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영로기자가간다]‘챔프’임치빈과함께한K-1…세방에끝난무모한도전

입력 2009-03-2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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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보다 진한 땀을 흘리는 남자의 세계로 몸을 던졌다. 기자가 K-1 체험에 나선 것은 팬들이 K-1에 열광하는 이유를 직접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예전엔 남성 팬이 대부분이었지만 요즘엔 경기장을 찾는 여성 팬의 숫자가 크게 늘었다. 자신도 있었다. 그동안 꾸준하게 골프를 하면서 체력을 다져왔고, 고교 시절엔 잠깐 유도를 했던 탓에 추성훈, 윤동식 등 유도 출신 선수들의 파이터 변신이 자극제가 되기도 했다. K-1 체험을 위해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칸짐’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 요란한 소리가 귀청을 따갑게 했다. 훈련에 열중인 선수들의 신음소리와 샌드백 두드리는 소리가 뒤엉켜 들려왔다. 체육관 안에는 내일의 챔피언을 꿈꾸는 10여 명의 ‘팀 치빈’소속 선수들이 땀을 쏟아내고 있었다. 3시간 동안의 짧은 체험이지만 진정한 사내들의 세계를 느꼈다. ○“절대 봐주지 않습니다.” “어서오세요. 반갑습니다.” 칸짐 임치빈(29) 관장이 반갑게 맞아 준다. 임 관장은 국내 K-1 맥스(70kg급) 챔피언이다. 2006년과 2008년에 이어 2009년에도 챔피언 벨트를 거머쥔 명실상부한 최고의 파이터다. “봐줄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조금 힘들더라도 선수들과 함께 땀 흘릴 각오가 되셨죠?” 대충 시간 때우다 사진 찍고 돌아간다는 생각을 버리라고 딱 잘라 말했다.순간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대충은 아니더라도 “살살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임 관장의 눈초리를 보니 대충할 기미가 아니었다. “자, 오늘 지도를 해줄 임세일 코치입니다.” 임 관장 못지않은 내공이 느껴지는 임 코치다. 다짜고짜 스케줄 표를 들이밀고는 훈련 일정을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스트레칭부터 펀치, 킥 훈련까지 총 3시간으로 진행됩니다. 반이라도 따라하면 성공한겁니다. 자, 그럼 시작해 볼까요. 이 옷으로 갈아입고 나오세요.” ○15분 만에 바닥난 저질체력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었다. 처음부터 만만치 않았다. 딱딱하게 굳어 있는 사지 덕에 찢어질 듯한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오늘 죽었구나!’하는 생각이 물밀 듯 밀려왔다. 휴식도 없이 곧바로 체력 훈련 첫 단계인 줄넘기가 시작됐다. ‘땡’ 하는 소리와 함께 선수들의 줄넘기가 힘차게 돌아갔다. “타다닥, 타다닥” 소리가 경쾌했다. 보통 솜씨가 아니었다. 자유자재의 자세로 줄을 넘는 선수들의 장면만 봐도 감탄사가 나왔다. ‘땡’,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종소리가 또 울렸다.종소리는 5분 간격으로 계속 울렸다. 1라운드 3분 경기에 맞춰 조절된 시간이라고 했다. 평소에 더 많은 체력을 비축해야 하기 때문에 5분씩 훈련하고 30초 쉰다고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체력의 한계가 왔다. 줄넘기 15분에 등줄기에 땀이 맺히면서 체력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반면 선수들의 몸놀림은 더 가벼워졌다. “이거 하고 지친 건 아니겠죠.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벽에 기대 숨을 돌리고 있는 기자를 향해 임 관장이 놀리듯 한 마디 내뱉었다. ○“맞지 않으려면 커버링 올려요” “빈틈이 보이잖아요. 커버링 확실하게 올려요.” 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맞지 않는 건 더 중요하다. 상대의 주먹을 피하고 날아오는 펀치를 방어하기 위해선 ‘커버링’이 필수다. 복싱의 기본은 스텝과 호흡 그리고 커버링이라는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주먹을 세게 날린다고 능사가 아니란다. 왼발을 앞에 두고 오른발을 뒤에 둔다. 천천히 스텝을 밟으면서 왼 주먹을 뻗으면 스트레이트다. 흔히 말하는‘원’이다. 체중을 왼발에 실어 둔 상태에서 허리를 돌려 오른 주먹을 날리면 ‘투’다. ‘빡’하고 미트에 맞는 소리가 기분을 좋게 했다. 원투 스트레이트에 이어 훅과 어퍼컷까지 펀치기술을 익히는 데만 30분 넘게 땀을 흘렸다. 어느새 등줄기는 땀으로 흥건해지고 있었다. 숨을 돌리기 위해 잠시 벽에 기대어 옆에서 훈련하는 정승명 선수와 송민호 선수의 모습을 지켜봤다. 장난이 아니었다. 미트를 박살낼 듯한 강력한 펀치가 계속해서 터졌다. 기합소리도 요란했다. “저 주먹에 맞아 본 적 있어요?” 