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떠나는김호를슬프게하는것들

입력 2009-06-26 07:3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축구가 종교였고, 축구가 삶이었던 김호 대전 감독이 결국 해임됐다. 떠나는 노장의 마지막 모습은 초라하기만 했다. 그런 탓인지 뒷맛이 개운치가 않다. 25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정준수 임시 대표이사가 밝힌 바에 따르면 대전구단 이사회는 12일 비공식 간담회를 통해 감독-구단 간 불협화음 등에 대해 논의했다고 했다. 이 자리에서 부득이하게 송규수 전 사장도 물러나고, 김 감독도 함께 물러나는 게 대전이 잘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이사회가 ‘성적부진’을 이유로 김 감독이 자진사퇴를 해야 한다고 밝힌 것이 불과 며칠 전 얘기인데, 이는 거짓말이었던 셈이다. 22일 긴급 이사회가 끝났을 때 사퇴 이유를 명확히 하지 못한 것이 잘못이요, 애써 ‘성적부진’으로 몰아간 거짓말도 잘못이요, 설령 그렇더라도 성적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제시 못한 것 또한 잘못이다. 이사회가 얼마나 큰 권한을 가진 집단인지는 몰라도 대전 축구단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김 감독의 뒤통수를 쳐도 너무 세게 쳤다는 느낌이다. 스스로 명예로운 은퇴를 택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배려도 못한 구단을 앞으로 어떤 감독이 믿고 지휘봉을 잡을 수 있겠는가.

내홍이 판을 쳤던 2007시즌 후반기에 부임한 이후 거의 무너진 팀을 정비, 6강 플레이오프까지 진입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대전시로부터 ‘명예시민증’까지 받았던 김 감독이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잘 나갈 때는 앞장서다가 불리해지면 어느 순간 발을 빼는 이사회의 모습에 한숨이 나올 뿐이다. 김 감독은 “난 경영자가 아니다. 일평생 축구에 전념해온 사람에게 자꾸 외부에서 다른 소리를 하더라. 이사회에서 ‘성적부진’을 거론하는데 납득할 수 없었다. 수차례 팀에 필요한 것을 전달했는데도 이사회는 확인조차 하지 않더라”고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이 말은 이사회도 직무유기를 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정 임시 대표이사에 따르면 이사회는 구단의 최고 의결기관으로 가장 강력한 의사결정 기구라고 했다. 김 감독에게 해임을 통보할 때, 송규수 사장의 사표를 수리한 것에 대해선 “이사회가 함부로 권한을 휘두르는 게 아니다. 뼈를 깎는 고민 끝에 결정하는 사안”이라고 했다. 하지만 벤치와 프런트의 갈등이 감독-사장 동반퇴진으로까지 이어진 것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성찰은 보이지 않았다. 정말로 ‘뼈를 깎는’ 아픔을 ‘권한만 있고, 책임은 없는’ 이사회가 느끼고 있는지 한 번 되묻고 싶다.

[스포츠부]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