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한국판 루키’ 최은철의 도전…”반드시 ML 마운드 오를 것”

입력 2012-01-09 15:3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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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티모어와 계약을 맺은 최은철이 체력훈련을 하고 있다. 동아닷컴 DB

야구팬이라면 영화 ‘루키(The Rookie)’를 한 번쯤 봤을 것이다. 메이저리그 최고령 신인투수였던 짐 모리스(Morris)의 실제 이야기를 소재로 2002년 제작된 이 영화는 눈물이 절로 나게 하는 감동적인 스토리를 담고 있다.

간단하게 내용을 소개하면 모리스는 어려서부터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오르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19살 되던 해 그는 당당히 1차 지명으로 밀워키 브루어스에 입단했다. 하지만 팔꿈치와 어깨부상으로 마이너리그 싱글 A팀을 벗어나지 못하고 25살 되던 해인 1989년 야구를 접고 일반인으로 돌아갔다.

고등학교 화학선생으로 변신한 모리스는 학교 야구부 코치를 겸임하면서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미련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러던 중 제자들의 권유에 못 이겨 참가한 프로야구입단 테스트에서 무려 98마일(157km)의 강속구를 던져 템파베이 데블 레이스(지금의 레이스(Rays)) 산하 더블 A팀에 입단하게 됐다.

이때가 1999년으로 그의 나이 35세 되던 해 봄이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18일, 그는 메이저리그 텍사스 구장 마운드에 올라 결국 자신의 꿈을 이뤄내고 만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킨 ‘짐 모리스의 기적’이 다시 한 번 펼쳐질지 모른다. 게다가 그 주인공은 한국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 무명의 한국야구선수가 단숨에 미 프로야구 더블 A팀에 입단했다. 이름은 최은철(28). 그의 이름을 아는 야구팬은 극히 드물 것이다.

모리스가 다시 선수생활을 시작했을 때보다 젊긴 하지만 최은철은 한국 내 정규야구팀에서 뛴 경험이 없는 무명 선수이다. 선수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경력이 부족하다. 그런 그가 미 프로야구 더블 A팀에 입단했다는 것은 마치, 정규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이 독학으로 고시를 패스한 것만큼이나 대단한 일이다.

소위 야구 좀 한다는 유망주가 더블 A에 오르려면 보통 3~4년의 시간이 걸릴 만큼 더블 A는 야구 엘리트 만이 입성할 수 있는 좁은 문이다. 어릴 적부터 뛰어난 재능을 자랑했던 추신수, 이학주도 미 프로야구 진출 3~4년 만에 더블 A에 올랐을 정도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왜 볼티모어 구단은 무명에 가까운 최은철과 계약을 체결 했을까. 지금부터 그가 걸어온 길을 문답형으로 소개한다.


-체격이 좋은 것 같다. 키와 몸무게는?
키 188cm에 몸무게 100kg이다. 나쁘지 않은 신체조건이다.

-한국에서 야구선수로 뛴 경험이 없다는 것이 사실인가.
그렇다. 초등학교시절부터 야구에 관심은 있었으나 부모님의 반대로 야구를 할 수 없었다. 대구상고에 진학해 뒤늦게 야구부에 들어갔으나 단체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2개월 만에 야구부에서 나왔다.

-그런데 어떻게 다시 야구 공을 잡게 됐나?
우연히 TV에서 고등학교 친구 안지만(삼성)의 경기를 보고 잊었던 야구에 대한 열정이 되살아났다. 지만이를 통해 알게 된 지인의 소개로 2003년 말 세계사이버대학 야구팀에 들어가 다시 야구공을 잡았다.

-한국에서 선수생활을 할 기회가 있었을 텐데 어떻게 미국까지 오게 됐나?
2004년 초 대만으로 전지훈련을 갔는데 의욕이 앞서 어깨 부상을 입고 수술대에 올랐다. 힘든 재활을 거쳐 국내 프로야구 입단 테스트를 목표로 훈련하던 중 다시 팔꿈치 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을 당했다. 2006년 6월까지 또 한 번의 재활기간을 가졌다. 야구선수가 되고 싶은 꿈을 포기할 수 없어 선린상고에서 운동을 하다 지금은 작고하신 심형식씨를 만나 그 분의 지도와 권유 하에 2007년 1월 미국에 오게 됐다.

