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피플]‘미완의루키’윤원일“부상악령,이젠떨쳐내야죠”

입력 2008-12-22 04:21:53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2008



“지긋지긋한 부상악령, 이젠 떨쳐내야죠.” 수더분한 경상도 사투리와 얼굴에 여드름 투성인 22살의 한 청년이 2009년 힘찬 도약을 선언했다. 두 주먹을 불끈 쥔 주인공은 ‘미완의 루키’ 윤원일(22·제주유나이티드 FC)이다. 지난해 11월 2008 K-리그 신인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제주FC에 입단한 윤원일은 2008 한국축구가 지목한 신인 중 최대어로 꼽히며 화려하게 프로생활을 시작했다. 특히 꾸준하게 올림픽대표팀에도 이름을 올리며 장밋빛 미래가 펼쳐지는 듯 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현재. 그를 기억하는 축구팬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잦은 부상이 그의 발목을 잡아 데뷔시즌을 통째로 날려 버렸기 때문이다. 급기야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는 십자인대가 끊어지는 불행을 겪었다. 포항스틸러스의 FA컵 우승을 마지막으로 2008년 한국축구의 모든 대회가 종료된 가운데 제주FC 선수들은 꿀맛 같은 휴가를 보내고 있다. 그렇지만 윤원일은 휴가를 반납하고 제주도에 남아 김장열, 박성률 트레이너와 함께 재활훈련에 몰두하고 있었다. 2009년이 기대되는 윤원일을 제주도에서 직접 만나 인터뷰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윤원일은 차분하고 명랑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고, 반드시 내년에는 부상 공포를 극복하고 ‘유리몸’에서 ‘철인’으로 거듭나고 싶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다음은 윤원일과의 일문일답> ● “작은 키 때문에 수비수로 전향했죠.” Q. 언제부터 축구를 시작하게 됐나? A. 경상남도 창원 상남초등학교 6학년 시절 당시 클럽 축구선수로 시작해 감독님의 눈에 띄어 정식 축구부원이 됐다. 처음에는 어머니께서 운동선수의 고충을 아시고 말리셨는데, 아버지께서는 “좋아하면 해봐”라고 말씀하셨다. 반대하던 어머니께서도 이후 적극적으로 뒷바라지 해주셨다. Q. 어렸을 때부터 수비 포지션을 봤나? A. 사실 초등학교 시절에는 공격수였다.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작은 신장 때문에 사이드백(측면 수비수)으로 포지션을 옮겼다. 한 마디로 키 큰 선수들에게 밀려난 꼴이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고등학교 3학년때 키가 많이 자라면서 감독님께 ‘중앙 수비수’ 추천을 받아 본격적으로 수비수로 성장하게 됐다. ● 끊이지 않는 부상 악령…그래서 내 별명은 ‘유리몸’ 부상과의 싸움은 고등학교 2학년 때 무릎 수술을 받으면서 시작됐다. 당시 학생 신분이었던 윤원일은 체계적인 재활훈련을 할 수 없어, 무작정 1년간 운동 자체를 쉬어 버렸다. 1년을 쉰 탓에 2학년으로 복학해 남들보다 고등학교를 1년 더 다녔다. 그런데 무릎에서 뼛조각이 발견돼 제거 수술을 받느라 또 다시 1년을 쉬었고, 고등학교 4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운동을 할 수 있었다. 2008 K-리그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제주에 입단할 당시에도 무릎 수술을 받았던 윤원일은 박성화호에 꾸준히 이름을 올렸지만, 잦은 부상으로 제 기량을 펼치지 못했고, 올 시즌도 5경기 밖에 뛰지 못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Q. 고등 3년을 거의 다 쉬었는데, 어떻게 축구선수로 성장할 수 있었나? A. 고등학교 4학년 때가 인생의 첫 번째 전환점이었다. 나 자신도 믿기 힘들 정도로 몸상태가 좋았고, 덕분에 좋은 기량도 선보일 수 있었다. 이후 선문대 조긍연 감독님의 마음을 사로잡아 계속 축구선수로서 생명을 연장할 수 있었다. Q. 대학 2년 동안의 생활은 어땠나? A. 처음 대학교에 들어 가보니 포지션 경쟁자가 9명이나 있었다. ‘힘들겠다’며 의기소침해 있었는데, 막상 몸으로 부딪치니 우려했던 것보다는 일이 잘 풀렸다. 1학년 때부터 전 경기를 소화하면서 감독님께도 인정받고, 부상 없이 무난한 대학생활을 보냈던 것 같다. Q. 저학년임에도 전 경기를 뛸 수 있었다는 말은 실력이 좋았다는 말로 해석해도 되는가? A.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사실 지난해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뽑혔기 때문에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오해에 불과하다. 중학교 때에도 특별한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고등 3년도 전부 쉰 나에게 전체 1순위 소식은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다. Q. 신인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뽑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기분이 어땠나? A. 얼떨떨했다. 드래프트 마감 이틀 전에 신청을 했는데 이렇게 큰 사건이 터질 줄 몰랐다. 당시 감독님께서 축하 전화를 해주셨는데, 잠결에 무심코 “고맙습니다”라고만 말씀드리고 다시 잠을 청했다. Q. 꾸준히 박성화호에 승선했는데, 부상으로 대표팀에서도 탈락하고 올 시즌도 5경기 밖에 소화하지 못했다. A. 내가 생각해도 정말 지긋지긋하다. 우선 지난 1월 초 스페인 전지훈련 때 발목을 다쳤음에도 터키 전지훈련까지 참여했다. 