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포용병 잡을 A급투수가 없다

입력 2014-05-08 06: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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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투저’에 투수들이 울고 있다. 시즌 초반 홈런 돌풍을 몰고 온 LG 조쉬벨(사진)을 비롯한 외국인타자의 가세와 타자들의 기량향상 등으로 경기당 평균득점이 10.73점까지 올라갔다. 이 현상은 시즌 후반까지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바야흐로 ‘타격의 시대’로 치닫고 있다. 스포츠동아DB

■ 올시즌 극심한 타고투저 현상 왜?

1. 외국인 타자·국내 타자 기량 향상
2. 버틸수 있는 ‘A급 투수’ 절대 부족
3. 오심논란속 좁아진 스트라이크존
4. 퇴장부담…투수들 몸쪽승부 꺼려


투수들이 견디지 못한다. 홈런은 여기저기서 폭발하고, 경기당 10득점 이상 쏟아내는 팀이 속출하고 있다. 5∼6점을 앞서고 있어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 2014시즌 프로야구는 극심한 ‘타고투저(打高投低)’로 진행되고 있다. 한마디로 ‘타격의 시대’로 치닫고 있다.


● 기록으로 드러나는 심각한 타고투저 현상

‘타고투저’ 현상은 확연하다. 기록이 말해주고 있다. 6일까지 기록을 집계한 결과 올 시즌 총 126경기가 진행됐는데, 경기당 평균 득점(양 팀 득점 합계)은 10.73점이다. 다시 말해 팀별로 한 경기에서 평균 5.37점을 뽑아내고 있다. 지난해와 비교해보자. 같은 경기수(126)를 치른 5월 9일까지 경기당 평균 득점은 9.37점, 팀당 평균 득점은 4.68점이었다. 지난 시즌 전체 기록도 경기당 9.29점, 팀당 4.65점으로 비슷하게 나왔다. 한마디로 5점을 얻으면 지난해에는 이겼지만, 올해는 패한다는 의미다.

두산은 6일 사직구장에서 10점을 뽑고도 졌다. 롯데가 19점이나 생산했기 때문이다. 특히 롯데는 사상 최초로 3이닝(1회∼3회) 연속 타자일순을 기록하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7일엔 한 술 더 떴다. NC는 목동에서 6회까지만 경기를 하고도 넥센에 24-5로 이겼다. 양 팀 합계 29점이 터졌다. 이날 사직과 잠실 경기도 10점 이상이 나왔다. 가장 점수가 적은 경기가 문학으로 9점(삼성 5-4 SK)이었다.

한 팀이 10점 이상 뽑는 경기도 이제 그리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6일까지 소화한 팀별 경기수를 합산하면 252경기(126경기×2)인데, 팀별로 경기당 10점 이상 기록한 것은 총 30회였다. 무려 12%에 이른다. 지난해 같은 시점에서는 8%(252경기 중 20회)였고, 지난 시즌 전체로 봐도 팀당 10득점 이상 경기의 비율은 전체 경기수의 7%였다.

지난해에도 ‘타고투저’라 했지만, 올해는 각종 지표에서 이보다 더 심화되고 있다. 시즌 평균 타율은 2012년 0.258에서 지난해 0.268로 오르더니 올해는 0.281로 치솟았다. 예년 같으면 팀타율 1위에 해당할 법한 2할8푼이 올해는 중간치밖에 안 된다는 뜻이다. 평균 방어율은 2012년 3.82에서 지난해 4.32로, 올해 4.78로 껑충껑충 뛰어올랐다. 특히 홈런수는 폭발적이다. 올 시즌 경기당 홈런수는 1.74개로 지난해 같은 경기수를 소화한 시점(1.17개)보다 무려 49%나 증가했다. 홈런수 증가는 선수단이나 팬들에게 타고투저의 체감지수를 높이고 있다.


● 투수가 타자를 이기지 못하는 시대

당연한 얘기지만, 올 시즌 타고투저가 극심한 것은 투수들이 타자들을 이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역시절 다양한 변화구로 타자를 압도해 ‘팔색조’라는 별명이 붙었던 LG 조계현 수석코치(감독대행)는 7일 잠실 한화전을 앞두고 “갈수록 투수가 타자를 이길 수 없다. 타자들의 기량향상 속도를 투수가 따라가지 못한다. 투수는 개발할 수 있는 구종의 한계가 있다. 한국뿐만 아니라 요즘 일본프로야구나 메이저리그도 마찬가지다”고 설명했다. 여기에다 최근 류현진 윤석민 오승환 등 특급투수들이 해외에 빠져나가는 상황에서 압도적인 특급투수의 출현이 더딘 것도 타고투저 현상을 부채질하고 있다. 올해부터 외국인타자들이 가세해 각 팀 방망이는 한층 더 업그레이드됐다. 팀마다 A급 투수는 그나마 살아남지만 B급 투수들은 뭇매를 맞고 있다. 에이스급 투수가 무너지면 다른 투수가 방망이를 당하지 못해 대량실점이 속출하고 있다.


● 투수에게 더욱 불리해지는 주변 환경

경기력뿐 아니라 주변 환경도 갈수록 투수들에게 불리해지고 있다. 우선 심판의 스트라이크존이 좁아졌다. TV 중계방송 기술의 발달로 TV 화면에 스트라이크존이 고스란히 나타난다. 과거엔 경기가 일방적으로 흐르면 주심이 ‘원활한 경기 진행’을 위해 유연하게 스트라이크존을 넓혀서 보기도 했지만, 요즘엔 이런 시도조차 하기 어렵다. 당장 ‘오심논란’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또한 선수들의 태도도 달라졌다. FA(프리에이전트) 등으로 몸값이 폭등하면서 승부가 사실상 결정 난 경기에서도 과거와는 달리 자신에게 주어진 타석 하나도 허투루 보내지 않는다. 안타 하나라도 더 때리려고 달려드는 것이 최근의 분위기다.

여기에다 올 시즌부터 투수가 직구를 던지다 타자 머리에 맞으면 고의성 여부와는 상관없이 퇴장하도록 만든 인위적인 규정 신설도 투수들에게 운신의 폭을 줄이고 있다. 투수는 몸쪽 높은 공과 바깥쪽 낮은 공, 바깥쪽 높은공과 몸쪽 낮은 공을 대각선으로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투구전술의 기본이지만, 자칫 타자 머리에 투구가 맞으면 퇴장을 당할 수 있기 때문에 타자를 타석에서 멀리 떨어뜨리기 위한 몸쪽 높은 공(가슴 부위 위쪽)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타자들은 이제 투수가 이 코스에 던지지 못한다는 점을 알고 더욱 적극적으로 타석 안쪽을 파고들고 있다. 그러면서 투수의 바깥쪽 승부마저 어려워지고 있다.

이제 전체 일정의 약 21%를 소화했다. 그러나 야구계는 극심한 타고투저가 시즌 초반의 일시적인 현상에 그치지 않고 시즌 내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keystone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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