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하인드베이스볼] 감독님의 휴대폰은 안녕하십니까?

입력 2017-09-01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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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조원우 감독-SK 트레이 힐만 감독. 스포츠동아DB

세상에 전문가가 전문가 행세를 못 하는 분야가 두 가지 있다. 정치와 야구다. 정치학 박사라도 어지간한 한국 국민과 정치 토론을 해서 이기기 힘들 것이다. 마찬가지로 명색이 프로야구 감독임에도 이름 앞에 ‘돌’자를 붙이기 주저하지 않는 이가 야구팬들이다.

감독이 피곤해지는 것은 필연이다. 야구장 밖에 나가서도 사생활 노출은 불가피하다. 이러다보니 감독들도 일상을 지키기 위해 ‘보신책’을 마련하지 않을 수 없다.


●감독들은 휴대폰에서 어떻게 자유로워질까?
롯데 조원우 감독은 저장하지 않는 번호가 휴대폰 화면에 뜨면 아예 받질 않는다. 최소한의 자기방어다. 번호를 바꿔도 집요하게도, 기어코 알아내는 팬들이 있다. 새벽 시간에 뜬금없이 전화가 걸려올 때도 잦다. 이제는 아예 ‘전화테러’에 내성이 생겼다.

베테랑 감독들 중 몇몇은 거의 모든 전화를 일단 안 받는다. 그 이후에 ‘선별적으로’ 콜백을 해준다. 휴대폰이 두 대인 감독도 있다. 특히 경기가 없는 월요일에는 ‘비공식 개인 폰’만이 활동한다.

외국인인 SK 트레이 힐만 감독은 비교적 ‘휴대폰 공포’에서 자유롭다. ‘언어의 장벽’이 이럴 때에는 도움이 된다. 힐만 감독은 사무적 용도 외에는 미국과의 국제통화가 아무래도 많은 편이라고 한다. 월요일에는 통역의 도움을 받지 않고, 주로 혼자 지낸다. 통역에게도 휴일을 주려는 배려와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은 욕구가 혼재된 셈이다. 힐만 감독은 의외로 내향적이어서 SK가 숙소를 제공한 인천 송도 바깥으로 좀처럼 나가지 않는다. 아직 변변한 한국 여행을 해본 적이 없다.

워낙 많은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이는 삶을 보내는 탓인지, 감독들은 예상보다 혼자서 보내는 시간을 즐긴다. 두산 김태형 감독은 틈만 나면 개와 노는 것이 낙이다. KIA 김기태 감독도 방안에서 와인과 함께 음악을 들으며 사색을 즐긴다. NC 김경문 감독 역시 칩거형에 가깝다. 감독의 지위란, 누구를 만나는 것조차도 정치행위일 수 있기에 절제하는 것이다.


●피곤은 기본, 위협은 옵션
양승호 전 롯데 감독은 취임 초기에 사람들을 피해 다녔다. 부임 초반 성적이 안 좋아 위해의 위협을 느낀 탓이다. 이 당시, 양 감독은 몸에 사표를 지니고 다녔다. 가족들까지 스트레스가 극심했다. 선동열 전 KIA 감독 역시 재계약을 해놓고도 자진사퇴를 했었다. 재계약에 반발한 일부 팬들의 실력 행사에 가족들이 시달리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감독직을 수행하려면 사람을 안 만날 수 없다. 특히 감독은 경기가 끝나는 심야시간대에 움직일 수밖에 없다. 의외로 유니폼을 벗으면 감독들을 잘 알아보지 못하는 이가 많다. 또 알아봐도 호의적으로 다가오는 팬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팀 상황이 안 좋으면 밤에 자리를 갖는 것조차 오해를 받기 일쑤다. 일단 ‘찍히면’ 해명은 너무 피곤한 일이 된다.

그래서 대개의 감독들은 자신만의 ‘아지트’가 있다. 단골식당에 밀실과 같은 방을 선호한다. 감독직은 명예롭지만 고충이 따른다. 그럼에도 이 자리를 탐내는 사람은 너무 많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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