물론 부상 때문에 훈련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아무것도 못 보여준 상황에서 다시 제주로 돌아왔을 때에는 이미 출전 선수명단은 다 짜여져 있었고, 알툴 베르날데스 감독은 그저 나를 대표팀에서 테스트를 받고 돌아온 선수로만 생각했다. 다행히 2군 경기를 나서면서 몸상태를 끌어 올릴 기회가 있었지만, 잔부상이 계속해서 괴롭히면서 심리적인 부분까지 흔들리기도 했다. 그런데 마음을 비우고 나니 다시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올림픽대표팀에 소집돼 훈련을 하다가 또 다시 발목을 다쳐 박성화 감독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부상회복 후 마지막 홈경기인 대전 시티즌전에서도 십자인대가 끊어지면서 아직까지 재활치료에 몰두하고 있다. Q. 올림픽에 뛰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없는가? A. 출전을 떠나 부상으로 인해 내 능력을 쏟아내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리고 어차피 대표팀은 능력 있는 선수가 뛰어야 하는 곳이기 때문에 탈락에 대한 아쉬움은 없다. Q. 팀 내 같은 포지션인 조용형 선수는 국가대표까지 발탁되는 영예를 얻었다. 부럽지 않은가? A. 용형이형은 국가대표에 뽑힐 만 하다. 자기 능력에 맞는 자리에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부럽지는 않다. 나도 용형이형 정도 하면 충분히 국가대표에 발탁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다. Q. 팀 내 별명은 무엇인가? 부상과 관련한 별명이 있을 것 같은데... A. ‘유리몸’이다. 시도 때도 없이 다쳐서 생긴 별명이다. 그런데 내 별명이 소속팀 뿐만 아니라 K-리그 전 구단에 퍼졌다고 한다.(웃음) ● ‘잠보’에다 ‘식충이’…한계가 다하는 날까지 뛰는 것이 최종목표 Q. 아마를 떠나 올 시즌 첫 프로축구를 맛본 소감은? A. 아마와 프로의 벽을 실감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선수들 개개인의 능력뿐만 아니라 빠른 경기 스피드와 강한 압박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어느 정도 프로에 적응이 되다 보니 익숙해졌다. Q. 수비수는 상대적으로 공격수에 비해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는 포지션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A. 수비수가 공격수에 비해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무실점 경기를 할 때마다 희열을 느낀다. 마치 공격수가 해트트릭을 작성할 때의 기분이랄까. ‘내가 경기에 집중하고 있구나!’란 생각에 잠도 설칠 정도다. 그저 팬들이 수비수 역시 골키퍼와 함께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는 포지션이라는 것만 알아줬으면 한다. Q. 수비수라면 ‘영원한 리베로’ 홍명보 선수를 닮고 싶어 한다. 닮고 싶은 선수가 있는가? 그 이유는? A. 흔히 수비수이기 때문에 홍명보 선수를 닮고 싶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아직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TV를 많이 보는 편이 아니라 선수 이름을 잘 알지 못하지만 굳이 꼽는다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리오 퍼디낸드 선수를 닮고 싶다. 퍼디낸드의 수비를 보고 있으면 반할 정도로 완벽하다. Q. 내년부터 J-리그에서 실시하는 아시아쿼터제의 수혜를 받고 싶은 생각은 없나? A. 선수라면 누구나 해외진출을 꿈꾼다. 기회가 닿는다면 J-리그에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일단 부상에서 회복해 제주 전력에 보탬이 되는 선수가 되고 싶다. 조건들이 맞는다면, 내 축구인생을 제주에 바칠 생각도 있다. 미완성의 팀을 최고의 팀으로 만드는데 일조하고 싶다. Q. 팀 내에서 가장 많이 도움을 주는 선수는 누구인가? 그 이유는? A. 이정호 선수다. 그라운드에서의 성실함은 물론 후배들을 잘 챙겨준다. 특히 밝은 성격을 가져 서슴없이 다가가 조언을 구하는데 어려움이 없다. 항상 나에게 좋은 것만 알려 주려고 노력한다. Q. 브라질 출신 감독과의 호흡은 어떤가? A. 다정다감한 분이며 선수들에게 많이 다가서려고 노력하신다. 단지 의사소통에서 바로바로 전달이 되지 않는 답답함이 있지만, 항상 웃으면서 선수들을 격려하신다. Q. 휴시시간에는 주로 무엇을 하나? 좋아하는 음식은? A. 잠이 많다. 하루에 잠으로 12시간을 소비한다. 식사 후에는 약간의 온라인 컴퓨터 게임을 즐기기도 한다. 특별히 가리는 음식이 없는 식충 스타일이다. 그래도 먹는 거에 비해 살이 찌지 않아 다행이다. Q. 얼굴이 잘생겼다. 여자친구는 있는가? A. 고등학교 때부터 축구에만 빠져 살아 여자친구가 없었다. 소개 좀 시켜 달라.(웃음) 이상형은 제주도에 있기 때문에 자주 보지 못해도 이해해 줄 수 있고, 착한 여성분이었으면 좋겠다. Q. 앞으로 어떤 선수가 되고 싶은가? A. 포항 스틸러스의 김기동 같은 선배님처럼 장수할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철저한 몸관리가 중요할 것이다. 어느 팀에서 뛰든 내 한계가 다하는 날까지 그라운드에서 뛰고 싶다. Q. 내년 시즌에 대한 각오는? A. 내년 시즌 부상을 당하지 않는 것이 첫 번째 목표이고, 내가 가진 능력을 그라운드에서 전부 쏟아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단지 이 것 뿐이다. 제주(서귀포)=김진회 기자 manu35@donga.com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