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시즌, 닌자고 콘셉트로 꾸민 레고랜드 호텔의 룸 내부. 꼬마 닌자들에게는 모험의 시작 또는 연장의 공간이다.   춘천 | 양형모 기자

이번 시즌, 닌자고 콘셉트로 꾸민 레고랜드 호텔의 룸 내부. 꼬마 닌자들에게는 모험의 시작 또는 연장의 공간이다. 춘천 | 양형모 기자


[스포츠동아 양형모 기자] 레고랜드 앞에 노란색 셔틀버스가 멈추자, 잠시 시공간의 왜곡을 경험해야 했다. 하체 운동이 시급한 중년 아저씨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거대한 플라스틱 브릭으로 쌓아 올린 환상의 성. 강원도 춘천의 푸른 하늘 아래, 원색의 강렬함이 망막을 강타해 왔다.

레고랜드 호텔로 발걸음을 옮긴다. 어느 온라인 사이트에서 레고랜드를 다녀간 엄마의 후기가 떠오른다. 아마 “아이가 신라호텔보다 좋대요”라는 내용이었을 것이다. 아이들의 눈은 때때로, 혹은 자주 어른들과 다른 것을 본다. 레고랜드는 아이들의 시력에 최적화되어 있는 곳이다. 그렇다. 이곳은 호텔의 격조를 대리석의 질감이 아닌, 브릭의 개수로 증명하는 장소인 것이다.



닌자고 룸: 불과 흙의 기운이 감도는 수련의 장
체크인하고 들어선 ‘닌자고(Ninjago) 룸’은 (적어도 어른들의 눈으로는) 휴식이라는 단어와는 정반대 지점에 놓여 있었다. 문을 여는 순간, 온통 붉은빛의 강렬한 인테리어가 시야를 압도한다. 이번 시즌 닌자고 15주년을 맞아 작정하고 꾸며진 이 방은, 단순히 잠을 자는 곳이 아니라 어린이 고객들을 ‘닌자의 길’로 입문시키는 전초기지다.

벽면엔 불의 닌자 ‘카이’와 물의 닌자 ‘냐’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 장풍을 쏘고 있고, 천장 부근에는 스승님인 ‘마스터 우’가 인자하게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이들을 위한 2층 침대 구역은 압권이다. 흙의 닌자 ‘콜’의 테마를 살려 거대한 동굴 속 광산을 탐험하는 듯한 벽화가 그려져 있다. 2층 침대칸마다 설치된 전용 독서등은 꼬마 닌자들이 밤늦도록 닌자고 도감을 탐독하기에 최적의 조도를 제공할 것이다.

벽에 걸린 액자 아래에 작은 박스가 금고다.

벽에 걸린 액자 아래에 작은 박스가 금고다.


레고랜드 호텔의 복도. 레고가 아닌 곳이 없다.

레고랜드 호텔의 복도. 레고가 아닌 곳이 없다.

방 한구석에 놓인 보물 상자 형태의 금고는 이 방의 백미다. “방안에 숨겨진 닌자의 무기는 몇 개인가?”, “카이의 엘리먼트 심볼은 어디에 있는가?” 같은 퀴즈를 풀어야만 금고의 비밀번호를 얻을 수 있다. 어른들조차 눈 바짝 뜨고 벽화를 훑게 만드는(물론 아이들 성화에) 이 치밀한 놀이 설계. 금고를 열고 ‘보물’을 손에 넣은 아이의 표정은 세상을 다 가진 용사 그 자체일 터다.
문이 열리면 현란한 조명와 댄스 음악이 쏟아지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현란한 조명와 댄스 음악이 쏟아지는 엘리베이터.



엘리베이터 만난 꼬마 닌자
밖으로 나가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문이 닫히자마자 천장의 미러볼이 돌며 조명이 현란하게 춤을 췄다. 스피커에서는 심장을 울리는 댄스 음악이 흘러나왔다. 옆에 서 있던 대여섯 살 남짓한 꼬마 하나가 화려한 스텝을 밟기 시작했다.

“이 노래 좋아하니?”
내 질문에 아이는 춤을 멈추지 않은 채 진지한 얼굴로 답했다.

“아저씨, 여기선 가만히 있으면 안 돼요. 춤춰야 문이 열리거든요!”
아이의 천진난만한 ‘가짜 뉴스’에 허를 찔렸다. 얼떨결에 아이를 따라 어색하게 어깨를 들썩였다. 거울 속 내 모습은 영락없이 고장 난 레고 인형 같았지만, 아이는 만족스러운 듯 엄지를 치켜세워 줬다.

미식가 A씨와의 조식 접선: 단짠의 정석과 코리안 레전드
다음 날 아침, 2층 ‘브릭스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여행 파트너 A씨를 만났다. 그는 오로지 레고랜드 조식을 맛보기 위해 아침 이 시간에 달려와 식당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그는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는 꼿꼿한 자세로 메뉴를 분석하고 있었다.

“A씨, 일찍 오셨네요. 메뉴들이 아이들 입맛에 맞춰 놓은 것 같습니다. 어제 하룻밤 묵어보니 호텔 자체가 그렇더군요.”

브릭스 패밀리 레스토랑. 빈그릇 수거를 위해 로봇이 돌아다니고 있다.

