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종목 아니다”선수층 얇아
오늘 최강 러시아와 금 놓고 한판
“한국에서는 어디 은메달을 쳐주니? 너희가 못해봐라. ‘역시 그럴 줄 알았다’고 할 것 아니냐. 찬밥신세 면하려면 무조건 금메달을 따야 돼. 금메달!”
야속한 이야기였지만 현실이었다. 여자 컴파운드 대표팀 신현종(50·청원군청) 감독은 선수들이 나태해질 때마다 매몰차게 다그쳤다. 그녀들의 가슴 속에도 오기가 꿈틀거렸다. 7일 울산 문수국제양궁장에서 열린 제45회 세계양궁선수권. 마침내 꿈이 성큼 다가왔다. 컴파운드대표팀은 여자단체전 4강에서 멕시코를 226-224로 꺾고 결승에 진출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신 감독은 “경험이 많은 서정희(24·청원군청)를 1번, 석지현(19·한국체대)을 2번, 활을 놓는 타이밍이 다소 긴 권오향(23·울산남구청)을 3번에 배치했는데 잘 맞아떨어졌다”고 밝혔다. 감독의 지략과 선수들의 독기가 만들어낸 쾌거. 석지현은 “사람들은 양궁이라고 하면 리커브 뿐인 줄 안다”며 서운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리커브는 올림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활. 리커브와 달리, 컴파운드는 활의 양 끝에 도르래가 달려있다. 활시위를 당기기가 더 쉽고, 정확도도 높다. 동호인들이 즐기기에는 안성맞춤. 미국, 프랑스, 스페인 등지에서는 이미 수 만 명이 즐기는 대중 스포츠다.
하지만 엘리트 스포츠를 중시하는 한국에서는 아직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정식종목이 아니라는 이유로 선수 층이 얇다. 대한양궁협회에 따르면 여자등록선수는 대학·일반부를 합해도 18명. 신 감독은 “그나마도 이 가운데 소속팀을 갖고 있는 직업 선수는 5명에 불과하다”고 했다. 여자리커브(137명) 등록선수와는 큰 격차. 신 감독은 “우선, 전국체전에서 정식종목으로라도 채택되면, 선수수급에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했다.
여자컴파운드대표들은 모두 리커브에서 전향했다. 서정희와 권오향은 입문 4년차. 석지현은 이제 겨우 1년차다. 세계 최고의 한국 리커브. 활을 쏘는 것이 좋았지만 그녀들의 자리는 없었다. 더 큰 성공을 위해 내린 결단. 그녀들은 도르래를 타고 블루오션으로 향했다.
“처음에는 지도자도, 장비도 부족하고 모든 게 힘들었어요.” 한 세트에 300만원 씩 하는 장비는 그나마 모두 수입품. 장비구입부터 훈련까지, 모든 것이 만만치 않았다. 권오향은 “편하게 운동하는 외국 선수들이 너무 부러웠다”고 했다. 이제 남은 것은 8일 세계최강 러시아와 맞붙는 결승 뿐. 서정희는 “우리는 그간 굶주려 왔고, 여전히 배가 고프다”는 말로 결승전에 임하는 각오를 대신했다.
울산|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