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시작되니 몸도 찌뿌드드하고, 점심을 먹었더니 졸음까지 나른하게 왔습니다. 설핏 선잠이 들었는데,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화들짝 놀라서 전화를 받았는데, 수화기 너머 엄마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니, 자고 있었나? 실은 내 딴기 아이고. 지금 고마 싹 다 해뿌렸거든∼” 하셨습니다. 그래서 “뭐를 예? 뭘 다했는데예?” 하고 여쭤봤더니 “뭐긴 뭐꼬! 운전멘허지∼ 오늘 내가 도로 주행까지 싹 붙어뻐리고, 운전멘허증 나올 거만 기다리고 있다∼”하고 자랑하셨습니다. 저는 깜짝 놀라서 “뭐라꼬예? 어무이가 참말로 도로주행까지 싹 다 붙었어예?” 하고 여쭤보았습니다.
두 달 전 엄마가 운전면허증을 따겠다고 하셨을 때도 저는 말도 안 된다는 투로 “어무이가 그 시험을 우예 칩니꺼? 거 시험에 영어도 있고, 말도 엄청 어려울 낀데, 거∼ 쳐 봤자 안 될 깁니더∼” 하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저희 엄마는 어릴 적에 집이 너무 가난해서, 초등학교까지 밖에 못 나오셨습니다. 그래서 영어도 잘 모르시고, 법이라든지, 자동차 용어 같은 건 전혀 모르는 분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당신 혼자 서점에 들려 면허시험 예상문제집을 사오시더니, 무슨 말인지 모르는 건 무조건 외우시며 시험공부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처음 필기시험을 보러갔는데, 엄마는 정답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 하고, 그대로 돌아오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면허시험이 연필로 푸는 시험지가 아니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마우스로 클릭 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엄마는 컴퓨터 화면만 뚫어져라 쳐다보시다가, 화면이 너무 흐릿하게 보이니까 시험 감독관에게 “여게요∼ 여 글씨가 너무 쪼매한데… 이거 좀 크게… 진하게 해줄 수 없습니꺼?” 하고 여쭤봤는데 감독관이 이랬답니다. “아! 그러시면, 화면을 한번 당겨 보세요”라고요.
성질 급한 저희 엄마는 냉큼 컴퓨터 모니터를 잡아 당겨버렸습니다. 순간 플러그가 뽑히면서 스파크까지 튀었다고 했습니다. 시험관의 눈에도 스파크가 튀었고, 엄마는 당연히 첫 번째 시험에서 불합격 되셨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도전! 엄마는 컴퓨터 악몽에서 벗어나기 위해, 컴퓨터 게임하고 있는 손자를 울려가며 마우스를 뺏으셨습니다. 클릭 연습만 죽어라 하고서 또 시험장에 갔는데, 이번엔 그림을 확대해야하는 문제가 나온 겁니다. 10문제까지는 순탄하게 정답을 클릭해 갔는데, 거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엄마는 또 다시 감독관을 불렀고, 감독관은 “이 문제는 그림을 확대해야 알 수 있는 문제예요. 그림을 확대하면 그 안에 정답이 있습니다”고 하셨답니다.
엄마는 시험관의 힌트를 듣고 얼른 화면에다 ‘확대’ 라고 독수리 타법으로 써 놓으셨습니다. 그렇게 시간초과로 또 불합격이 되셨습니다. 다음에 세 번째 도전을 하셨는데, 그 동안 엄마는 제 남동생을 불러서 단기속성으로 마우스 클릭과 그림확대, 화면 크게 당겨 보는 법 등을 배우셨습니다. 예상 문제집 공부보다는 컴퓨터를 다룰 줄 아는 게 우선이란 걸 깨닫게 되신 겁니다. 덕분에 엄마는 그 힘들다는 국가고시(?)에 64점으로 당당히 합격하셨습니다.
그 다음은 코스시험 준비였습니다. 엄마는 집에 있는 아무 종이에다 코스를 그려 놓고, 혼자서 어정쩡하게 오토바이 탄 자세로 움직이며 연습을 하셨습니다. 코스 과정은 한번에 딱 붙어 버리신 겁니다. 마지막으로 도로주행을 앞두고, 엄마는 자주 꽃단장을 하고 나가셨습니다. 강사 선생님 마음에 들어야 하나라도 더 쉽게, 잘 가르쳐 준다고 하면서 매일 곱게 분을 바르고 나가시니, 아버지는 그런 엄마를 보시며 “고마 때려 치워라∼! 다 늙어서 무신 운전이고!” 하며 역정을 내셨습니다. 하지만 막상 시험 날이 되면 엿과 찹쌀떡을 사 주셨습니다. 그리고 딱 한마디 하셨습니다. “엿 묵으라”!! 그렇게 엄마는 운전면허의 마지막 시험인, 도로주행 시험을 보러 나갔습니다. 그 날도 경찰관한테 예쁘게 보여야 한다면서 미용실에 들려 머리를 하고 가셨습니다.
엄마의 그런 정성 덕인지, 진짜 뛰어난 실력 덕분이지 그 날 엄마는 95점으로 도로주행까지 합격하셨습니다. 의지의 한국인, 부지런한 우리 엄마!! 엄마를 보고 있으면 정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실감하게 된답니다.
경남 밀양|최승혜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