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날쌘돌이’서정원,인생후반전Fun Fun한휘슬!

입력 2008-04-2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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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지도자‘인생2막’레디!
한 장의 사진이 각 신문 톱 1면을 장식했다. 흰색 유니폼을 입은 한 사내가 두 팔을 번쩍 든 채 동료들의 축하를 받는 모습이었다. 그로부터 14년이 흘러 그는 이제 아련한 추억의 이름이 됐다. 36도의 무더운 날씨 속에 1994년 6월 17일 댈러스 코튼볼 구장에서 열린 94 미국월드컵 C조 스페인과 첫 경기. 1-2로 뒤지던 후반 45분, 전 국민들을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기적이 일어났다. ‘날쌘돌이’ 서정원(38)의 한 방이 스페인 골네트를 가른 것. “내 평생 그 순간 만큼은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유럽 각지를 돌며 지도자 수업을 받고 있는 서정원이 22일 바쁜 귀국 일정에서 잠시 짬을 내 <스포츠동아>를 찾았다. ○은퇴…지도자 수업, 인생의 후반전 지금도 초록 필드만 보면 근질근질하다고 했다. 작년 8월 공식 은퇴식을 끝으로 선수와는 이별을 고한 서정원이다. 제2의 차범근이 되길 꿈꿨던 그는 92년 럭키 금성에 입단, 프로 무대를 밟았다. 십수년의 현역 생활. 안양 LG( FC 서울 전신)를 거쳐 수원으로 이적해 2004년까지 K리그를 누볐다. 97년부터 98년까지 프랑스 르 샹피오나 RC 스트라스부르에 몸담았던 시간을 제외하면 한국 무대만 누볐다. 정식 지도자의 길을 밟기 위해 2005년 2월 오스트리아 SV 잘츠부르크로 훌쩍 떠났고, 시즌을 마친 뒤 그 해 6월 SV리트로 옮겼다. 선수 겸 코치. 솔직히 그 때만 해도 ‘선수’로서자신이 더 좋았다고 했다. “많이 고민했어요. 몸은 더 뛸 수 있다고 말하고, 현지 2∼3개 클럽에서도 손짓을 보냈죠. 집사람(윤효진·36세)과 많이 대화했어요. 결국 깔끔한 모습으로 떠나기로 했습니다. 애초에 ‘길어야 1년만 뛰자’는 생각이었거든요.” 지도자 수업. 말처럼 쉽지 않았다. 여유있을 때 견문과 식견을 넓힌다는 생각에 유럽 각국을 돌아봤다. 스페인, 영국, 독일, 이탈리아까지 발걸음이 닿는 곳이면 어디든 움직였다. 시야도 넓어졌다고 했다. 언젠가 누 캄프에서 FC 바르셀로나의 보얀을 봤을 때 동행한 친구에게 말했다. “저 친구, 크게 성공할 것 같은데. 안그래?” 그의 예견대로 보얀은 스페인 최고 영건으로 주가를 높이고 있다. “역시 많이 봐야 해요. 조직의 큰 흐름, 유형별 대처법, 전술 등 여러 가지를 배워나가고 있어요. 경험이 최고 자산이에요.” ○유소년 축구, 열린 감독이 되고 싶다 풀뿌리 축구를 강조했다. 서정원은 5월부터 서울 송파구와 경기도 광주에서 6∼13세 유소년을 대상으로 자신의 이름을 건 축구교실을 연다. 오랜 숙원이었다고 했다. 존경하는 선배들이 축구교실을 열고, K리그 여러 팀들이 유소년 축구에 관심을 기울이는 요 근래 풍토가 너무 좋다고 했다. “엘리트 축구보다 즐기는 축구가 필요해요. 어린 친구들에겐 더욱.” 꼭 엘리트 교육이 아닌, 생활 체육의 일환. 물론 대표 선수를 발굴하고픈 욕심도 있지만…. “숨은 보석찾기라 할까요? 10년 뒤 제가 키운 친구들이 태극마크를 달았다고 해봐요. 얼마나 행복할까요? 하지만 아이들에게 건강한 땀의 중요성을 일깨우겠다는 본래 취지는 잃지 않으려고요.” 서정원은 선수들을 이해하는 열린 지도자가 되겠다고 했다. “클린스만 전 독일대표팀 감독을 닮고 싶어요. 젊은 세대들이 원하는 것을 캐치하는 그런 감독을 말이죠. 서로 녹아들어야겠죠. 프랑스에서 뛸 때 팀에 심리학 박사가 있었는데 자주 선수들끼리 미팅을 했고, 그 결과를 감독이 겸허히 수용했죠. 저도 그렇게 돼야죠.” ○막내 아들, 축구 시켜?…아빠는 못말려 서정원은 아들만 셋이다. 딸을 낳고 싶었는데 모두 아들이었단다. 동훈(13세), 동재(12세), 동한(7세)은 아빠를 닮았는지 운동을 좋아한다. 그 중 막내가 가장 축구를 잘하는 것 같다고 했다. 스피드가 좋다나? 리트 유소년 클럽(7세 이하)에 가입시켰는데 덩치가 큰 또래 친구들보다 몸놀림이 좋다는 게 그의 설명. 매일같이 운동화나 티셔츠에 구멍이 뚫린 채 집에 돌아올 때가 많아도 그저 어린애답게 자라는 아들들이 고맙다고 했다. 걱정도 있다. 독일어를 쓰다보니 한국어보다 유창해졌다. 집에서 한국어를 쓰게 하는데 간혹 꾸지람을 할 때 아들들이 모여 독어로 뭐라뭐라 한단다. 분명 아빠 엄마를 욕하는 것 같지만 정작 부부는 잘 알아듣지 못해 곤혹스럽다. 말이 끊이질 않는다. 내친 김에 한마디 더 물었다. “애들이 아빠가 유명인사라는 것은 잘 알아요?” 잠시 웃음. “가끔 제가 현지 분들에게 사인을 해줄 때, 한국인 여행객들이나 교민들과 사진을 찍을 때 애들도 실감하는 것 같아요.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돼야죠.”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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