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굴특종]민족마라토너함기용옹다시찾은금메달

입력 2008-04-0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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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마라톤우승메달6.25전쟁통에분실…지인들도움으로57년만에목에걸어
민족의 이름으로 달린 또 한사람의 마라토너가 ‘잃어버린 세월’을 되찾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주인공은 1950년 보스턴마라톤대회 우승자 함기용(78)옹이다. 6·25 전쟁의 와중에 감쪽같이 사라진 보스턴대회 우승 메달을 독지가들의 도움으로 57년만에 되찾아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1930년 강원도 춘천에서 출생한 함옹은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자인 고 손기정옹에 이어 해방기 한국 마라톤을 이끈 세계적인 건각. 함옹은 1950년 4월 19일 보스턴마라톤대회에서 약관의 나이에 2시간32분39초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해방의 기쁨도 잠시, 민족 분단의 아픔과 가난의 질곡 앞에 우울했던 한민족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쾌거였다. 그러나 50년 6월 25일 한민족을 휘몰아친 역사의 수레바퀴는 함옹의 개인사에도 크나큰 회한을 남겼다. 함옹은 부산으로 피란길에 오르기에 앞서 우승 메달과 보스턴대회 당시 입었던 훈련복, 대회 직후 미국과 일본동포들이 열어준 환영대회의 장면을 담은 사진집을 최근에 헐린 동대문야구장 우측 외야 한 구석에 파묻었다. 그러나 그해 9월 28일 서울 수복 후 귀경한 그가 서둘러 야구장으로 달려갔지만 폭격의 잔해만 앙상하게 남은 그곳에서 끝내 메달을 찾지 못했다. 함옹은 당시를 회상하며 “누군가가 파간 흔적만 남아있었다”고 밝혔다. 영원히 분실할 뻔 했던 역사의 기록을 되찾은 때는 지난해 5월. 재미동포 출신의 의학박사 김태형(71)씨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다. 보스턴을 비롯한 미국에서 30년 넘게 공부하고 명문 에모리의대에서 교수로도 재직한 김 박사는 97년 국립암센터 초청으로 귀국했다. 보스턴에서 유학하던 시절 일반인 자격으로 보스턴마라톤에 출전하며 늘 함옹을 생각했다는 김 박사는 2006년 11월부터 보스턴마라톤대회 조직위원회에 e메일과 국제전화를 통해 함옹의 딱한 사연을 전했다. 그러면서 당시 우승 메달과 똑같은 모형의 새 메달을 보내줄 수 없겠느냐고 요청했다. 보스턴 조직위의 반응이 시큰둥하자 김 박사는 대한육상경기연맹(회장 신필렬)을 통해 공식적으로 접촉을 시도했고, 노력이 결실을 맺어 지난해 5월 마침내 보스턴 조직위는 대한육상경기연맹으로 특수제작한 금메달을 보내왔다. 김 박사와 더불어 도움을 아끼지 않았던 고려대 MBA(경영대학원) 마라톤클럽 회원들은 지난해 5월 10일 메달환수기념 모임을 열어 함옹의 목에 메달을 걸어줬다. 가슴 한편에 묻어뒀던 메달을 되찾은 함옹은 “지금도 김태형 박사에게 말할 수 없이 고마움을 느낀다. 우리 가족에게도 가보지만, 한국 마라톤계에도 값진 선물이다”라며 “원본에는 메달 중앙의 말 머리 모양의 눈 부위에 3부짜리 다이아몬드가 박혀있었지만 작년에 받은 메달에는 없다. 다이아몬드를 제외하고는 원본과 똑같다”고 밝혔다. ‘유사 사례가 있을 경우 곤란해진다’는 이유로 공개 자제를 요청한 보스턴 조직위 때문에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꺼려왔던 함옹은 “집(분당)에 있는 수제금고에 고이 보관하고 있다. 언젠가 기회가 닿으면 (마라톤) 후배들에게도 다 보여주고 싶다”며 감회어린 표정을 지었다. 정재우 기자 ja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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