임 코치에게 물었다. “쟤네들은 헤비급이에요. 저거 맞으면 죽죠. 살겠어요? 안 맞는 게 상책이죠.” ○무기가 따로 없는 강력한 킥 “로킥입니까? 미들킥입니까? 확실하게 차요.” 임 코치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체중을 실어서 확실하게 가격하세요. 그렇게 차다가는 상대한테 공격당하기 십상입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다리를 올리기조차 힘든 고통이 시작됐다. 임 코치의 주문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기자의 저질 체력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계속해서 공격하라고 주문했다. 체력이 바닥으로 떨어질 쯤 최대의 고비가 찾아왔다. 파트너끼리 발을 바꿔가며 100회씩 킥을 날리는 연습이다. 오른발과 왼발을 번갈아가며 10회씩, 총 200회 킥을 날려야 하는 강도 높은 훈련이다. 더 힘든 건 파트너의 킥을 받아주는 일이다. 바짝 긴장한 모습으로 안옥재 선수의 킥을 받을 준비를 마쳤다. “자, 이제 날아갑니다. 잘 받으세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킥이 날아왔다. 순간 기자의 몸은 내 몸이 아니었다. 뒤로 몇 발작은 물러나는 게 굉장한 파워다. 미트를 착용하고 있었지만 팔과 몸 전체에 울려 퍼지는 파워는 상상했던 것 이상이다. “도대체 얼마나 훈련해야 이런 킥이 나오죠?” “보통 연습으로는 불가능하죠. 피나는 연습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다운 또 다운 결국 KO패 임 관장의 배려로 링에 오를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1분간 짧은 스파링을 허락했다. 링에 오르는 일은 아무에게나 허용되는 게 아니다. 선수들도 일정 기간 이상 훈련해야 링에 오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특별 케이스다. 상대는 안옥재 선수다. 정식으로 K-1 무대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유망 선수다. ‘땡’하는 종소리와 함께 경기가 시작됐다. 극도의 긴장감이 밀려왔다. 배운 대로 스텝을 밟고 가볍게 왼손을 뻗으며 거리를 조절했다. 안 선수의 잽과 하이킥이 머리 위로 스쳐지나갈 때는 공포감을 느끼게 했다. 얼마 되지 않아 안 선수의 주먹이 배에 꽂혔다. 순간 숨이 막히는 게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첫 번째 다운이다. 카운트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커버링을 올렸다. 계속해서 안 선수의 킥이 날아왔다. 방어한다고 했지만 로킥 한방에 다리에 힘이 쫙 풀렸다. 두 번째 다운이다. 정신을 차리고 주먹을 내밀고 로킥을 시도했다. 순간 “좋아”하는 소리가 들렸다. 안 선수의 왼쪽 허벅지에 로킥이 명중했다. 그러나 그게 전부였다. 화난 안 선수의 주먹이 얼굴을 강타하며 그대로 링 바닥에 쭉 뻗고 말았다. 하늘이 노랗게 변하는 게 그대로 잠들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완벽한 KO패다. ○승패의 관건은 체력 3분 3라운드 경기를 대비해 선수들이 쏟아내는 땀의 양은 어마어마하다. 흘리고 또 흘려도 부족하다는 게 임 관장의 설명이다. 하루 3시간 이상의 강도 높은 훈련을 실시하고 있지만 실제 경기에 나섰을 때는 이 보다 더 많은 체력을 허비한다. 체력이 떨어지면 기술 구사는 아예 시도하기도 힘들다. 모든 훈련이 종료되자 임 관장의 호된 질책이 쏟아졌다. “오늘 왜 이렇게 어수선해. 이렇게 훈련할거면 다 그만둬. 연습이 아니라 실전이라고 생각하고 죽을 각오로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어. 내일부터 정신 바짝 차리고 연습하자.” “예”하는 우렁찬 소리와 함께 강도 높은 훈련이 모두 끝났다. 기자 말고도 ‘팀치빈’ 소속 모든 선수들은 기진맥진했다. 매트 위에 누워 거친 숨을 내몰아 쉬는 선수들의 표정에서 비장한 각오를 엿볼 수 있었다. “오늘 보니 소질이 있어요.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해볼 생각 없어요?” “아뇨, 전 오늘 훈련으로 만족할게요.” 한마디만 남긴 채 도망치듯 체육관을 빠져나왔다. 임치빈은 어떤 선수? 맥스 코리아 3차례 우승…국내 최강의 파이터 임치빈(29·칸짐·티엔터테인먼트)은 K-1 맥스 코리아 챔피언을 세 차례나 지낸 명실상부 국내 최강의 파이터다. 좌우 훅과 로킥으로 이어지는 강력한 콤비네이션 공격이 최대의 강점이다. K-1 맥스가 국내에서 인기를 끌기 이전부터 외국무대에서 활동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아왔다. 2006년 K-1 맥스코리아 초대 챔피언을 지냈고, 2008년 K-1 맥스 아시아에 이어 2009년 K-1 맥스코리아 챔피언을 차지했다. 통산 전적 71전 57승 14패(36KO)를 기록 중이다. 주영로 기자 na187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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