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축구협회 정몽규 전 회장. 스포츠동아DB
다분히 ‘의도적’으로 축구 실력을 물었다. 볼을 찰 일이 많진 않겠지만, 한국축구의 수장이라면 좋든 싫든 가끔은 축구화를 신고 나서야 할 일도 있게 마련이다.
-정몽준 전 대한축구협회장처럼 축구를 잘하시나요? 어느 포지션이 적성에 맞던가요?
“가끔 하는데 잘하진 못합니다. 오른쪽 윙백을 하면서 뒤에서 도와주는 역할을 주로 합니다.”
그보다 열한 살 위의 사촌형인 정몽준 전 회장은 주로 스트라이커를 맡았다. 국회의원 시절에는 한일의원연맹을 주도하며 친선경기를 자주 주선할 정도로 축구를 즐겼다. 물론 이를 둘러싼 우스갯소리도 빼놓을 수 없다. ‘정 회장이 볼을 잡으면 상대 수비수가 죄다 제 풀에 쓰러진다’든가, ‘정 회장이 속한 팀의 축구인들은 몽땅 도우미가 된다’든가 하는 얘기다. 물론 눈으로 확인한 정몽준 전 회장의 축구실력은 상당했다. 어찌됐건 정몽준 전 회장은 2002한·일월드컵 전격 유치와 성공적 개최,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을 비롯한 왕성한 대외활동 등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듯 축구 스트라이커처럼 공격적이었다.
그러니 정몽규 전 회장이 오른쪽 윙백, 즉 수비수를 주로 맡는다니 조금은 생경했다. 축구협회 직원에게 슬쩍 물어본 결과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 직원은 “굉장히 차분하고, 뒤(수비)에서 열심히 지원한다”고 ‘증언’했다.
이번에는 축구와 경영활동 외의 일상적 관심사를 물었다. 역시 다소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무척 바쁘실 텐데, 시간이 날 때면 주로 무얼 하시죠? 또 축구협회를 비롯한 체육단체 운영이 경영활동에 도움 되는 부분이 있나요?
“시간이 나면 책을 많이 읽고 싶고, 욕심도 있습니다. 외국서적까지는 못보고 한국어로 번역된 서적을 주로 읽습니다. 요즘은 외국 베스트셀러도 빨리빨리 번역돼 나와서 많이 읽는 편입니다. 협회 운영과 회사 경영은 서로 많은 도움이 됩니다. 회사의 문제점이 축구를 통해서 더 분명하게 보이는 경우도 많고, 축구에 있어서도 ‘경영적 마인드를 가지면 더 좋지 않겠나’하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부분이 개인적으로도 많이 도움이 됩니다.”
정몽규 전 회장에게서 얼마 전 유발 하라리 교수(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의 명저 ‘사피엔스’를 선물 받아 열심히 탐독한 적이 있다. 정 전 회장은 축구협회 임직원들에게도 수시로 책을 선물한다. 이에 익숙하지 않았던 일부 직원들은 ‘어느 날 갑자기 회장님이 호출해 독서 테스트를 하면 어쩌지’라며 난감해하기도 했다고 한다. 물론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당연한 소리겠지만, 정 전 회장도 업무차 해외출장이 잦다. 그럴 때면 꼭 책을 들고 비행기에 오른다는 것이 그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해온 이들의 한결같은 전언이다.
정재우 스포츠1부장 jac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