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늦둥이딸이가져다준큰행복

입력 2008-06-1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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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얼마 전까지 남편 때문에 고민이 많았습니다. 저희 부부는 스물 셋에 동갑내기로 만났습니다. 지금 서른 여섯이 될 때까지 아들 둘 낳고 살고 있는데, 이상하게 저희 남편은 집에 오면 말을 안 했습니다. 연애할 때나, 신혼 때는 안 그랬는데, 두 아들 낳고 나서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왜 그러느냐?”고 물으면 “집에 와도 재미가 없다”고 하고, 작년 결혼 10주년도 그냥 넘어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남편은 이상하게 제 눈을 마주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밥 먹을 때도 아무 말 없이 고개 푹 숙이고 밥만 먹어서 저만 혼자 조잘조잘 떠들어댑니다. “여보∼ 오늘 옆집 아줌마가 쌍꺼풀 수술했는데 너무 예쁘더라. 나도 할까? 안과에서 하면 싸게 한다던데, 나도 눈꺼풀이 쳐져서 시력이 안 좋잖아. 더 늙기 전에 할까? 당신 생각은 어때?” 하고 물었더니 남편이 “맘대로 해”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사실 쌍꺼풀 수술은 그 전부터 고민을 했는데, 남편이 그렇게 무심하게 대답하니 솔직히 서운하기도 했습니다. 도움도 못 얻으니까 정말 답답했습니다. 저는 혹시 예쁜 눈이면 남편이 달라질까 해서 그 얘기 한 다음에 안과에서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눈도 퉁퉁 붓고, 피멍으로 얼룩지고, 눈두덩이가 정말 엉망진창이었습니다. 이대로 가면 남편이 난리 날 텐데, 저는 걱정을 하며 남편을 기다렸습니다. 웬걸, 고개도 안 드는 남편, 제 얼굴조차 제대로 봐주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제 눈이 자리 잡고, 어느 정도 예뻐졌을 때, 남편이 말문을 열었습니다. 저는 당연히 쌍꺼풀 얘긴 줄 알고 바짝 긴장을 했는데, 남편은 뜬금없이 “우리 주위에 임신한 사람 있어? 내가 어제 호박 줍는 꿈을 꿨는데, 아무래도 태몽 같아서” 라고 했습니다. 저는 “태몽? 아니 우리 두 아들 태어날 때는 태몽한번 안 꾼 사람이 왜 다른 사람 태몽을 꿔?” 하면서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이고 말았습니다. 저절로 시비를 건 꼴이 돼버렸습니다. 남편은 놀라서 저를 쳐다봤는데, 제 눈을 보고 또 한번 놀라는 것 같았습니다. “ 당신 눈이 왜 그래? 그거 언제부터 그런 거야?” 하는데, 정말 어이가 없었습니다. 도대체 고개를 안 드니까 마누라가 쌍꺼풀 수술을 했는지, 뭘 했는지 알 턱이 없었던 겁니다. 저는 태몽도 그렇고, 쌍꺼풀 수술도 그렇고, 그 동안 서운했던 걸 죄다 풀어냈습니다. 남편은 그냥 미안하다고만 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몸이 좀 이상한 걸 느꼈습니다. 헛구역질이 나오면서, 졸음도 쏟아지고, 병원에 갔더니, 역시나 임신이라 그랬습니다. 막내 낳고 벌써 8년이 지났는데, 아들 둘에 또 자식이라니, 정말 이건 아니다 싶었습니다. 남편도 분명히 달가워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혼자 고민하다가 어렵게 말을 꺼냈는데, 갑자기 남편이 “뭐? 임신? 그럼 딸이야? 우리 사무실 사람들 다 호박 꿈꾸고 딸 낳았다고 하던데, 그럼 우리 딸 생기는 거야∼ 야호∼” 하면서 밥 먹던 숟가락도 던지고, 박수를 쳤습니다. 그렇게 좋아하는 남편과 함께 정밀검사를 받으러 갔습니다. 남편이 의사선생님한테 딸인지 아들인지 물으면서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의사선생님 꼭 좀 알려주세요! 사실 저희 둘째 낳기 전에 뱃속에서 26주 만에 하늘나라로 보낸 딸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게 마음 아파서 제가 우울증까지 생겼습니다. 매주 교회 가서 우리 딸 다시 돌아오게 해 달라고 얼마나 기도했는지 몰라요.”하고 눈물을 쏟아 냈습니다. 그 동안 사는 게 바빠서 묻어뒀던 일을 남편은 혼자서 가슴에 새기고 있었다니, 그걸 몰라준 제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어쨌든 그 후로 남편은 확 바뀌고 말았습니다. 저 힘들까봐 아이들 데리고 밖으로 놀러나가고, 저 사랑한다는 말도 자주 해 줍니다. 예쁜 공주 갖게 해줘서 고맙다고 격려도 했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아들만 둘이었으면 애기 옷 새로 준비해야 된다고 힌트도 주셨습니다. 남편은 그 동안 제가 힘들어하는 걸 봐서 딸 갖고 싶다는 얘기를 못 했다고 합니다. 앞으로 셋째는 자기가 다 키우겠다고 호언장담을 하고 있습니다. 요즘 저 참 행복합니다. 너무 행복한 저희 부부, 설레는 마음으로 늦둥이 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경기 평촌|허윤정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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