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서는데, 어둠 사이로 촛불이 켜진 케이크가 보였습니다. 깜짝 놀라서 자세히 봤더니 중학생인 우리 아이들이 저희 부부 결혼기념일이라고 이벤트를 준비했습니다. 다른 집은 여자들이 생일이다 결혼기념일이다 하며 챙긴다던데, 저는 그 쪽으론 좀 무딘 편이어서, 제 생일도 그냥 지나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애들이 좀 크고 나니까 먼저 이렇게 챙겨줍니다. 어쨌든 저보다 먼저 퇴근한 남편한테서 작은 진주알이 박힌 예쁜 목걸이 선물도 받았습니다. 아이들은 왜 엄마아빠 결혼식 비디오가 없냐고, 있으면 같이 보자고 졸랐습니다. 생각해 보니 신혼 때 몇 번 본 뒤로 한 번도 꺼내 본 적이 없었는데, 저도 궁금해서 비디오를 찾았습니다.
서랍장 깊숙이 먼지 가득한 비디오가 나왔는데, 틀자마자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 피아노 연주곡이 흘렀습니다. 잊고 지내던 친구들, 멀리 있는 저희 친척 분들 모두 16년 전 젊은 모습을 보고 너무 반가웠습니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제 모습을 비춰줬는데, 저는 내심 저희 딸이 “엄마도 저렇게 예쁠 때가 있었어?” 하고 말해 주길 기다렸지만, 우리 딸 한다는 소리가 “엄마! 드레스 너무 촌스러워∼ 무슨 웨딩드레스가 저래∼ 그리고 머리 모양도 정말 웃기고, 화장은 또 왜 저렇게 했어? 눈썹은 너무 진하고, 입술은 새빨갛고, 그리고 엄마 덧니 좀 봐∼ 정말 이상하게 나온다∼” 이러면서 막 웃었습니다. 괜히 얄미운 거 있죠? 사실 덧니는 제 콤플렉스였는데, 그렇게 대놓고 웃으니까 저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생각해 보니 드레스도 그 때는 자꾸 입었다 벗었다 하는 것이 미안해 마음에 드는 걸 제대로 고르지 못했습니다.
지금 같았으면 이것저것 다 입어보고 제일 맘에 드는 걸로 입었을 텐데, 지금 생각해도 후회가 됐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퇴장 할 때 치마 속 신발이 다 보였습니다. 복숭아 뼈까지 보일 정도로 치마를 덜렁 들어서 걷는데, 예쁘고 우아하기 보다는 좀 방정맞아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마지막 신랑신부 부모님과 함께 사진 찍는 모습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기쁜 날 웃기는커녕, 시댁 부모님, 친정 부모님, 그리고 저희 부부까지 여섯 명이 마치 화난 사람들처럼 무표정하게 카메라를 노려보고 있는 겁니다. 저야 치아가 고르지 못해서 그랬지만, 다른 분들은 왜 그러셨는지, 모두들 비디오카메라에 찍히는 게 어색해서 그러신 것 같았습니다. 좌우지간 그 모습이 어찌나 웃기던지 저희 가족 배꼽을 빼고 웃었습니다. 그렇게 결혼식 비디오를 모두 보고 나서, 저희 남편 이러더군요. “아∼ 결혼식 따∼악 한번만 더하면 자∼알 할 수 있을 텐데”라구요. 그런데 그게 저랑 또 해 보고 싶다는 소린지, 다른 사람이랑 다시 해보고 싶다는 소린지 몰라서, 제가 노려봤더니 그냥 웃었습니다.
하여튼 벌써 저희가 결혼한 지 16년이나 지났습니다. 세월이 화살처럼 빠르게 지난다고 하더니, 정말 그렇습니다. 처음 결혼할 때 이렇게 저렇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한 것들 참 많았는데, 그걸 얼마나 잘 지키며 살고 있을까요?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충북 충주|박지란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