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할머니의투명모래주머니아세요?

입력 2008-12-2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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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은 노는 토요일이라 학교에 가지 않았습니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한마음 걷기대회’에 참가하면 봉사활동 시간을 4시간이나 주기 때문에 시간 있을 때 다들 참석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친구들에게 다같이 가자고 했는데, 친구 중에 한 명이 “그런 데는 뭐 하러 가냐? 엄마 일 하시는데 가서 그냥 봉사활동 했다고, 확인사인만 받으면 되지. 난 안 갈 거니까 갈 사람들끼리 약속 정해서 만나”라고 했습니다. 전 그 얘기를 듣고 엄마에게 봉사활동 확인서에 사인 좀 해주시면 안 되냐고 여쭤봤습니다. 엄마는 “학교에서 너네한테 봉사활동 하라고 한 건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거야. 엄마가 사인만 해주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니. 이런 것도 다 다음에 사회에 나가서 서로 돕고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우기 위한 과정이니까, 네가 직접해봐. 엄마는 절대 못해줘”라고 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친구들과 걷기 대회에 참석하게 됐습니다. 행사장소인 천안종합운동장에 가보니 저희 학교 학생들뿐만 아니라 다른 학교 친구들도 많이 와 있고, 어른들도 꽤 많이 오셨습니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대회장 같지 않고 무슨 축제 현장 같았습니다. 잠시 뒤, 오전 11시가 조금 넘자 걷기 대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친구들과 종합운동장을 출발해서 약 4km 정도 되는 코스를 같이 걷기로 했습니다. 그 날은 도로가 통제 돼 있어서 도로 위를 자유롭게 걸었는데, 평소에는 차들이 쌩쌩 다니는 거리를 도보로 걷는 게 기분이 참 묘했습니다. 반환점을 돌아 쿠폰 하나를 받았습니다. 3000원짜리 국수 한 그릇을 500원에 사 먹을 수 있는 쿠폰이었습니다. 출발점으로 돌아가면 국수부터 먹어야겠다고 생각하고 그 쿠폰을 주머니에 잘 넣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걷기를 두 시간, 처음엔 금방 끝날 거라 생각했는데, 운동량이 부족해서인지 속도는 점점 줄어들기만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아무렇지 않아 보이고, 멀쩡해 보이는데, 저 혼자만 힘들어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가까스로 종합운동장에 들어서자 중간에 속도 차이가 나서 저보다 먼저 들어온 친구가 저를 반겨주었습니다. 저보다 늦게 온 친구도 한참 후에 도착을 했습니다. 저희는 쿠폰으로 국수부터 사 먹고, 다 같이 본부석에 가서 확인 사인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봉사활동 4시간은 채울 수 있었습니다. 몸이 너무 힘들어 빨리 집에 들어갈 생각에 부리나케 행사 부스들을 지나가고 있었는데, 한쪽에 ‘노인체험 행사장’이라는 부스가 있었습니다. 뭐하는 곳인가 들어가 봤더니, 노인체험을 하려면 모래주머니가 달린 특수복장을 입어야 한다며 저에게 그 옷을 입혀주었습니다. 그런데 몸이 얼마나 무거운지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 행사장에 있던 분이, 지금 우리가 느끼는 것들이 평상시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일상이라고 얘기 해주셨습니다. 그 체험을 받고 나서야 왜 우리 할머니의 걸음이 느리기만 하셨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처음에는 별 생각 없이 봉사활동 시간만 채우려고 참가한 한마음 걷기 대회였지만, 끝날 때쯤엔 가슴 속에 남는 것도 많고, 앞으로 더 노력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봉사활동 시간도 받을 수 있어 좋았지만, 무엇보다 제가 여러 가지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돼서 무척 즐거운 하루였습니다. 충남 천안 | 이일우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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