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계 칠레 여자 탁구 국가대표 쩡즈잉(57).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중국 태생의 칠레 여자탁구 국가대표 쩡즈잉(칠레 이름 타니아)은 자국에서 열리고 있는 2023 팬 아메리칸 게임(아시안 게임과 같은 성격) 여자 탁구 단식 첫 경기에서 도미니카 공화국의 페냐 브리토를 세트 스코어 4-2로 꺾은 후 하룻밤 새 칠레에서 유명 인사가 됐다.
쩡즈잉은 첫 두 세트를 내줬으나. 열광적인 홈팬들의 응원에 힘입어 전세를 뒤집었다.
“탁구 할머니를 보러 왔어요.”
칠레의 탁구 팬 구스타보 이바라(14)는 31일(현지시각) 쩡즈잉과 릴리 앤 장(미국)의 16강전에 앞서 AP통신에 말했다.
“칠레 국민 모두는 그녀가 이기는 것을 보고 싶어 합니다. 정말 겸손한 선수예요.”
쩡즈잉은 두 자녀를 뒀지만 손주는 없어 ‘할머니’는 아니다.
가브리엘 보리치 칠레 대통령도 TV로 그녀의 중계를 챙겨보는 새로운 팬이다. 보리치 대통령은 쩡즈잉이 전날 역전승을 거두자 “엄청나다”라는 글을 소셜 미디어 계정에 올렸다.
쩡즈잉은 1989년 톈안먼(천안문) 민주화 시위로 나라가 큰 혼란에 빠졌을 때 홀로 중국을 떠나 칠레에 정착했다. 그로부터 약 34년이 지난 지금, 57세의 쩡즈잉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그녀는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에서 열리는 팬 아메리칸 게임에서 가족은 물론 수백만 명의 팬으로부터 응원을 받고 있다.
그녀는 산티아고에서 북쪽으로 1800km 떨어진 ‘세상에서 가장 건조한’ 아타카마 사막 근처의 도시 이키케에서 평생을 살았다. 지역 어린이들에게 탁구를 가르치는 일을 최근까지 주요 수입원으로 삼았다.
쩡즈잉은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유행 시기에 비로소 전문 선수로서 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주머니 속 송곳은 뚫고 나오기 마련. 얼마안가 칠레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현재 국제탁구연맹(ITTF) 여자단식 147위에 올라있는 그는 내년 파리 올림픽 출전을 꿈꾸고 있다.
중국계 칠레 여자 탁구 국가대표 쩡즈잉(57).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저는 제가 가진 모든 것을 걸고 싸우고 있고, 서포터들도 저를 응원해주고 있습니다. 매우 자신감이 생겼어요. 이렇게 높은 수준에서 경쟁하는 것은 저에게 새로운 경험입니다”라고 쩡즈잉이 31일 말했다.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죠. 몇 가지가 조금 어긋나기도 하고요. 하지만 사람들은 저를 똑같이 응원합니다. 이런 일은 정말 예상하지 못했어요.”
“(칠레 북부 항구도시) 아리카 탁구협회의 초청으로 이 나라에 왔어요, 이후 이키케로 이사해 줄곧 그곳에서 생활하고 있어요, 저는 의심할 여지없는 완전한 칠레 사람이에요”라고 쩡즈잉이 드라마를 통해 익히 유창한 스페인어로 말했다.
이날 쩡즈잉이 미국 선수 릴리 앤 장과 대결하기 위해 경기장인 올림픽 트레이닝 센터에 들어서자 엄청난 함성이 터졌다.
하지만 쩡즈잉은 몸놀림이 민첩한 릴리 앤 장의 상대가 되지 못 했다. 전에도 패한 적이 있는 릴리 앤 장에게 세트 스코어 0-4로 져 16강에서 탈락했다.
“57세의 선수가 이 대회에서 우리와 함께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어요.” 승리한 릴리 앤 장이 경기가 끝난 후 말했다.
비록 패했음에도 쩡즈잉은 경기장 밖에서 팬들의 사인 요청에 응하느라 분주했다.
“이번 패배로 조금은 속상할 것 같아요. 하지만 인생은 계속 됩니다”라고 그녀는 말했다.
“이 스포츠는 여전히 저에게 가장 위대한 것입니다. 이 일을 하는 하루하루가 행복합니다.”
동아닷컴 박해식 기자 pistols@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