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런던, 베니스, 파리, 베를린, 도쿄, 홍콩, 베이징, 그리고 서울.
이 도시들은 누구나 한번쯤 들어보고, 또 누구나가 한번쯤은 동경의 대상으로 삼았던 장소일 것이다. 특히 이 도시들은 오래전부터 미술가들에게는 편애의 대상이 되는 곳이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도시가 다양한 계층들의 문화들의 뒤엉켜있는 복합적인 장소로서 미술가들에게 삶과 작업의 터전이자, 영감의 근원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미술 감상에 처음 발을 내딛는 일반인들 중 다수가 뉴욕과 런던과 같은 세계 대도시, 즉 메트로폴리스(metropolis)에 대한 관심과 동경을 미술 감상에까지 연결시키면서 자연스레 미술가들의 작품 세계를 접하게 된다.
이렇게 시작된 미술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은 그 출발의 동기야 어찌되었던 간에 미술가들에게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은 미술가의 미래의 잠재적 서포터즈이자 고객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메트로폴리스와 미술과의 이러한 밀접한 관계 속으로 조금만 깊숙이 들어가 보면 일반인들이 낭만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달리 비극의 역사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메트로폴리스는 우리가 막연히 영화나 드라마에서 접하는 화려한 도시인들의 삶의 장소로만 단순하게 환원할 수가 없는 곳이다.
만일 그렇게 환원해버린다면 우리는 뉴요커가 아니라 ‘뉴요커 워너비(New Yoker Wannabe)’라는 오명을 쓰게 될지도 모른다.
가령 ‘빛의 도시’로 불리는 프랑스 파리를 예로 들어보자.
그 곳은 빛의 도시라는 명칭과 달리 18세기 이후 산업혁명과 프랑스혁명(1789) 등 각종 혁명과 사회적 혼란이 만들어낸 격동과 불안이라는 그림자가 서려있는 곳이다. 이 가운데 탄생한 미술 운동이 바로 마네와 모네를 비롯한 젊은 화가들의 모임이었던 ‘인상파 운동’이다.
그런가 하면, 뉴욕이 세계 미술의 중심지로 그렇게 빨리 성장할 수 있었던 까닭에는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의 참상이라는 비극이 엄연히 자리하고 있다. 현대미술의 거장으로 불리는 몬드리안, 뒤샹, 샤갈, 미로가 사실은 나치 정권의 학살을 피해 미국 뉴욕으로 망명 온 작가들이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세계 미술시장의 블루칩 지역으로 등극한 베이징 역시 문화혁명(1966∼76)의 광풍이 휩쓸고 간 비극의 자리이다.
이렇게 현대인의 세련되고 낭만적인 라이프스타일의 본거지라고 여겨지는 ‘보이는’ 도시라는 빛 뒤편에는 역사의 비극과 참상이라는 ‘보이지 않는’ 도시의 그림자가 숨어 있다. 현대미술의 걸작으로 불리는 작품 대부분의 주제가 바로 이 그림자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래서일까, 파울 클레는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예술은 보이는 것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게 하는 것이다.”
박 대 정
유쾌, 상쾌, 통쾌 삼박자가 맞아
떨어지는미술 전시를 꿈꾸는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