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엄마원숭이는어딨어?”

입력 2008-05-16 00: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전 어릴 때 시내버스가 하루에 달랑 두 번 오가는 흙먼지 폴폴 날리는 시골마을에서 살았습니다. 농번기 때는 아이들도 농사일 돕느라고 학교에 빠지는 일이 많았던 곳이었는데, 저희 부모님은 다행히 공부할 때는 농사일을 시키지 않으셨고, 다만 일요일이나 휴일에 농사일을 거들게 하셨습니다. 매년 어린이날조차 저희 자매는 입을 잔뜩 내밀고 부모님의 고추모종 심는 일을 거들어야만 했습니다. 마당 가득 놓여있는 고추모종을 집 앞에 있는 밭으로 가져가서, 부모님께서 앞장서서 하나하나 모종을 심으셨습니다. 맏이인 저는 그 뒤를 따라다니며 고추모종 옆에 막대를 꽂았습니다. 그러면 막내가 뒤따라오면서 노끈으로 모종과 막대를 묶습니다. 그렇게 고추모종이 모두 심겨지면 그 다음엔 수도에 고무호스를 연결해 고추모종에 일일이 물을 주었습니다. 호스가 닿지 않는 곳은 바가지에 물을 담아 직접 뿌려주고 와야 했습니다. 가끔 동생의 일이 서툴면 제가 대신 노끈을 묶고 물주는 일까지 다 맡아서 할 때가 많았습니다. 이렇게 셀 수 없이 많은 고추모종을 심다보면 한나절이 금방 지나갑니다. 장갑을 끼고 있었지만 제 손엔 물집이 잔뜩 잡히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힘든 휴일을 보내고 학교에 가면 제 라이벌이었던 은주가 “나 어제 광주사직공원 동물원 갔다 왔어. 우리 엄마가 매년 가자고 하시잖아. 넌 가봤니? 난 거기 원숭이 보는 게 제일 재미있더라” 이러면서 자랑을 했습니다. 전 무서운 아버지께 말도 못 하고 언제나 집에 가서 엄마에게 “내년에는 꼭 동물원 구경을 가자”고 조르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께서 “올해 어린이날은 나가 알아서 고추모종 심을텡께∼ 자네는 아그들 데리고 동물원이나 갔다 오소∼” 하시는 겁니다. 얼마나 좋던지 세상이 다 내 것만 같았습니다. 친구들한테 자랑하고, 어린이날이 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어린이날 아침, 새벽같이 일어나서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오전 10시 10분 읍내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습니다. 지금은 광주 사직공원의 동물원이 ‘우치공원’으로 옮겨져 있지만,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사직공원에 동물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버스를 탈 때쯤 맑았던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면서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 같이 흐려졌습니다. 날은 흐려도 비만 오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에 광주 사직공원까지 찾아갔는데, 그 입구에서 굵은 빗방울이 마구 쏟아지기 시작하는 겁니다. 우산도 없고, 저희는 비도 피하고, 점심도 먹을 겸 근처 분식집에 들어가 튀김을 먹었습니다. 하지만 비는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저희는 엄마에게 “이제 어떡하냐”고 떼를 쓰며 울었습니다. 엄마는 비는 왔지만 다시 또 오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무조건 저희들을 데리고 동물원에 들어가셨습니다. 비가 와서 밖에 나와 있는 동물은 거의 없었고, 은주가 재미나게 봤다는 원숭이도 보지 못 한 채 집에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친구들에게 소문낸 게 있었기 때문에, 제대로 동물원 구경을 하지 못 했어도 굉장히 잘 하고 온 것처럼 자랑을 했습니다. 그 자랑을 거의 2년 가까이 계속 했던 것 같습니다. 요새 애들에게 제 어릴 적 이야기를 해주며 동물원에 가자고 했더니, “아휴∼ 동물원은 열 번도 더 갔어요. 이젠 길도 다 알고, 어디에 무슨 동물 있는지 다 알아요∼ 넘 시시해요∼” 이러면서 아들은 손사래를 칩니다. 요즘 아이들에게 동물원은 이제 시시한 곳이 된 모양입니다. 이제 우리 아이들에게는 어떤 추억을 만들어 줄 수 있을지 엄마로서 고민이 참 많습니다. 서울 광장동|조민정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