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멈춰 선 삶은 생각보다 오래 제자리를 맴돈다.
극단 여름의 연극 ‘양갈래머리와 아이엠에프’는 CKL스테이지에서 1997년 외환위기 이후를 살아낸 가족의 시간을 다시 펼친다. ‘아이엠에프(IMF)’라는 단어가 여전히 마음 한쪽에 남아 있는 세대를 향해, 이 작품은 주저하면서도 버텨온 사람들의 삶을 담담하게 비춘다.

이번 공연은 한국콘텐츠진흥원 지원으로 제작됐고 12월 10일부터 13일까지 서울 중구 CKL스테이지에서 열린다. 평일은 오후 7시 30분, 토요일은 오후 3시 공연이며, 12월 12일 공연은 한국소극장협회 ‘야간 공연관람권 운영사업’ 선정작으로 특별 관람 프로그램이 더해진다.

작품은 외환위기 뒤에 무너진 생활을 다시 세우려 했던 한 가족의 시간을 따라간다. 식당을 전전하다 잇달아 실패한 아버지, 살림 전쟁을 버텨온 어머니, 그리고 여전히 군대와 직장에서 상처를 입는 청년들까지. 등장인물들은 억울하고 황망한 시간들을 마주하지만, 그 속에서도 웃음과 온기가 남아 있는 일상의 조각들을 놓치지 않는다.
배우들의 연습 장면             사진제공 | 극단 여름

배우들의 연습 장면 사진제공 | 극단 여름


윤미현 작가의 ‘양갈래머리와 아이엠에프’는 2021년 두산아트센터 공동기획으로 초연됐고, 현실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시선과 단단한 문장력으로 주목받았다. 4년 만에 CKL스테이지로 돌아오는 이번 무대는 초연의 반응을 기반으로 시간이 더해진 새로운 해석을 보여준다.

배우진도 작품만큼 굳건하다. 국립극단 시즌단원 출신 황규환이 삶의 방향을 잃고 무기력에 빠진 ‘나’를 연기한다. 외환위기 뒤 자영업 실패를 반복하다 경비원이 된 아버지 역은 이호성이 맡아 존재감을 드러낸다. 콜라텍 주방에서 일하다 치매를 앓는 어머니는 조주경, 포목점에서 일하는 여동생은 김영선이 연기한다. 이 가족의 궤도와 함께 살아온 예전 경비원 역에는 심영민이 참여하고, 방은영·오세현도 무대에 선다.

작품은 아이엠에프를 단순한 상처로 남기지 않는다. 경제적 기반이 무너진 시기에도 각자 자리에서 버티고 살아냈던 가족들의 일상을 조용히, 그러나 힘있게 되짚는다. 위기를 헤쳐온 사람들의 시간이 결국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무대 위에 천천히 올려놓는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