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성의 감독운, 로또 안부럽네

입력 2012-07-1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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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 사진출처=QPR홈페이지

교토 시절 무명의 박지성 중용한 엥겔스
제자에게 유럽의 문 열어준 스승 히딩크
전설 퍼거슨과 맨유서 수많은 우승신화
퍼거슨의 제자 휴즈, 박지성 지원군 자처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좋은 짝이 없다면 시너지 효과를 내기 힘들다. 그런 면에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퀸즈파크레인저스(QPR)로 이적한 박지성(31)은 운이 좋았다. 훌륭한 스승들을 만났다. 박지성과 감독의 궁합을 살펴봤다.


○성장 - 헤르트 엥겔스

무명이던 2000년 6월, 박지성은 교토 상가(일본)로 진출했다. 프로 데뷔와 성장의 시작이었다. 인연을 맺은 이는 동독 출신의 헤르트 엥겔스(55) 감독. 그는 요코하마 플뤼겔스(1998년), 제프 이치하라(1999년)를 거친 뒤 교토 상가에서 이력의 정점을 찍었다.

“어쩌다 뽑은 게 아니다. 이름은 잘 알려지지 않았어도 박지성은 진짜 선수였다. 90년대 중후반, 많은 한국 스타들이 J리그를 거치며 한국 축구에 대한 인식이 좋아졌는데 박지성도 ‘좋은 스타’ 자질이 있었다.”(2011년 1월 카타르 아시안컵 당시)

엥겔스가 2000년부터 2003년까지 교토 상가를 이끈 동안 박지성은 2002년 12월까지 한솥밥을 먹었고, 76경기 11골로 발군의 기량을 과시했다.


○도약 - 거스 히딩크

거스 히딩크(66) 감독은 그의 성공적인 도약을 이끌었다. 박지성은 히딩크 감독과 2000년부터 2002년 여름까지 대표팀에서 함께 했다. 한일월드컵에서 한국 축구가 4강 신화를 썼을 때 모든 포커스가 둘에게 맞춰졌다. 인연은 유럽까지 이어졌다. 월드컵에서 박지성의 퍼포먼스를 잊지 못했던 히딩크 감독은 2003년 초 자신이 지휘봉을 잡았던 PSV에인트호벤(네덜란드)으로 서둘러 제자를 불러들였다. 기대는 100% 충족됐다. 박지성은 2004∼2005시즌까지 네덜란드 무대를 누빈 동안 정규리그 2회 우승,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4강 등 깊은 족적을 남겼다. 히딩크 감독은 최근에도 박지성에게 러브 콜을 보내는 등 끈끈한 사제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정착 - 알렉스 퍼거슨

박지성은 2005∼2006시즌 맨유에 입단했다. 알렉스 퍼거슨(71) 감독은 쉽게 다가설 수 없는 인물. 강렬한 카리스마로 슈퍼스타들을 휘둘렀지만 박지성은 예외였다. 한 때 ‘유니폼 판매용’으로 평가절하된 그는 특유의 성실함으로 퍼거슨 감독에게 존재를 알렸다. 7시즌 간 뛰면서 리그 우승 4회, 챔피언스리그 1회 우승을 경험했다. 극심한 생존경쟁에서 아시아 선수가 살아남는 길을 제시한 건 바로 박지성이었다. 박지성의 QPR행이 확정된 날, 맨유는 공식 홈페이지를 온통 박지성 스페셜로 장식했다. “진짜 프로였다. 늘 최고의 플레이로 팀을 위해 헌신했다. 그가 원한 만큼 기회를 더 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퍼거슨 감독의 작별 인사는 박지성이 확실히 유럽 빅 리그, 빅 클럽에 ‘정착’했음을 보여준다.


○도전 - 마크 휴즈

QPR 마크 휴즈(49) 감독. 아직은 물음표다. 힌트는 있다. 휴즈 감독이 퍼거슨 감독의 애제자라는 사실이다. 웨일즈 출신으로 맨유 유스팀에서 맨유 스타로 자리 잡으며 누구보다 퍼거슨 감독을 잘 따랐고, 이해했다. 노장의 독한 승부사 기질을 휴즈 감독도 물려받았다. 그런 휴즈 감독이 방한해 직접 선수와 면담하는 정성을 보였으니 박지성과 엇박자를 낼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여기에 ‘절실함’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둘이 처한 상황이다. 박지성은 지난 시즌 맨유에서 출전에 목이 말랐다. 휴즈 감독도 성공이 고프다. 선수 이력은 화려했지만 블랙번, 풀럼, 맨시티 등을 이끈 사령탑으로는 딱히 보여준 게 없다. 지난 시즌 QPR의 1부 리그 잔류가 거의 유일한 족적이다. 박지성은 휴즈 감독에게 천군만마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yoshik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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