브릭스 패밀리 레스토랑. 빈그릇 수거를 위해 로봇이 돌아다니고 있다.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A씨는 소불고기를 한 점을 집어 입에 넣더니 평을 내놓았다.
“그렇군요. 소불고기의 당도가 아이들의 기호에 정확히 맞춰져 있어요. 아미노산의 감칠맛을 당분이 끌어 올리는 전형적인 ‘단짠’의 정석입니다.”

이번엔 접시 위의 소시지를 포크로 쿡 찍었다.
“이 화이트 허브 소시지는 자극을 줄이고 육질의 탄력을 살렸군요. 꼬마 닌자들의 아침 단백질 보충용으로 설계된 식단입니다.”

베이커리 코너를 지나 시리얼 라인에 도착했을 때, 검은 고리 모양의 시리얼을 보며 물었다.
“A씨, 저 검은색 도넛처럼 생긴 건 뭔가요? 아이들이 저 하얀 가루 같은 것만 골라 담느라 난리인데 말이죠.”

A씨가 쓱 보더니 별것 아니라는 말투로 대답했다.
“이건 ‘오레오 오즈’라는 녀석입니다. 단순한 과자가 아니라 식품 사회학적인 전설이죠. 브랜드 권리문제로 전 세계에서 오직 한국에서만 생산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당시 외국인들이 한국 관광 기념품으로 박스째 사 가던 ‘역수출’의 아이콘이죠. 저 하얀 건 마시멜로인데, 당분과 지방의 조화가 뇌의 도파민을 즉각적으로 자극합니다. 아이들이 저걸 골라 담는 건 생존 본능에 가까운 집중력이라 할 수 있죠.”

아이들은 진짜 닌자라도 된 듯 신중한 얼굴로 시리얼 볼 안에서 마시멜로만 쏙쏙 골라 담고 있었다. 부모들은 호밀빵과 건강한 그래놀라를 담으며, 아이들의 ‘당분 파티’를 흐뭇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또우장과 요우티아오: 춘천에서 만난 대륙의 아침
이날의 화룡점정은 또우장(豆漿)과 요우티아오(油條) 코너였다. 갓 튀겨낸 꽈배기 같은 요우티아오가 바구니에 가득 담겨 있었다.

“이건 그냥 꽈배기를 두유에 찍어 먹는 거 아닌가요?”
내 질문에 A씨가 안경을 고쳐 쓰며 설명을 시작했다.

또우장과 요우티아오 코너

또우장과 요우티아오 코너

“요우티아오는 단순한 튀김 빵이 아닙니다. 고온에서 빠르게 팽창시켜 겉은 바삭하고 속은 공기층으로 가득 찬 구조를 가져야 하죠. 이걸 따뜻하고 달콤한 두유인 ‘또우장’에 적시면, 공기층 사이로 두유가 스며들어 기막힌 식감을 완성합니다. 영국 유학 시절 차이나타운에서 자주 접했죠. 가격도 싸니까요. 탄수화물의 고소함과 단백질의 부드러움이 격렬하게 충돌하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소한 첫맛이 부드러운 뒷맛을 끌어안으며 혀끝에서 황홀한 교차로를 만드는군요.”

아이들도 이 ‘찍먹’의 재미에 푹 빠져 입가에 하얀 두유 수염을 달고 즐거워했다. 서빙 로봇이 지나가자 아이들은 빈 접시를 로봇에게 건네며 다시 놀이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개장 1분 전: 성문이 열리는 풍경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와 창밖을 내다봤다. 북한강의 평화로운 풍경 옆으로 레고랜드 파크의 정문 게이트가 보였다. 오전 9시 57분. 개장을 앞두고 직원들이 게이트 앞으로 나와 손을 흔들며 환영의 인사를 준비하고 있다.

레고랜드 정문이 열리는 순간만을 기다리며 긴 줄을 선 사람들. 개장 시간이 임박하면 직원들이 나와 한 줄로 서서 손을 흔들며 고객 맞이를 시작한다.

레고랜드 정문이 열리는 순간만을 기다리며 긴 줄을 선 사람들. 개장 시간이 임박하면 직원들이 나와 한 줄로 서서 손을 흔들며 고객 맞이를 시작한다.

“드디어 천국의 문이 열리는군요.”

드디어 오전 10시 정각, 성문이 열리는 순간 인파가 보물 창고를 발견한 원정대처럼 안으로 밀려들어 갔다. 꼬마 닌자들이 왁왁 소리를 지르며 뛰어간다.

“A씨는 이번 투어에서 어떤 부분이 가장 좋으셨습니까. 역시 영국 유학시절을 추억하게 해 준 요우티아오였을까요?”
A씨는 짐을 챙기는 두 손을 멈추지 않은 채 말했다.
“아이들이 행복해하는 뷔페식당의 소음이요. 조식의 풍미를 완성하는 건 결국 그 ‘생기’니까요.”

레고랜드 호텔 로비

레고랜드 호텔 로비

어랏? 예상치 못한 그의 감상에 잠시 할 말을 잃었던 것 같다. 노란 셔틀버스를 타고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길, 레고랜드의 원색은 여전히 눈부셨다. 엄마, 아빠들에게는 조금은 피곤하고 정신없는 여행이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아이의 기억 속에 평생 남을 ‘닌자의 성’을 선물했다는 보람과 자긍심이 노란 버스 안에 가득 찼다. 그거면 된 거 아닌가.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