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김인식 감독은 ‘제자 복(福)’이 많은 사람이다. 정수근 진필중 박명환 등 두산 시절 제자들은 경기 전 김 감독부터 찾아와 문안인사를 올린다.
정수근은 아예 “김 감독님은 오늘의 내가 있게 해준 분”이라고 단언한다. 프로야구 최고 몸값 타자 삼성 심정수(33)도 마찬가지다. 그 심정수가 17일 돌연 은퇴했다. 고질인 왼 무릎 통증을 견디다 못해 내린 결단이었다.
김 감독은 “아까운 선수가 나이도 얼마 안 됐는데 너무 일찍 은퇴했다”고 아쉬움을 담은 어조로 심정수와의 추억을 회고했다.
○심정수의 발견
동대문상고를 졸업한 심정수가 프로 2년차가 되던 1995년 김 감독은 OB 사령탑에 취임했다. 김 감독은 먼저 내야수였던 심정수를 우익수로 바꿨다. 수비가 어설펐고, 특히 1루 송구가 엉망이었는데 타고난 어깨를 살리기 위한 조치였다.
“뭘 시켜도 열심히 해. 시키면 될 것 같더라고.”
싹수를 알아본 김 감독은 변화구 대처 약점에도 116경기나 기용했다. 이어 한일슈퍼게임 때 심정수를 일부러 대표로 뽑았다. 당시 심정수가 출전수당 60만엔을 받았는데 몽땅 잃어버려 낙심했던 일화는 지금도 회자된다. 용병제가 도입된 1998년 우즈가 가세하면서 두산은 ‘우-동(김동주)-수 타선’을 구축했다.
○심정수의 보은
선수협 사태 후 심정수는 타의에 의해 2001년 현대로 트레이드됐다. 김 감독은 “어쩔 수 없지”라고 했지만 정작 스승의 품을 떠난 뒤 제자는 전성기를 맞았다. 2002년 46홈런, 2003년 53홈런으로 이승엽(당시 삼성)의 경쟁자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2004시즌 직후 역대 FA 최고 대우(4년 총액 60억원)로 삼성에 입단했다.
부와 명예가 쌓일수록 심정수는 스승을 각별히 대했다. “대구에서 비가 와서 경기가 취소되자 ‘모시겠다’더니 저녁을 사더라. ‘어른이 됐구나’라고 여겨지니 흐뭇했다”고 김 감독은 추억했다.
○심정수의 목표
역대 홈런랭킹 3위(328홈런)로 현역을 마친 심정수는 “야구를 하면서 너무 행복했다는 생각이고, 후회 없이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한다. 미련이 없진 않지만 몸 상태가 예전만큼의 활약을 보여줄 자신감이 없기에 결심을 하게 됐다”고 했다. 심정수는 야구선수 생활을 하느라 공부를 소홀히 한 게 한이 돼 미국유학을 준비 중이다. 야구 지도자 수업과는 전혀 상관없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