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다이어리]두산까지녹인정근우‘명랑바이러스’

입력 2009-10-13 0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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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PM의 ‘10점 만점에 10점’을 클럽하우스에서 흥얼거립니다. 플레이오프(PO) 4차전에서 자신의 플레이가 완벽했다는 ‘자랑’입니다. 문학구장에 나오자마자 제일 먼저 배팅케이지로 나가더니 버럭 소리를 지릅니다. “피처, 어딨어∼?” 좌중은 뒤집어집니다. ‘지면 탈락’인 PO 5차전을 하루 앞둔 훈련장의 경직된 분위기가 일순간에 풀어집니다.

SK 정근우의 ‘센스’는 플레이어로서, 그리고 벤치 분위기메이커로서 다면적으로 발휘됩니다. 캡틴 김재현이 과묵한 카리스마로 선수들의 기강을 잡는다면, 정근우는 이진영(LG로 갔죠), 이호준(그럴 여유가 없죠)이 공백인 ‘엔돌핀 바이러스’로서 팀 케미스트리의 균형을 잡아줍니다.

정근우의 유쾌함은 이젠 SK 내부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PO의 적군, 두산 선수단까지 침투한 형국입니다. 4차전부터 ‘드디어’ 출루를 시작한 정근우는 도루로 2루에 닿으면 두산 2루수 고영민, 중견수 이종욱 등과 틈만 나면 수다를 떱니다. 타도할 적이기에 앞서 베이징올림픽, WBC의 전우로서 먼저 본능이 움직이는 것이겠죠. 2살 위인 이종욱을 보고 “마우스피스는 왜 꼈냐?”고 면박(?)을 줍니다. 이종욱이 “너 왜 아까 내 안타성 타구 잡았어?”라고 따지면 “형은 왜 어제 (정)상호 타구 잡고 그래?”라고 받아칩니다.

정근우가 2루 수비를 볼 땐, 두산 1루주자들이 더블플레이를 막기 위해 필사적인 슬라이딩을 감행합니다. 그러나 발이 몸에 닿지도 않았는데 김현수는 아웃이 된 뒤에도 “형, 안 다쳤냐?”고 먼저 걱정해 준답니다.

하나 더. 11일 PO 4차전, 두산 리드오프 이종욱이 SK 윤길현의 볼에 맞고 순간 발끈했지요. 윤길현은 곧바로 손을 살짝 들어 사과 제스처를 취했고, 이종욱도 받아들였죠. 지난 2년에 걸친 한국시리즈 같았으면 벤치 클리어링을 불사할 상황이었겠죠?

걸작은 이종욱이 곧이어 2루로 진루했을 때입니다. 정근우가 슬쩍 오더니 “형, 맞힐 상황이 아니었잖아?”라고 ‘SK 대변인’처럼 해명합니다. 어쩐지 얄밉지 않은 정근우가 말하니 이종욱도 수긍할 수밖에요.

누군가는 PO를 축제라 하지만 당사자는 사생결단의 전쟁입니다. 그러나 정근우 같은 선수가 있기에 PO 전쟁은 순수하고 명랑합니다.

문학 |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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