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강이안
그는 ‘지배종’을 통해 데뷔한 지 7년 만에 OTT 드라마에 출연했다. 극중 인공 배양육을 개발한 생명공학기업 BF 대표 윤자유(한효주)의 경호원 김호승 역을 맡아 난생처음으로 화려한 액션 연기도 펼쳤다. 한효주, 동기 경호원 역의 주지훈 등 TV로만 보던 톱스타들과 한 화면에서 호흡을 맞추는 순간은 “가슴 떨리는 경험”으로 남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배우가 아닌 ‘인간’ 강이안의 인생에도 깊은 각인을 남겼다. 지난해 2월 간암으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아버지께 “배우로서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됐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 서대문구 스포츠동아 사옥에서 만난 강이안은 “촬영을 마친지 1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주변에 ‘말도 안 되는 기회가 찾아왔다’고 말하고 있다”면서 “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은 기분”이라고 힘줘 말했다.
Q. ‘지배종’을 처음 본 날을 기억하나.
“그럼요. 벚꽃이 흩날리는 4월이었어요. 드라마가 공개된 직후에는 일부러 낙성대공원을 천천히 걸었어요. 떨려서 바로 볼 수가 없었거든요. 그러다 2시간쯤 지나 경건한 마음으로, 눈을 절반 정도 가리면서 봤어요. 방송 내내 댓글을 열심히 찾아봤어요. 모두가 진지한 와중에 저 혼자 수다스럽고 발랄한 캐릭터여서 자칫 떠 보이진 않을까 싶었어요. 뜻밖에도 시청자들이 귀여워해 줘서 깜짝 놀랐죠. 제가 칼 맞는 장면에서는 ‘진짜 죽은 거야? 에이, 살겠지’하는 반응이 계속 올라와서 신기하고 기뻤어요.”
사진제공|디즈니+
Q. 능숙한 액션 연기가 돋보였다. 준비 과정은 어땠나.
“철저하게 노력의 산물이에요. 놀랍게도 무술을 접한 건 초등학교 때 해동검도를 배운 이후 처음이랍니다. 2022년 9월쯤에 캐릭터가 확정되자마자 한 달 내내 액션스쿨에서 살다시피 했어요. 일반인이 싸우는 장면이면 더 쉬울 텐데, 저는 경호원 캐릭터이니 무술에 익숙한 ‘태’가 나와야 했어요. 그러니 더욱 액션 연습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죠. 이번 기회에 몸을 유기적으로 부드럽게 움직이는 것의 중요성을 깨달았어요. 그래서 촬영을 마치자마자 권투를 새로 시작했습니다.”
Q. 주지훈, 한효주와 호흡은 어땠나.
“처음엔 너무나 대단한 선배들과 함께하니 자꾸만 기가 죽고, 괜히 더 ‘뚝딱’댔어요. 그런 제게 주지훈 형이 ‘너 잘하고 있어’라며 다독거려주셔서 긴장이 풀렸어요. (한)효주 누나도 다른 작품 오디션을 가는 제게 ‘기운 불어넣어 주겠다’면서 손 꼭 붙잡고 응원해주시곤 했어요. 경북 문경에서 촬영을 마치고 지훈이 형, 효주 누나, BF그룹 연구팀장 역 전석호 형과 함께 술 한 잔 기울이며 늦은 저녁을 먹은 날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인간적이고 따뜻한 선배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Q. 드라마가 어떤 의미로 남을 것 같나.
“당시 간암으로 투병 중이셨던 아버지가 촬영장 근처 호스피스 병원에 계셨어요. 그래서 자주 들러서 촬영장 이야기를 해드렸어요. 정말 좋아하셨죠. 비록 완성본을 보여드리지 못해 아쉽지만, 아버지께 배우로 성장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보여드릴 수 있어서 다행이었어요. 모든 배우와 스태프들이 한달음에 장례식장을 찾아와준 것도 정말 감사했습니다. 상을 마치고 나서는 혼자 있는 시간이 힘들었는데, 오히려 촬영장에서 선배들과 함께 있으면서 기운을 낼 수 있었어요. 이렇게 좋은 드라마에 큰 배역으로 출연한 것도 감사하지만, 힘든 순간에 따뜻한 위로를 받은 만큼 인생에 큰 의미로 남을 것 같아요.”
사진제공|디즈니+
Q. 연기를 포기하고 싶은 순간은 없었나.
“당연히 있죠. 성균관대 연기예술학과를 졸업하던 27살 무렵에 쇼호스트를 준비한 적도 있는걸요. 쇼호스트 활동을 하던 대학 동기 하나가 돈을 많이 번다기에 한 홈쇼핑회사 채용 공고에 응시했어요. 2000여 명 중의 90명 정도가 붙는 1차에 덜컥 합격하고 나니까 진짜 해봐야겠다 싶어서 전문 학원도 다녔죠. 그러던 중에 2018년 OCN ‘신의 퀴즈: 리부트’의 한 에피소드에 출연해달라는 연락을 받았어요. 한겨울 한강 둔치에서 가만히 누워 시체 역할을 하느라 입술이 달달 떨리는데, 웬걸. 그게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는 거예요. 그때야 ‘난 연기해야겠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그렇게 다시 돌아오게 됐죠. 그길로 어머니와 손잡고 철학원에 가서 강이안이란 활동명을 받았어요. 28살부터 예명을 썼는데 생각해보니 그때부터 조금씩 잘 풀렸던 것 같기도 하네요. 하하!”
Q. 연기의 원동력은 무엇인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욕심이 절 움직이게 해요. 배우의 꿈 하나만을 보고 달려오면서 한편으로는 이기적으로 살았다는 생각도 자주 했어요. 그동안 내가 기댔던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제가 울타리가 되어주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막연하지만, ‘난 될 거다’는 자신감은 잃지 않으려 해요. ‘지배종’에 출연한 것도 상상도 못 했는데 벌어졌잖아요. 그렇듯이 앞으로도 상상을 뛰어넘는 일들이 일어날 거라 믿어요.”
Q. 어떤 배우로 남고 싶나.
“예전에 한 배우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 달린 댓글을 본 적이 있어요. ‘배우의 채점자가 되려는 게 아니라 삶이 고달프고 눈물이 날 때 작품을 보는 거다’라는 내용이었죠. 그걸 보자마자 머리가 띵 울렸어요. 내가 출연하는 작품을 보는 관객과 시청자에게 위로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어요. 시간이 아깝지 않게 연기할래요.”
유지혜 기자 yjh030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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