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end Interview]박희영-박주영 “골프채만 잡으면 한마음”

입력 2012-02-04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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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생 박주영(오른쪽)이 언니 박희영이 지켜보는 가운데 퍼팅 연습을 하고 있다. 골드코스트(호주 퀸즐랜드 주) | 주영로 기자 na1872@donga.com 트위터@na1872

프로골퍼 자매의 특별한 골프이야기
언니 박희영이 말하는 동생 박주영
고집 센 동생과 어렸을땐 많이 싸웠지만,
지금은 영원한 골프 동반자…올핸 너의 무대야!

동생 박주영이 말하는 언니 박희영
언니 옷 뺏어 입는 철부지 동생이지만,
언니의 LPGA 95전96기 우승 너무 자랑스러워!

지난해 미 LPGA투어 최종전 타이틀 홀더스 대회에서 95전 96기만에 첫 승을 올린 박희영(25·하나금융그룹)은 우승 뒤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이를 지켜본 동생 박주영(22·호반건설)에게도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3일 호주 골드코스트에서 열리고 있는 유럽여자프로골프투어 RACV 레이디스 마스터스에 박희영-박주영 자매가 출전해 2012년 첫 경기를 함께 치르고 있다.


○멀리뛰기 선수하다 언니 따라 골프선수

“저는 원래 육상 선수였어요. 언니가 골프선수였는데, 아빠가 저를 데리고 골프장에 자주 가셨죠. 그때마다 언니의 하얀 양말 자국이 부러웠어요. 진짜 운동선수 같았거든요. 그런데 이젠 그 하얀 자국이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멀리뛰기 선수였던 동생 박주영은 경기도 대표를 할 정도로 소질이 있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가 언니의 뒤를 이어 골프채를 잡게 했다. “저는 테니스를 배우고 싶었어요. 아빠가 테니스 선수 출신이시거든요. 그런데 아빠는 테니스를 하지 말고 골프를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아빠 생각엔 테니스 보다 골프가 좀 더 미래가 있다고 보셨던 것 같아요.”

이들 자매는 세 살 터울이다. 박희영이 초등학교 4학년 때 먼저 골프채를 잡았다. 동생 주영은 그 보다 한 참 뒤인 중학교 2학년 때 골프를 시작했다. 당연히 먼저 골프를 시작한 언니의 성적이 좋았다. 박희영은 주니어시절 국가대표로 뛸 만큼 촉망받는 유망주였다. 프로무대에서도 승승장구했다. 국내 투어 시절엔 최나연, 송보배, 신지애 등과 함께 우승을 다퉜다.

동생 박주영은 언니의 그늘에 가렸다. 실력도 언니만큼은 아니었다. 주니어 시절 크게 주목받지 못했고, 2008년 프로가 된 이후에도 아직껏 우승이 없다. 잘 나가는 언니가 샘이 날 법도 하다. 하지만 다행히 자매는 둘도 없는 동반자이자 훌륭한 멘토와 멘티가 됐다.

박주영은 “언니는 나에게 조언을 많이 해 줘요. 경험이 많으니 코스에서 어떻게 플레이해야 하는지 또 위기 상황에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려주죠”라면서 “대신 저는 언니가 미국에서 혼자 생활하니까 외롭지 않게 힘을 불어넣어주고 자신감을 가지라고 응원해줘요”라고 말했다.

대회가 열리는 첫날(2일)에도 박희영과 주영 자매는 연습 그린에서 함께 퍼트 연습을 했다. 늘 그랬듯이 이번에도 언니가 뒤에서 봐주고 동생이 퍼트했다. 동생에게 언니는 든든한 버팀목이고, 언니에게 동생은 천군만마보다 더한 지원자다.

박희영(왼쪽)·박주영 자매. 골드코스트(호주 퀸즐랜드 주) | 주영로 기자 na1872@donga.com 트위터@na1872



○언니 옷 많이 뺏어 입었죠

둘의 성격은 전혀 다르다. 박희영이 조용하고 침착한 스타일이라면 주영은 주관이 뚜렷하고 고집이 세다. 이런 성격은 골프에서도 그대로 나온다. 박주영은 “언니는 침착하고 경기가 잘 풀리지 않아도 잘 참는 편이죠. 또 시키면 시키는 대로 다 받아들이는 스타일이에요. 그런데 저는 그렇지 않죠. 고집이 세고 내 스타일대로 플레이하는 편이에요”라고 말했다.

