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포항국제음악제가 ‘인연(Affinity)’이라는 주제 아래 11월 7일부터 13일까지 이어진 일정을 마치며 도시 전체에 클래식의 여운을 남겼다. 올해로 다섯 번째를 맞은 이번 음악제는 실내악 중심의 구성, 지역 기반 창작곡, 세계 정상급 아티스트 초청이라는 세 축을 단단히 세우며 보다 또렷해진 정체성을 드러냈다.

개막 공연에서 첫선을 보인 윤한결 작곡가의 관현악곡 ‘별신굿’ 세계초연은 가장 큰 반향을 일으킨 작품이었다. ‘동해안 별신굿’을 서양 관현악의 언어로 재해석한 이 곡은 불규칙적이면서도 힘 있는 타악 리듬, 긴장을 뚫고 나오는 선율, 한국적 정서가 깃든 음향을 교차시켜 관객들의 호평을 받았다. 윤한결은 “별신굿의 강렬한 리듬과 소리의 흐름을 현대 음악 언어로 재구성했다”고 설명했다. 포항의 지역성과 세계적 감각을 잇는 시도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었다.

이어진 말러 교향곡 1번 무대에서는 ‘포항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도약이 뚜렷했다. 악단의 색깔이 선명해졌고, 축제의 얼굴로서 존재감을 확실히 보여줬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개막 공연 이후 펼쳐진 메인 프로그램들은 전석 조기 매진을 기록하며 전국 각지의 관객을 끌어모았다.

특히 8일 무대에 선 하겐 콰르텟은 음악제 5년의 역사 중에서도 가장 상징적인 순간을 남겼다. 세계 최정상의 현악사중주단이 은퇴를 앞둔 투어의 첫 포문을 포항에서 열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관객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이날 연주한 바흐 ‘푸가의 기법’ 일부와 쇼스타코비치 8번, 슈베르트 15번은 이들의 노련함과 완성도를 증명하는 무대였다.

소프라노 황수미와 베이스바리톤 사무엘 윤의 듀오 공연도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광기에서 웃음으로’라는 테마 아래 프랑스·독일·오스트리아·영미권 레퍼토리를 넘나드는 구성으로 70분간 인터미션 없이 이어진 이 무대는 음악제 기간 가장 뜨거운 반응을 기록한 프로그램이었다.

마지막 날 무대에서는 피아니스트 손민수와 포항시립교향악단의 베토벤 ‘황제’ 협연, 이어진 실내악 공연이 피날레를 장식했다. 브람스 오중주와 성우 윤동기가 참여한 차이콥스키 육중주는 연출과 연주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감동을 더했다.

음악제의 핵심 기획 중 하나인 ‘포커스 스테이지’에서는 첼리스트 이슈트반 바르더이와 피아니스트 박진형의 무대가 큰 호응을 얻었다. 지역 연계 프로그램도 강화됐다. 꿈의 오케스트라 포항이 함께한 ‘아티스트 포항’, 세계적 연주자와 함께하는 마스터클래스 등은 지역 청소년들에게 의미 있는 경험을 제공했다.

올해 음악제는 공연장에 국한되지 않았다. 경상북도교육청문화원, 대잠홀, 효자아트홀, 동빈문화창고1969, 포은중앙도서관 등 시민 생활권으로 확장된 무대 운영을 통해 ‘도시 전체가 하나의 무대가 된 음악축제’라는 평가를 얻었다.

포항의 도시·산업·문화 이미지를 함께 보여주는 공간 연출도 눈길을 끌었다. 해안가 공장 전망과 어우러진 조명 디자인은 ‘철의 도시’라는 기존 이미지를 문화 콘텐츠와 결합시키는 새로운 시도로 주목받았다. 공장 지역을 문화벨트로 활용하려는 흐름 속에서 포항국제음악제는 도시 정체성을 확장하는 축제 모델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한편 올해 음악제에는 35개 후원사가 참여해 공연 운영과 해외 아티스트 초청을 지원했다. 포항문화재단은 이번 음악제가 시·군 통합 30주년과 APEC 정상회의 개최 시기와 맞물리며, 포항이 세계와 소통하는 도시로 나아가는 비전을 제시했다고 의미를 전했다. 포항문화재단 관계자는 “음악은 사람과 공간, 과거와 현재를 잇는 가장 따뜻한 인연”이라며 시민과 관객에게 새로운 연결과 영감을 남긴 축제였다고 말했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