008-05-03 00: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결혼해서 남편 따라 서울에서 부산에 내려와 산지 7년이 되었습니다. 연애할 때와는 달리 막상 결혼을 하고 보니까 조금은 서로 맞지 않는 점들이 있어 결혼 초반에는 내가 이 결혼을 잘 한 건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있었느니! 그것은 바로 결혼 초나 지금이나 시댁에 가면 늘 제 편을 들어주는 남편의 행동이었습니다. 하지만 결혼 초에는 남편이 너무 제 편을 들어 문제가 됐습니다. 곱게 키운 아들이 부모는 아랑곳하지도 않고 자기 마누라만 챙긴다며 속상해하시는 바람에 저는 시부모님께 미움을 사는 일이 다반사였죠. 그래서 저는 늘 시댁에 가거나 시부모님과 함께 할 때면 남편에게 “내 편을 들어주는 것이 오히려 더 역효과를 내는 것 같으니 제발 시어머님과 함께 있을 때면 내 편은 들지 말고 어머니 편을 들어달라”고 사정을 했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결혼 초부터 시어머니께 미운 털이 박혔으니, 저는 잘 한다고 해도 오히려 시어머니께 야단맞을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시부모님께서 “손주가 보고 싶어 갈 테니 밥만 해놓으라”고 전화를 하셨습니다. 시어머니께서 진작 말씀해 주셨으면 준비도 미리 해놨겠지만 워낙 갑작스럽게 오신다고 하시니까 장볼 시간도 마땅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냉장고 안에 있는 모든 것 꺼내서 찬거리도 이것저것 만들었습니다. 어머님 말씀이 “평소에 물을 잘 끓여먹어야 몸이 좋아진다”고 하시며 국화와 상황버섯, 대추를 보내주신 게 있었는데, 그것도 새로 끓여서 준비해 뒀습니다. 마침내 시부모님이 오시고 저녁 시간은 무사하게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후식을 준비했는데 어머니 건강을 생각해서 사과와 당근을 같이 갈아서 드렸습니다. 그런데 어머님의 반응은 “나는 배가 불러서 못 먹겠다”였고, 아버님께서는 “나는 이런 거 안 먹는다. 그냥 커피 다오” 하시는 겁니다. 제 딴에는 신경을 쓴 거였는데 아무런 성과가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어머님 말씀이 “네 남편은 속이 냉한데 음식 성질은 잘 알고 해 주는거냐? 그리고, 내가 국화랑 버섯 준지가 언젠데 그게 아직도 있냐. 잘 좀 챙겨서 먹으래도…”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챙긴다고 챙기고 있는데 계속 안 좋은 소리만 듣게 되니 속이 상했습니다. 그리고 참외를 준비했는데, 싱싱해 보였던 참외가 맛이 시큼한 게 또 야단맞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어머님께서 말씀하시기 전에 남편 핑계를 대며 제가 먼저 선수를 쳤습니다. “아범이 맛있어 보이기에 샀다고 하더니 맛이 좀 덜 다네요” 하니까 “그래? 좀 시큼하긴 하구나”하고는 별 말씀 없으셨습니다. 분명 제가 샀다고 했으면 맛없는 것만 골라 산다고 꾸지람 들었을 텐데 말입니다. 가끔은 이렇게 신랑핑계 대는 것도 괜찮겠죠? 저희 남편 늘 하는 말이 “미우나 고우나 내 마누라인데 내가 안 챙기면 누가 챙기냐”고 하는데, 앞으로도 남편이 종종 제 든든한 바람막이가 되어줬으면 좋겠습니다. 부산 서면 | 김민희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