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네살배기우리딸은동네반장

입력 2009-01-0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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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부부는 내 집 장만을 하고 3월이면 새 아파트에 입주하게 됩니다. 그 전에 전셋집 계약이 만료돼서, 제 두 딸은 ‘경북 의성군’에 있는 친정에서 지내게 됐습니다. 그런데 시골로 이사 온 후, 네 살 된 우리 딸아이에게 조금 특별한 변화가 생겼습니다. 이 아이가 처음엔 낯선 환경 때문에 밖에 나가지도 못 하고 쭈뼛쭈뼛하더니, 동네 할머니들이 응석도 받아주고, 귀여워 해주시니까 이제는 온 동네를 휘젓고 다니며 어른들 말투, 행동을 다 따라합니다. 얼마 전엔 옆집 할머니 댁에 며느님이랑 손자들이 다녀갔는데, 제 딸아이가 “자제분들은 다 돌아 가셨어요? 또 속상해서 우셨어요?”이러면서 옆집 할머니랑 대화를 하는 겁니다. ‘자제분’이란 말은 어디서 배웠으며, 할머니가 우시는 건 또 어떻게 알았는지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리에서 일어날 때도 할머니들처럼 ‘에그그…’ 이러면서 일어나고, 걸을 때도 뒷짐 지고 걷거나 나뭇가지를 지팡이 삼아 짚고 다닙니다. 뭘 먹을 때도 자꾸 손으로 먹으려고 해서 혼도 많이 났습니다. 지난번엔 물을 마시는데, “캬!” 이러면서 컵을 내려놓았습니다. 제가 깜짝 놀라서 “너 이거 누구한테 배웠어? 누가 이렇게 해?” 하니까 “논에 가면 할머니들이 다 그래” 이러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넌 안돼. 어린애가 그런 소리 내며 물 마시는 거 아니야, 못써” 하니까, 애가 눈웃음을 살살 치면서 “아이구마∼ 괘안타∼ 원래 다 그런 거다∼” 이러면서 웃고 있었습니다. 어찌나 어이가 없는지…저도 같이 웃어버리고 말았답니다. 거기다 요즘은 할머니들 집 드나드는데 재미를 붙여서, 아침 일찍 나가면 저녁 늦게 들어옵니다. 이집 저집 순례하며 맘에 드는 집에서 점심 얻어먹고, 논에서 일하는 할머니들 계시면 거기서 새참도 얻어먹고 다닙니다. 가끔은 아무 할머니 집에 들어가서 냉장고 문을 열어보기도 하고, 사탕도 함부로 집어먹을 때가 있습니다. 제가 너무 죄송하고, 또 폐 끼치는 것 같아서, 한번은 아예 못 나가게 딸애를 잡았는데, 어찌나 떼를 쓰며 우는지 모릅니다. “엄마 미워, 할머니들이 나 기다린다고, 코∼ 자고 빨리 오랬단 말이야. 엄마는 알지도 못 하면서 왜 못 나가게 해!!” 이러면서 엉엉 우는데,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었습니다. 거기다 이제는 할머니들이 다 친구가 돼서 “꼬꼬 할매야∼ 이따 장에 가면, 아이스크림 좀 사도. 팥들은 거는 맛없고, 빨갛고 수박맛 나는 아이스크림으로 사도∼ 그리고 진수 할매는 손가락에 끼워 먹는 과자 사도. 사탕은 이 썩으니까 그건 사지 말그래이∼” 이러면서 간식거리까지 주문을 합니다. 할머니들한테 반말을 하지 않나, 뭐 사달라고 하지 않나, 지난번엔 저희 어머니한테 “문디야∼” 이런 말을 해서 제가 회초리 들고 혼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저희 어머니께서 “나중에 너거끼리 살 때 혼내라. 내는 내 새끼 맞는 거 몬 본다” 이러면서 못하게 말렸습니다. 그래서 애가 너무 버릇이 없는 것 같다고, 남편에게 야단 좀 치라고 하면 말로만 “밖에서 노는 건 좋은데 밥은 꼭 집에 와서 먹고, 어둡기 전에 들어와라” 이렇게 야단을 칩니다. 제가 좀 더 따끔하게 야단치라고 하면 “내버려 둬. 아직 어린앤데 조금 더 크면 저절로 고쳐져. 그리고 할머니들하고 같이 있는 건 정서적으로 더 좋을 수도 있어” 이러면서 별로 대수롭지 않게 넘겼습니다. 온 동네 헤집고 다니며 “할무이 있나? 희경이 왔는데∼” 이러고 다니는 우리 딸, 이걸 그냥 애교로 봐야하는 건지, 야단을 쳐야 되는지 이제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경북 의성 | 서민숙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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