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릴레이인터뷰]“남아공월드컵16강…축구인생마지막도전”

입력 2008-03-2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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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무 감독은 바둑광(狂)이다. 아마 4단의 실력으로 인터넷 바둑 고수들 사이에서는 승부사로 통한다. 그러나 지난해 말 대표팀 감독을 맡은 후로는 통 바둑을 두지않고 있다. 허 감독은 “잡생각이 많아 도저히 바둑에 집중할 수 없다”고 말했다. 허 감독을 어지럽히는 잡생각은 다름아닌 ‘축구’다. 머릿속이 온통 축구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어 다른 것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더구나 대표팀은 전 국민의 관심이 쏠려있는 2010 남아공월드컵 3차 예선 남북전(3월 26일 오후 8시)을 앞두고 있다. 서울 신문로 축구협회 감독실에서 진행된 스포츠동아 창간 특집 인터뷰에서 허 감독은 북한전을 앞둔 각오와 그 간의 소회, 앞으로의 계획 등을 털어놓았다. ○ 北 ‘대세’와 ‘영조’를 경계하라 월드컵 예선 무대에서 남북한의 맞대결은 지난 1993년 카타르 도하에서 있었던 미국월드컵 최종예선 이후 15년 만이다. 과거에 비해 남북 관계가 크게 완화됐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북한은 상대하기 껄끄러운 팀이다. 한국은 2월 동아시아선수권에서 북한과 1-1로 비겼다. 수비를 두텁게 선 후 역습을 노리는 전략으로 나올 것으로 예상돼 허 감독으로서는 더욱 부담이 크다. “북한의 전력은 이미 모두 파악했죠. 역습에 능합니다. 공격은 세 명에게 전적으로 맡기고 나머지는 모두 하프라인 아래로 내려와 수비에 치중합니다. 스리백을 기본 수비 포메이션으로 쓰지만 실질적으로 파이브백이죠. 정대세 외에도 홍영조 역시 경계해야 할 선수입니다.” 유럽 보스니아에서 활약 중인 홍영조는 오른발 프리킥이 정교하고 스피드가 뛰어난 공격수로 요르단과의 1차전에서도 프리킥으로 결승골을 넣었다. 덧붙여 동아시아 대회에서 스타덤에 오른 정대세에 대해 냉정한 평가를 부탁했다. “좋은 선수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스피드, 힘, 슈팅력을 겸비했고 축구를 아는 선수죠. 최고의 스타가 되리라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K리그에서도 통할 수 있죠. 하지만 정대세 신드롬에는 북한과의 특수한 관계도 한 몫을 한 것 같네요.” ○ 흙속의 진주를 여럿 캐내다 허 감독이 2000년 시드니올림픽대표팀 감독 시절 박지성, 이영표, 설기현 등을 발굴해낸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다. 이번에도 허 감독은 무명에 가까웠던 곽태휘, 조용형 등을 발탁해 스타로 키워냈다. 이처럼 ‘흙속의 진주’를 쏙쏙 캐낼 수 있는 비결에 대해 허 감독은 “사심을 배제하고 일단 백지상태로 선수를 본다”고 답했다. “사실 저도 운동을 늦게 시작했거든요. 어린 선수들이 성장 과정에서 얼마나 큰 변화를 겪는 지를 잘 알죠.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 날고 기었던 선수라도 성장 재목이냐 아니냐를 봤을 때는 또 다릅니다. 볼 감각이나 지능, 유전적인 면도 유심히 봐야죠.” 허 감독은 또한 큰 성장을 위한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성격을 꼽았다. “적극적인 사람이 한 발 앞서나가게 되어있더라고요. (박)지성이나 (이)영표를 한 번 보세요. 경기 중 소극적인 플레이를 펼치는 것을 본 적 있습니까?” ○ 남은 축구인생 올인 허 감독은 스타플레이어 출신의 스타 감독이다. 1980년대에는 선수로서 아시아 최강 한국 축구를 이끌었고 은퇴 후 지도자의 길로 들어서 1997년과 2006, 2007년 전남의 FA컵 우승을 이끄는 등 성공적인 발자취를 남겼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때는 아쉽게 8강 문턱에서 좌절했지만 한국 올림픽 축구 사상 조별리그 역대 최고 성적인 2승(1패)을 거뒀다. 하지만 허 감독에게도 대표팀 감독은 쉽게 수락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당시 상황부터가 녹록치 못했다. 지난해 아시안컵에서의 졸전, 이어진 대표팀 무득점 행진으로 A매치에 대한 팬들의 관심은 급감했다. 안팎에서 한국 축구의 위기론이 대두됐고 축구협회는 대표팀 사령탑으로 복수의 외국인 감독 후보를 정해놨다가 막판에 결렬되는 등 갈지자 행보를 계속했다. 그가 감독직을 수락한 이유와 한국 축구의 위기는 같은 연장선상에 있었다. “2002년 월드컵이 끝나고 선수들의 위상이 크게 높아진 반면 한국 축구는 침체에 접어들었죠. 2002년 월드컵을 준비하며 미래에 대한 설계 작업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거든요. 쉬운 예로 가장 중요한 포지션인 중앙 수비수 조차 당시 주역인 최진철, 김태영, 홍명보가 모두 은퇴하자 아직도 적임자를 못 찾고 있잖아요?” “처음에 감독직을 제의받고 많이 고민했습니다. 과연 이 시기에 맡는 것이 옳은 것인지.하지만 어렵다고 피한다면 진짜 승부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 허 감독은 지난해 말 취임 기자회견에서 “축구 인생의 모든 것을 걸겠다”고 승부수를 던졌다. ○ 1차 목표는 월드컵 16강 허정무 감독은 부임 후 5경기에서 2승2무1패의 성적을 거뒀다. 월드컵 예선 1차전에서는 투르크메니스탄에 4-0 완승을 거뒀고 동아시아 대회에서는 5년 만에 우승을 차지했다. 외형상 무난한 성적표다. 하지만 ‘인생을 건’ 허 감독이 이에 만족할 리 없다. 허 감독의 눈은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을 향하고 있다. 다가올 남북전이나 월드컵 예선은 남아공으로 가기위한 관문일 뿐이다. 단기전에 유독 강한 면모를 보였던 허 감독. 월드컵에서는 어떤 성적을 목표로 하고 있을까. 허 감독은 먼저 “한국 축구가 빨리 월드컵 4강 신화에서 깨어나야 한다”고 일침을 놨다. “아직 월드컵에 가지도 않은 상태에서 말하기는 이르지만 확실한 건 4강은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나라가 외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16강에 오른 적이 있나요? 우선 16강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16강 이후는 토너먼트 승부이기 때문에 여러 변수가 작용할 겁니다. 그러나 16강에 올라야 그 이상의 성적도 기대할 수 있으니까요.” 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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