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실업자 재취업과정에서 패션디자인을 공부하는 아줌마입니다. 저희 반 선생님은 30대 후반으로 유독 ‘창작품’을 강조하는 분입니다.
“여러분! 디자인 할 때는 생각을 많이 하셔야 돼요. 그냥 이 정도면 되겠지, 하지 마시고 한 번 더 생각하고 고민해서, 창작품을 만들어주세요” 이런 말씀을 자주 하십니다.
저희들이 가지각색 독특한 디자인을 들고 질문공세를 펼치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홍길동처럼 한사람 한사람한테 다가가 꼼꼼히 가르쳐주십니다. 비쩍 마른 체격인데도 얼마나 열심히 뛰어다니는지, 그 열성과 정성이 그저 고맙기만 합니다.
그러다 얼마 전, 선생님께서 바지 디자인하는 걸 알려주시고 역시 ‘창작품’을 만들어 보라고 주문하셨습니다. 저는 뭔가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없는지 패션잡지를 훑어보기도 하고, 지나다니는 사람들 바지를 유심히 관찰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훌쩍 커버린 우리 중학생 아들 생각이 났습니다. 아들이 요즘 입을만한 바지가 없는데, 혹시 남자 바지도 괜찮은지 궁금했습니다. 제가 여쭤보자 선생님은 “어머! 남성 바지도 좋죠! 아저씨 만들어주시려고요? 남성복 바지는 여성복과 다르게 앞쪽에 주름 다트 잡아주셔야 돼요” 하고 친절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아저씨 바지라는 말에 남편이 또 마음에 걸렸습니다. 남편 바지도 많이 낡은 것 같은데, 그렇다고 바지를 두 벌 만들 수도 없었습니다. 아들 걸 만들어야 되나 남편 걸 만들어야 되나 고민이 됐습니다.
그러다 중학생 아들은 교복이 있으니까 다음에 만들어 주기로 하고, 일단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남편 바지를 만들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날 저녁, 남편에게 “여보, 나 당신 바지 한번 만들어 보려고 하는데, 당신 치수 좀 재도 돼?” 그러니까 남편이 황당하다는 듯이 “뭐라꼬? 바지? 하이고∼ 당신이 그런 걸 만들 수 있겠나? 고마 바지는 됐고, 당신 치마나 만들어 입어라. 그게 훨씬 쉽겠다” 이러면서 저를 살짝 무시하는 말을 하는 겁니다.
저는 오기가 생겨서 “나 학원에서 다 배웠거든? 우리 아들 거 만들어 주려다가 당신 거 만드는 거니까 고마운 줄 알고 얼른 이쪽으로 와!” 하고 치수를 재기 시작했습니다. 마흔 여덟이 다 되도록 바지 한번 맞춰 본 적이 없는 우리 남편! 아마 치수 재는 게 처음이라 몹시 당황스러웠던 모양입니다.
다음 날, 저는 큰 종이에 남편의 바지치수를 디자인하고, 선생님께 봐달라고 꼼꼼히 검사 맡고, 검은 코듀로이(골덴) 천을 재단하기 시작했습니다.
여성복 바지와 달리 남성복 바지는 주머니 하나 만드는 것도 참 어렵습니다. 하지만 남편의 첫 맞춤 바지니까 잘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에 앞주머니에 지퍼도 달고, 차분하게 한 땀 한 땀 옷을 만들어 갔습니다.
그렇게 디자인 시작한지 3일 만에 드디어 바지를 완성했습니다. 선생님은 바지를 이리저리 검사하시더니 “남편 분이 참 뿌듯하시겠어요. 잘 만드셨어요” 하면서 사진까지 찍었습니다.
나중에 잘 한 작품만 모아서 뒤에 게시판에 붙여준다고 했는데, 열심히 한 만큼 인정을 받으니까 너무 좋았습니다.
남편은 바지를 받자마자, “와∼ 내 바지가 벌써 다 됐나?”하고 후닥닥 입어보더니 거울을 보며 “야∼ 당신 진짜 솜씨 좋테이. 내 내일부터 당장 입고 출근 할란다” 하면서 싱글벙글 입이 귀에까지 걸렸습니다.
저도 남편 몸에 잘 맞는 바지를 보자 흐뭇했습니다.
남편이 맞춤바지를 입고 이렇게까지 좋아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빨리 빨리 실력이 늘어서, 재취업도 얼른 하고, 우리 남편 좋은 맞춤옷도 많이 만들어주고 싶습니다.
부산 진구 | 하정연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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