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율화의 더 팬] 노장 선수 파이팅!

입력 2011-10-21 07: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열 손가락 깨물어 안아픈 손가락은 없다지만 유난히 아픈 손가락은 있게 마련이다. 내 경우에는 각 팀의 노장선수들이 그러한데 이유는 몇 해 전, 아버지와 야구에 얽힌 추억 덕분이다.

아버지는 5년 전에 정년퇴직을 하셨다. 남들 다 겪는 일이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건만 그 상실감과 자괴감은 상상 이상이었던지 하루가 다르게 기력이 떨어지고 우울해하셨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아직 기량이 왕성한데 이제는 사회가 더 이상 당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그리도 괴로우셨던 듯 하다. 흰머리가 늘어가고 목소리까지 변해가는 아버지는 내게도 충격이었지만 정작 해드릴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좋아하시는 야구를 봐드리는 것 밖에는….

때마침 2006년은 류현진이 데뷔하고 송진우가 200승을 거두었으며 한화 이글스가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믿어지지 않는) 해였기 때문에 우리 부녀의 화제는 무궁무진 끊일 줄을 몰랐다. 당시 아버지와 내가 나눈 대화의 8할은 야구와 이글스였고 나머지 2할은 “너는 아침에 나갈 일터가 있어 좋겠다.” 뭐 이런 얘기였던 듯 하다.

그렇게 함께 본 야구가 내게는 그깟 공놀이였지만, 아버지에게는 인생이자 힘이고 용기였다는 사실을 안 건 한국시리즈가 끝나고 며칠 후였다.

소주를 기울이며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우리 팀의 나이 많은 선수들을 보며 힘이 난다고. 야구선수로는 환갑도 더 지난 송진우가 보란 듯이 200승을 거두고, 30대 후반인 구대성이 상대팀 젊은 투수들에 맞서 당당하게 싸우는 걸 보면, 나도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생긴다고…. 순간 울컥하며 눈시울이 뜨거웠다. 아버지가 그런 생각을 하시는 것도 모르고, 이 팀은 너무 나이가 많다고 불평했던 내 철없음이 부끄럽고 죄송했다.

얼마 후 아버지는 모 공사에 재취업을 하셨다. KTX를 타고 출퇴근하셔야 하는 불편을 내가 염려하자 걸어서라도 갈 수 있다며 웃으셨고, 젊은 직원들과 어울리는데 야구만큼 좋은 화제가 없더라며 즐거워하신다.

아버지에게 힘을 준 전설들이 은퇴할 때 한걸음에 달려와 박수를 치셨고, 지금도 나이 많은 선수들이 훌륭한 플레이를 선보일 때면, 쥐도 늙은 쥐가 더 현명한 법이라고 기뻐하신다.

나이가 들어가면 자연히 체력이 떨어지고 기력이 쇠하지만, 그에 비례해서 경험과 연륜이 늘어난다. 그것은 기술이나 체력 못지않게 값진 자산이며, 때로 생각지도 못한 누군가에게 힘과 용기를 주기도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는 우리의 노장 선수들에게 파이팅을 외친다.

구율화 여성 열혈 야구팬·변호사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