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 골프의 브룩스 켑카·브라이슨 디샘보, PGA 투어의 스코티 셰플러·로리 매킬로이(왼쪽부터)가 18일 열린 크립토닷컴 쇼다운을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 ㅣ 쇼다운
쇼다운(showdown)은 승부를 가리는 결정적 전투라는 의미다. PGA를 대표하는 스코티 셰플러(미국)와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 LIV를 대표하는 브룩스 켑카와 브라이슨 디샘보(이상 미국)가 18일(한국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의 섀도 크리크 골프클럽에서 열린 이벤트 대회 ‘크립토닷컴 쇼다운’에서 맞대결을 벌였다. 전문가 예상대로 셰플러와 매킬로이가 켑카와 디샘보를 여유있게 이겼다. 경기 내용은 싱거웠고, 경기 형식은 산만했다. 크립토닷컴은 상금으로 줄 충분한 암호화폐를 가지고 있었지만, 골프에 대한 이해는 부족했다.
최고 선수들을 한 화면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좋았다. 꾸준함을 바탕으로 간혹 너무 좋은 샷을 치는 셰플러와 너무 좋은 샷을 바탕으로 간혹 꾸준한 매킬로이의 조합을 이길 수 있는 팀은 거의 없을 것처럼 보였다. 팀 대항 매치 플레이에서 매킬로이만큼 강력한 선수는 없고, 결정적인 순간에 셰플러만큼 신뢰할 수 있는 선수는 없다.
쇼다운은 ‘아래로 내려 보여준다’라는 뜻이다. 포커 게임에서 마지막에 플레이어가 자신의 패를 공개하는 순간이 쇼다운이다. 이 단어는 승패를 최종적으로 가려 대립을 궁극적으로 해소하는 순간을 널리 지칭한다.
이번 대결로 PGA와 LIV의 갈등과 대립이 끝난 것이 아니고, PGA가 최종 승자가 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대회 타이틀은 과했다. 그러나 PGA와 LIV의 갈등이 눈에 띄게 줄고 있는 상황에서 합병 성사가 가시권에 들어왔다는 인상을 주는 데는 성공했다.
승부가 결정 난 후에 패배한 디샘보(왼쪽)가 승리한 매킬로이와 악수를 하고 있다. 매킬로이는 경기 전에 US오픈의 패배를 설욕하겠다고 말했다. 사진제공 ㅣ 쇼다운
이 대회 대부분은 야간 조명 아래 진행되었다. 추운 날씨에 선수들은 카트를 타고 빠르게 이동했다. 18홀 경기가 6홀마다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면서 경기 속도가 빨랐다. PGA 투어 팀은 1~6번홀에서 열린 포섬(공 1개를 번갈아 플레이)에서는 2홀을 남기고 3홀 차로, 7~12번홀에서 치러진 포볼(각자 공으로 플레이)에서는 1홀 차 승리를 거뒀다. 이어 13~18번홀에서 열린 싱글 매치 플레이에서 셰플러가 켑카를 2홀을 남기고 2홀 차 승리를 거둬 최종 우승을 확정 지었다.
골프 팬이 원한 것은 야간 경기 형식의 짧은 승부가 아니라 최고 선수들이 보여주는 골프의 묘미였다. 서로 다른 스타일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고, 어떻게 불협화음을 일으키는지를 보고 싶었다. 그런 면에서 이 대회는 큰 상금에 어울리지 않는 초라한 결과를 남겼다.
2024년 마스터스 챔피언 셰플러는 마스터스 기간에 진행된 인터뷰에서 “중요한 것은 내 영혼의 구원이다. 내가 내일 66타를 치든 86타를 치든 중요하지 않으며, 내 영혼이 안전하다는 사실만이 의미가 있다”라고 말했다. 타이거 우즈 이후 최고의 선수인 셰플러가 쉽게 흔들리지 않는 이유는 그의 삶의 태도 때문이다.
유럽에서 세베 바예스테로스 이후 가장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매킬로이는 US오픈에서 쓰라린 패배를 당한 후에 “나의 전성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그 후에 그는 DP월드투어에서 공격성을 유지한 채로 이전에 없었던 꾸준함까지 장착하게 되었다. 치열한 그의 노력 덕분이다.
2024년 US오픈 챔피언 디샘보는 독창적이고 대담한 모습을 보이는 골퍼다. 모든 아이언 클럽의 샤프트 길이를 동일하게 맞춘다. 골프 역사에서 전례가 없는 과감함이다. 그는 시합 중에 자신감과 열정을 쇼맨십과 함께 보여주고, 관중과 소통을 중시한다. 디샘보는 바예스테로스처럼 스와시버클링(swashbuckling, 대담하고 모험적이며 낭만적인)한 스타일의 골프선수다.
캡카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풀스윙’에서 골프에 대한 자신만의 고뇌를 보여주었다. 그는 메이저대회 4승을 달성했지만, 곧바로 슬럼프를 겪었다. LIV로 이동하면서 슬럼프가 깊어질 듯했지만, 2023년 PGA챔피언십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메이저 우승을 5회로 늘렸다. 꾸준함이 부족하지만, 골프를 대하는 외롭고 진지한 그의 태도에는 골프의 신성함 같은 것이 엿보인다.
셰플러와 매킬로이는 다른 스타일이고 친해 보이지도 않는다. 그들은 웬만해서 같은 편이 될 일도 없다. 내년에 그들은 라이더컵에서 양 팀을 대표하여 벼랑 끝 매치를 펼칠 수도 있다. 두 선수가 극도의 긴장 상태에서 어떤 화학적 결합을 보일지 궁금했지만, 그런 상황은 연출되지 않았다.
켑카와 디샘보는 스타일이 다를 뿐만 아니라 공개적으로 서로를 비난했던 사이다. 승리를 위해서 같은 팀이 되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이 골프지만, 미국 라이더컵 캡틴은 그들을 한 조로 묶는 것을 꺼렸다. 내년도 라이더컵에서 이들이 한 조가 될 수 있을지 궁금했지만, 이번 대회에서 그럴 가능성은 보이지 않았다. 이들이 어려움을 같이 극복하고 환호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그런 기회는 오지 않았다.
‘크립토닷컴 쇼다운’은 먹을 것이 없었던 소문난 ‘유난한 잔치’였다. 이벤트 골프에서 골프의 본질을 맛보겠다는 생각은 허망한 기대였다.
윤영호 골프 칼럼니스트
윤영호 ㅣ 서울대 외교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증권·보험·자산운용사에서 펀드매니저로 일했다. 2018년부터 런던에 살면서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 ‘옵션투자바이블’ ‘유라시아 골든 허브’ ‘그러니까 영국’ ‘우리는 침묵할 수 없다’ 등이 있다. 런던골프클럽의 멤버이며, ‘주간조선’ 등에 골프 칼럼을 연재했다. 현재 골프에 관한 책을 집필 중이다.
연제호 기자 sol@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