생활 모습도 전혀 다르다. 미국에서 혼자 생활하는 박희영은 집안을 꾸미고 쇼핑하는 걸 좋아한다. 집을 꾸민 뒤에는 꼭 동생에게 사진을 찍어 보낸다. 주영은 그런 언니의 생활이 “좀 희한해요”라며 웃었다.

성격 탓에 어려서는 자주 티격태격했다.

박주영은 “어려서는 언니랑 싸우는 일도 많았어요. 이유 없이 그랬죠. 그러다 골프를 하면서 사이가 좋아졌어요”라고 털어놓았다.

언니는 골프를, 동생은 육상을 했기에 어린 시절에도 함께 보낸 시간이 적었다. 그러다 보니 거리감이 생겼고 싸우는 일도 잦았다. 그러다 동생이 언니를 따라 골프를 하면서 사이가 좋아졌다. 골프라는 공감대 덕분이다.

박주영은 “제가 골프를 하기 전에는 공통된 게 거의 없었어요. 그러다 골프를 하면서 서로 의지하는 일이 많아졌죠. 이해하지 못했던 언니의 말도 이해하게 됐고, 경기 후 잘 안 됐던 부분에 대해 서로 터놓고 얘기하는 일이 많아졌어요”라고 말했다. 성격으로 보면 꼼꼼한 언니는 아빠를 닮았고, 자신은 엄마를 그대로 빼닮았다는 게 박주영의 설명이다.

성격은 다르지만 취향은 비슷하다. 자매끼리 쇼핑을 가면 고르는 옷도 비슷하다. 박주영은 “옷가게를 가서 내가 선택한 옷을 언니도 같이 선택하는 일이 많았어요. 그래서 언니 옷을 제가 많이 뺏어 입는 편이죠”라며 웃었다.


○언니 이어 이번엔 내 차례


언니 박희영의 우승은 가족 모두 기다렸다. 2011년 미 LPGA 투어 시즌 마지막 대회였다. 96번째 도전 만에 첫 우승을 한 박희영은 4년 동안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우승 뒤 “어머니와 통화했는데 말없이 울기만 하셨다”며 또 울먹였다. 동생 박주영도 언니의 우승을 그 누구보다 기다렸다. “우승하기 전날 언니에게 전화했어요. ‘마음 편하게 갖고 경기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힘을 불어넣어줬죠. 그러고는 다음날 우승했어요.”

미LPGA 투어 데뷔 96경기 만에 기록한 감격적인 우승이다. 누구보다 박희영 자신이 더 기다렸던 우승이었겠지만 동생에게도 언니의 우승은 기쁜 일이었다.

늘 언니의 그늘에 가려있었던 동생도 어느덧 당당한 프로가 됐고, 이제는 가끔씩 언니보다 좋은 성적을 낼 때도 있다.

RACV 호주 레이디스 마스터스에서 자매의 희비가 엇갈렸다. 이번에는 언니의 성적이 좋지 못했다. 동생은 본선에 진출했지만 언니는 컷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처음 있는 일이다. 박주영은 “언니와 함께 경기에 나선 게 이번이 네 번째다. 언니보다 좋은 성적을 낸 게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며 멋쩍어했다.

늦게 경기를 끝내고 돌아온 박희영은 “오늘은 제가 떨어졌으니 동생이 잘 쳤으면 좋겠어요. 내일 10언더파를 줄여서 우승했으면 좋겠어요”라며 동생을 응원했다.

지금은 서로 다른 무대에서 뛰고 있지만 자매가 함께 미LPGA 투어에서 우승 경쟁을 펼칠 날도 멀지 않아 보인다. 4년 만에 우승컵을 들어올린 언니의 모습을 지켜 본 동생은 “이번에는 내 차례”라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박희영

○출생: 1987년 5월 24일 ○신체: 169cm, 58kg ○학력사항: 한영외고- 연세대 ○소속팀: 하나금융그룹 ○데뷔: 2004년 KLPGA 입회 ○수상내역: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 신인상(2005)/LPGA투어 CME그룹 타이틀홀더스 우승 (2011)

박주영


○출생: 1990년 10월 24일 ○신체: 171cm ○학력사항: 한영외고 ○소속팀: 호반건설 ○데뷔: 2008년 KLPGA 입회

골드코스트(호주 퀸즐랜드 주) | 주영로 기자 na187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na18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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