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현희,딱한번만우상베잘리를꺾는다면.

입력 2009-05-17 17:4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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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현희. [스포츠동아DB]

2000년, SK텔레콤그랑프리. 한체대 1학년이던 남현희(28·서울시청·세계랭킹2위)는 펜싱여왕의 경기를 처음으로 보게 됐다. 스텝부터가 한국선수와 달랐다. 그렇게 발렌티나 베잘리(35·이탈리아·세계랭킹1위)는 남현희의 우상이 됐다.

최고가 되고 싶었다. 정박자이면서 딱딱한 한국식 스텝 대신, 엇박자이면서도 부드러운 베잘리의 스텝을 따라하기 시작했다. 남의 것이 내 것이 되기까지, 시행착오도 있었다. 주변에서는 “키가 작아서…, 슬럼프가 와서…”라고 수군거렸다. 그래도 “내가 배우면 그만”이라고 마음을 단단히 동여맸다.

지도자들은 “남현희는 학습능력이 남다르다”고 입을 모은다. 한 번 진 선수에게는 여간해서는 다시 지지 않는다. 연구하는 자세는 예리한 검이 되어 단신(154cm)의 핸디캡을 찔렀다. 2009SK텔레콤 국제그랑프리 펜싱선수권에서도 그랬다.

16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펜싱경기장에서 열린 여자플뢰레개인전 결승. 남현희는 3월 폴란드에서 열린 그랑프리 대회에서 패배를 안겼던, 이탈리아의 신예 아리아나 에리고(21·세계랭킹6위)를 15-3으로 제압했다. 공격적인 에리고의 성향을 파악해, 더 공격적으로 맞불을 놓은 것이 주효했다. 하지만 베잘리가 8강에서 탈락하는 바람에 ‘우상’과의 맞대결은 무산됐다.

패배를 통해 배우는 남현희지만, 아직 개인전에서는 베잘리를 이긴 적이 없다. 베이징올림픽 이후 3전 전패. 올림픽금메달만 5개를 획득한 베잘리는 역시 세계최고였다.

베잘리와의 대결이 부각되는 탓에 남현희가 받는 스트레스는 상당하다. 남현희는 “주변에서 결과만을 놓고 얘기해 솔직히 부담도 크다”면서 “베잘리를 한 번도 못이기는 선수라는 말을 듣기 싫어서라도 한 번은 이기고 싶다”고 했다.

문제는 자신감 획득. 남현희는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른 선수들 간의 대결에서는 ‘내가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승부를 가른다”면서 “아직도 (우상이었던) 베잘리를 만나면 주눅 드는 부분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래서 단 한번의 승리는 1승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남현희는 “한 번만 이긴다면, 많이 달라질 수 있을 것 같다”면서 “한 걸음씩 다가선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며 웃었다. 남현희는 19일, 러시아그랑프리 참가 차 출국한다. 베잘리 역시 이 대회에 출전한다.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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