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건영통신원의 네버엔딩스토리] “내 어깨 이상있다”…스타우퍼의 양심고백 큰 울림

입력 2014-07-01 06: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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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샌디에이고 스윙맨 스타우퍼의 야구인생

대학 평정 후 ML행…계약금 260만달러 러브콜
심각한 어깨부상 감지…구단 직접 찾아가 고백
감명받은 구단주 75만달러 사이닝 보너스 건네

이후 부상 악재로 10년간 마이너→메이저 오가
작년 5월 다시 부활…스윙맨으로 새로운 도전

연봉에 비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를 일컬어 ‘먹튀’라는 표현을 종종 쓴다. 여러 케이스가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선수로 LA 다저스에서 박찬호와 한솥밥을 먹었던 대런 드라이포트를 꼽을 수 있다.

2000시즌 후 다저스는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의 계략에 말려들어 드라이포트에게 ‘5년 5500만 달러(약 556억600만 원)’라는 초특급 대우를 하며 재계약을 체결했다. 팔꿈치 전력이 있는 데다 당시 39승45패의 성적을 남긴 투수에게 이 같은 연봉 대박을 안긴 것이다. 그러나 드라이포트는 이후 9승15패의 초라한 전적을 추가하고 은퇴했다. 연봉 대박 후 1승당 611만 달러(약 61억8000만 원)를 번 셈이었다.

실력이 돈으로 직결되는 프로 스포츠에서 이런 폐해는 늘 발생하는 일이다. 하지만 천문학적인 돈을 챙기고 그에 걸맞은 성적을 내지 못한 채 팬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간 먹튀들과는 달리 ‘메이저리그의 양심 냉장고’라 칭할 만한 선수가 있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우완 투수 팀 스타우퍼(32)가 그 주인공이다.

● 대학야구 최고의 스타…2년 연속 ‘올 아메리칸’ 팀에

스타우퍼(32)는 고등학교 시절 야구 외에도 농구, 축구, 골프 등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버지니아주에 있는 리치먼드대학으로 진학한 그는 선발투수로 51경기에 출전해 31승13패(방어율 2.16)의 탁월한 성적을 올렸다. 특히 2001년에는 13차례나 완투하며 15승을 따냈고, 시즌 도중 무려 11연승이나 거두며 대학 야구를 평정했다. 지금도 리치먼드대학 역사상 최다 탈삼진(362) 기록도 그의 차지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선발로 나선 45경기 중 53.3%인 24경기를 혼자 책임졌고, 삼진과 볼넷의 비율이 4.7대1이나 됐다는 점이다.

2001년과 2002년 ‘올 아메리칸’ 팀에 2년 연속 선정된 것을 눈여겨 본 파드리스 구단은 2003년 신인드래프트에서 전체 4번으로 스타우퍼를 명했다. 리치먼드대학은 물론 ‘애틀랜틱 10 콘퍼런스’ 역사상 최초로 메이저리그 1라운드에 지명되는 신기원이 이뤄진 것이다.


● 돈보다는 양심…“내 어깨에 이상 있다” 거액 계약금 제시한 구단에 고백

그러나 대학 3년 동안 어깨를 너무 혹사시킨 것이 스타우퍼의 발목을 잡았다. 신인드래프트에서 1라운드에 지명됐다는 기쁨도 잠시, 자기공명영상(MRI) 촬영 결과 어깨에 이상이 있다는 점을 알게 된 스타우퍼는 깊은 갈등에 빠졌다. 파드리스 구단이 제시한 계약금은 무려 260만 달러. 고심 끝에 스타우퍼는 파드리스 구단을 직접 찾아가 자신의 어깨가 정상이 아니라는 점을 고백했다.

그의 정직함에 감명을 받은 파드리스 구단은 계약을 포기하지 않고 75만 달러를 사이닝 보너스로 건넸다. 양심을 지키는 대가로 185만 달러라는 큰 금액을 포기한 셈. 빌 게이튼 당시 파드리스 스카우트 담당 이사는 “사실 어깨에 이상이 생긴 것을 굳이 알리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는데 스타우퍼와 그의 에이전트가 보여준 진실함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 초고속 승격 그리고 강등의 아픔

2003년을 통째로 쉬며 재활에 매달린 스타우퍼는 이듬해 싱글A에서 시즌을 시작해 트리플A까지 승격했다. 2005년 5월 11일 트리플A에서 콜업된 스타우퍼는 신시내티 레즈전에 선발로 출전한 메이저리그 데뷔전에서 6이닝 2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되는 기쁨을 맛봤다. 그러나 빅리그는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3승6패(방어율 5.33)로 부진을 보이자 7월말 다시 트리플A로 강등되는 아픔을 겪었다.

