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국의 야구여행] ‘표정 리더십’의 시대…감독의 표정도 전략이다

입력 2015-09-11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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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 리더십’의 시대다. 2008년 한 네티즌이 한화 김인식 감독의 표정 변화를 총 16장의 사진에 재치 있게 담아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감독의 표정도 이젠 전략이자 전력이다.

과거 김인식 무표정 화제…우천취소 때나 미소
김기태 “요즘 선수들 감독 표정에 상처 받기도”
김경문 사탕 오물거리고 류중일 얼굴만 빨개져

보는 사람마다 배꼽을 잡았다. 그러고 보니 벌써 7년 전. 2008년 한 네티즌의 ‘작품’ 하나가 인터넷을 돌며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가로 세로 4장씩, 총 16장의 사진을 앨범처럼 엮었다. 당시 한화 사령탑이던 김인식 감독의 얼굴 표정 변화를 키워드별로 기막히게 묘사해놓았다.

안타=무표정, 홈런=무표정, 도루=무표정, 삼진=무표정, 이김=무표정, 연패=무표정, …. 평소 포커페이스를 잘 유지하는 김 감독의 특징을 절묘하게 살렸다. 모두 무표정하면 재미가 반감됐을 터. 그래서 그런지 재치있게 포인트를 뒀다. 부진에 빠져 있던 ‘클락’과 ‘추승우’가 등장하는 대목에는 찡그린 표정을, ‘우천취소’와 ‘류현진’이 나오는 대목에는 소박한 미소를 담았다. 압권은 마지막 ‘오리고기’였다. 사복을 입고 활짝 웃는 표정에는 고민 한 점 없는 행복감이 묻어났다. 2004년 말 뇌경색으로 쓰러진 김 감독이 평소 불포화지방산이 풍부한 오리고기를 즐겨먹는다는 점에 착안해 센스 있게 표현해냈다. 당사자인 김 감독도 궁금했는지 “한번 보자”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표정(表情). 사전적 의미는 ‘마음속에 품은 감정이나 정서 따위의 심리 상태가 겉으로 드러남. 또는 그런 모습’이다. 그렇다. 요즘 사람들은 리더의 표정에 주목한다. 특히 프로야구 5경기가 모두 TV로 생중계되는 시대, 감독들의 표정은 쉽게 간파 당한다. 카메라는 쉴 새 없이 심리 상태를 캐치하기 위해 그들의 표정에 포커스를 맞춘다. 기뻐할 만한 상황, 화가 날 만한 상황, 짜증날 만한 상황, …. 감독들은 괴로워하지만, 방송사로선 시시각각 변하는 감독들의 표정은 팬들을 위해 놓칠 수 없는 콘텐츠다.

올 시즌 10개 구단 감독들은 대부분 ‘포커페이스’를 잘 유지한다. 표정이나 행동에 감정을 솔직하게 표출하는 감독은 드물다. 다만 감독도 사람인지라 3∼4시간 이어지는 경기에서 감정을 오롯이 숨길 수는 없다. 특히 화가 날 때 나타나는 특징들이 있다. 1위를 질주하는 삼성 류중일 감독은 2011년 취임 이후 지금까지 선수들에게 큰 소리 한 번 낸 적 없는 인내심 많은 사령탑이다. 그러나 속에 불이 나는 상황은 언제든 발생한다. 그럴 때면 귀부터 빨개진 다음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류 감독은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TV를 볼 때 귀부터 살핀다고 하더라”며 웃는다. 2위 NC 김경문 감독은 화가 날 땐 입이 동그랗게 모아지는 버릇이 있다. 김 감독은 이에 대해 “사탕을 입에 넣고 화가 날 때 오물거리다보니 입이 모아지게 된다”고 소개한 뒤 “예전엔 감독 옆에 수석코치를 벽처럼 세워두고 카메라를 피하기도 했는데, 요즘은 카메라가 많아져서 반대쪽이나 외야에서 줌으로 당겨 피할 도리가 없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팬들뿐 아니라 선수들도 언제든 경기를 다시 볼 수 있는 시대다. 스포츠전문채널에선 다음날까지 프로야구 재방송을 하고,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가면 다시보기 기능으로 원하는 장면만을 찾아볼 수도 있다. KIA 김기태 감독은 “감독이 눈 한번 찡긋 하면 선수단 전체가 긴장할 수도 있다”며 “요즘은 마음이 여린 선수들이 많다. 감독 표정 하나에 용기를 얻고 상처를 받는다. 표정 관리도 전략적으로 잘해야 한다. 가족들도 TV 중계를 통해 감독의 표정을 본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실제로 한 선수는 “경기 후 집에서 인터넷으로 내 플레이를 찾아보는데, 감독이 내가 실수하는 장면에서 비웃는 표정을 짓더라”며 서운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런 일이 잦아지면 선수들은 진심으로 감독을 따르기 어렵다.

리더의 표정은 구성원들의 마음을 여러 갈래로 움직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감독의 표정도 이제 ‘전략’이자, ‘전력’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 감독들이 챙길 것도 많고, 신경 쓸 것도 많은 시대다.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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