-고 심형식씨는 누구인가?
넥센 히어로즈 투수 심수창의 큰 아버지로 당시 시카고 화이트 삭스(White Sox) 한국담당 스카우트로 활동하셨다. 그 분의 가르침과 도움이 매우 컸다.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

최은철의 도전은 멈추지 않는다. 동아닷컴 DB


-2007년 1월 미국에 온 후의 일들을 알려달라.
미국 프로팀과 입단 계약을 맺으려고 했다. 입단 테스트 후 그럴 예정이었다. 테스트 결과도 좋았다. 그런데 일이 틀어지려고 그랬는지 지금은 없어졌지만 당시에는 메이저리그 팀마다 외국선수를 위해 발행하는 비자(Visa) 수 제한이 있었다. 그래서 비자 여분이 생길 때까지 계약을 미루고 독립리그에서 뛰기로 했다. 그런데 또다시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그 해 6월 팔 부상을 당해 2008년 8월까지 미국에 머물며 혼자 재활과 치료에 매달렸다.

-1년이 넘는 재활기간이다. 2008년 8월까지 재활한 뒤 어떻게 됐나?
미국 독립리그에서 뛰다 2009년 초 한국에 들어가 한화와 SK에서 프로입단 테스트를 받았다. 하지만 낙방했고 그해 7월 뉴욕으로 건너와 미국 독립리그 중 가장 권위 있는 애틀란타리그에 참가하기 위해 훈련을 하던 중 계단에서 넘어져 다시 팔꿈치 부상을 당했다. 이 부상이 예상보다 심각했다. 2010년 4월까지 팔을 못쓸 정도의 큰 부상이었다.

-야구를 시작한 뒤 큰 부상을 여러 번 겪었다.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나?
당연히 있었다. 긴 재활기간을 여러 번 겪으면서 정말 힘들었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하면 내 인생 전체를 포기하는 것 같다는 생각에 일어서고 또 일어섰다. 절대 내 꿈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다 지난 일이지만 그때는 정말 암담했다.

-부상을 극복하고 다시 공을 뿌릴 수 있었던 것은 언제부터인가?
LA로 건너가 2년 가까이 재활하며 우연히 어린 한국 야구선수 둘을 지도하게 됐다. 당시 중학생 신분이었던 그들이 처음엔 67마일 정도 밖에 던지지 못했는데 3개월 지도 후 86마일까지 던지더라. 그래서 선수생활을 접고 투수코치를 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 한국학생들을 데리고 교육차 방문한 멕시코에서 팔도 좋아졌고, 멕시코리그 단장으로부터 자기네 리그에서 뛰어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2010년 9월에 멕시코로 넘어가 그곳 윈터리그에서 뛰었다. 총 7게임에 등판 3승 1패 평균자책점 2.10의 성적을 기록했다. 뭔가 일이 잘 풀리나 싶었는데 또 다시 문제가 생겼다. 부상은 아니었다. 멕시코리그는 미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 운영하는 곳으로 트리플 A 수준이다. 그래서 기대를 많이 하고 있었는데 내가 입단하려던 팀이 1월에 재정문제로 해체되는 바람에 기회가 날아갔다. 그러던 중 주변의 권유로 한국에 나가 지난 6월에 NC 다이노스에서 입단테스트를 받았다. 구속도 146km 이상 나오고 나름 잘 던졌지만 또 떨어졌다.

-상심이 컸을 텐데.
그렇다. 하지만, ‘다 내가 부족했기 때문이다’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잡고 지난 7월에 미국으로 돌아왔다. 멕시코리그에서 뛰기 위해 팀을 알아보던 중 메이저리그 진출을 모색하던 정대현 선배의 통역 일을 맡게 됐다. 그게 인연이 되어 볼티모어 단장 댄 듀켓을 만나게 됐고 레이라는 에이전트가 내 기록과 동영상을 듀켓 단장에게 보여주며 추천해 극적으로 오리올스와 더블 A팀 계약을 하게 됐다.

-볼티모어와 계약을 하기까지의 과정이 한 편의 영화와 같다. 힘들게 선수생활을 하게 됐는데 선수로서의 목표는 무엇인가.
올 시즌 부상없이 한 게임 한 게임 최선을 다해 무사히 시즌을 마치는 게 1차 목표다. 언젠가는 반드시 메이저리그 마운드에 올라 내 꿈도 이루고, 많은 사람들에게 ‘하면 된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LA | 동아닷컴 이상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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