2006년부터 2년 동안 줄곧 트리플A에서 뛴 그는 파드리스 선발진에 결원이 생겼을 때 가끔 빅리그의 부름을 받았다. 그러나 ‘확실하게 눈도장을 찍어야만 마이너리그로 다시 내려가지 않는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제 실력을 발휘하기가 쉽지 않았다.

2006년 딱 한 차례 선발로 출전해 6이닝 2실점으로 승리를 따냈지만 더 이상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이듬해에는 두 차례 선발로 나서 7.2이닝 동안 무려 18안타를 허용하며 12실점(10자책점)으로 난타를 당했다. 결국 시즌 후 어깨 수술을 받은 스타우퍼는 2008시즌을 또 건너뛰어야 했다.


● 불운의 아이콘

2009년 더블A에서 시즌을 맞은 그는 7월 12일 기어코 빅리그로 복귀했다. 후반기 들어 14경기에서 선발 기회를 잡아 4승7패(방어율 3.58)를 기록하며 가능성을 보였다. 불펜 보직을 받은 2010년 9경기에서 방어율 0.49를 기록하는 눈부신 피칭을 선보이자 케빈 코레이라를 대신해 5월 10일 선발로 출전했다. 그러나 이틀 뒤 급성 맹장염에 걸려 두 달 동안 부상자 명단에 등재됐다. 9월에 다시 복귀한 그는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마당쇠처럼 팀을 위해 헌신한 끝에 총 82.2이닝을 던져 6승5패(방어율 1.85)로 시즌을 마쳤다.


● 개막전 선발

2011년은 생애 최고의 시즌이 됐다. 투수라면 누구나 꿈꾸는 개막전 선발의 중책이 맡겨졌다. 파드리스 선발 로테이션을 이끌며 31경기에 선발로 출전했다. 그러나 허약한 파드리스 타선의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해 9승12패(방어율 3.73)에 그쳐 10승 고지 등정에 실패했다. 온갖 고생 끝에 풀타임 빅리거로 자리 잡은 것처럼 보였지만 또 다시 시련이 찾아왔다. 2012년에도 개막전 선발로 예정됐지만 스프링캠프 도중 팔꿈치 통증이 온 것. 결국 5월에 딱 한 차례 선발로 등판하고 시즌을 접어야 했다. 8월에 수술대에 오르자 파드리스 구단은 냉정하게도 그를 방출했다. 2년 사이 천당과 지옥을 모두 경험한 것이다.


● 부활을 꿈꾸는 이유

어깨와 팔꿈치 부상 전력이 있는 그에게 FA가 된 것은 아무 의미 없는 일이었다. 결국 스타우퍼는 2013년 1월 파드리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체결했다. 트리플A에서 예전 기량을 선보이자 5월 18일 다시 메이저리그로 복귀하는 감격을 누렸다. 비록 자신이 원하는 선발은 아니었지만 롱릴리프로서 주어진 임무에 최선을 다했다. 43경기 중 1이닝 이상을 소화한 것은 22차례나 됐다. 69,2이닝을 던져 삼진을 64개 잡아내며 3승1패(방어율 3.75)의 성적을 올리자 파드리스 구단은 1년 160만 달러의 조건으로 재계약을 체결했다.

3년 만에 풀타임 메이저리거가 된 올 시즌 스타우퍼는 22경기(3선발)에 출전해 2승2패(방어율 3.96)를 기록하며 파드리스 투수진의 스윙맨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대학야구 최고의 스타로 군림하다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를 오가는 평범한 투수가 됐지만 돈보다는 양심을 앞세우고 팀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 때문에 파드리스 팬들은 늘 아낌없는 성원을 스타우퍼에게 보내고 있다.

LA|손건영 스포츠동아 미국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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