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길의 스포츠에세이] 꾸준한 일본축구가 부럽다

입력 2017-09-05 15: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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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를 꺾고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한 일본.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한국과 일본의 축구 정기전이 처음 열린 때는 1972년이다.

1971년 9월 치른 뮌헨올림픽 아시아 예선에서 한국과 일본이 말레이시아에 나란히 패한 것이 정기전을 만든 계기로 전해진다. 지금이야 말레이시아의 축구 실력이 우습게 보일지 모르지만 당시에는 한국을 많이 괴롭혔던, 결코 얕잡아 볼 수 없었던 다크호스였다.

한국은 뮌헨올림픽 예선에서 우세한 경기를 하고도 0-1로 패하면서 큰 충격에 휩싸였다. 이 쓰라린 패배가 해방 이후 일본대표팀의 입국조차 불허했던 한국을 변하게 했다. 식민지배의 아픔 때문에 적대적인 감정을 가졌지만 상호 축구발전을 위해서는 협조하고, 유대관계를 강화하는 게 필요하다는 판단이 선 것이다. 정기전의 첫 번째 경기는 1972년 9월 14일 일본 도쿄에서 열렸는데, 결과는 2-2로 비겼다.

사실 정기전 이전까지 일본축구는 한국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1954년 스위스월드컵 최종예선에서 1승1무를 기록하는 등 매번 중요한 경기에서는 한국이 웃었다. 정기전 이전까지 모두 20차례의 A매치(국가대표팀 간 경기)가 열렸는데, 한국이 11승6무3패로 크게 앞섰다.

스위스 월드컵 예선전 당시 한일전 모습. 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당시 한국 선수들은 일본만 만나면 눈에 불을 켰다. 축구 원로들은 “한일전은 축구가 아니라 전쟁이었다”고 회상한다. 현역시절 일본에 유독 강했던 차범근은 “우리의 역사적인 상황 때문에 한일전 결과는 언제나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 민족의 아픔을 가중시킬 수 있었기 때문에 한일전은 특별히 전략이 필요한 게 아니고 정신무장이 강조되는 경기였다”고 했다.

정기전은 라이벌전으로 가는 길을 열었다는데 의의가 있다. 선의의 경쟁을 통해 상호 축구발전을 꾀한 맞수의 시대를 연 것이다.

그렇다고 양국의 실력이 갑자기 비등해진 것은 아니다. 객관적인 전력에서는 여전히 한국이 우위였다. 한국은 1986멕시코월드컵을 통해 1954년 스위스 대회 이후 32년 만에 본선진출의 숙원을 푼 반면 일본은 여전히 월드컵 본선과는 거리가 있었다.

1994미국월드컵 본선 티켓을 아깝게 한국에 내주며 피눈물을 흘렸던 일본이 사상 처음으로 본선에 오른 건 1998프랑스월드컵이다. 아시아 최종예선 B조에서 한국에 밀려 조 2위를 했지만 단판 승부로 치러진 플레이오프(PO)에서 이란을 연장 골든 골로 물리치고 감격의 본선티켓을 거머쥐었다.

한일 정기전이 시작된 이후 26년만이었다.

이 기간 동안 한국은 상대전적에서 25승10무7패로 크게 앞서 여전히 일본이 두려워한 존재였다. 아울러 한국은 프랑스월드컵까지 4회 연속 본선진출을 이루면서 아시아의 절대 강자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2000년대 들면서 양 국간의 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한국과 일본의 전력은 우열을 가리기 힘든 박빙으로 접어들었다. 1993년에 출범한 프로축구 J리그의 안정된 운영과 팬들의 관심 속에 일본축구는 빠르게 성장했다. 물론 공동 개최된 2002한일월드컵에서 한국은 4강에 오르고, 일본이 16강에 머문 것이 묘한 대비가 되긴 했지만 그 이후 두 팀의 실력차는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은 평행선을 그었다.

한일월드컵을 기점으로 진정한 라이벌 시대를 열었다고 볼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은 아시아에 주어진 월드컵 본선티켓을 빼놓지 않고 챙기면서 엎치락뒤치락했다. 일본은 한국이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을 이룬 2010남아공월드컵에서 똑같이 16강에 진출하며 맞불을 놓았다. 일본은 네덜란드, 덴마크, 카메룬을 상대로 조 2위(2승1패)로 16강에 오르는 성과를 만들었다.

삿포로에서 열린 한일전 모습.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16강 토너먼트에서 파라과이에 승부차기 끝에 패했지만 세계무대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던 무대였다. 일본은 2014브라질월드컵까지 5회 연속 본선에 올랐다. 2000년 이후 한국과 일본의 A매치 성적은 4승7무4패로 팽팽하다. 하지만 최근 5경기만 놓고 보면 일본의 절대적인 우위다. 한국은 3무2패로 단 한번도 이기지 못했다. 맞수라고 하기엔 조금 민망한 기록이다. 2010년 5월 24일 열린 친선경기 승리(2-0)가 마지막이었다.

한동안 지속되던 균형추가 일본 쪽으로 많이 기운 형국이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에서도 한국은 49위, 일본은 44위다. 2018러시아월드컵 최종예선을 치르면서 균형추가 더 기운 건 아닌 지 우려스럽다.

조 추첨 당시만 해도 한국이 속한 A조가 훨씬 수월할 것으로 전망됐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한국은 초반부터 난관에 부딪혀 휘청거린 반면 일본은 첫 경기 UAE전 패배의 충격을 딛고 이후 순항을 거듭했고, 결국 최종전을 남겨두고 조 1위와 본선행을 확정했다. 일본은 8월 31일 열린 최종예선 9차전에서 호주를 2-0으로 물리치면서 6승2무1패 승점 20으로 6회 연속 월드컵 본선진출에 성공했다.

눈에 띄는 건 보스니아 출신의 바히드 할릴호지치 감독의 용병술이었다. 중차대한 경기에서 해외파 가가와 신지(도르트문트), 오카자키 신지(레스터시티), 혼다 케이스케(CF파추카) 등 경험이 풍부한 선수들 대신 20대 초반의 신예들을 기용하면서 승리를 일궈낸 점은 주목할만하다.

일본 할릴호지치 감독.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일본축구의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살려낸 용병술이었다. 끊임없는 경질론 속에서도 팀 내 주전경쟁을 시키며 팀을 단련했고, 뚝심으로 본선 티켓을 따낸 할릴호지치 감독은 재신임을 받았다. 지금 일본은 축제 분위기다. 러시아월드컵을 통해 또 한번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한 나라의 축구 전력은 들쑥날쑥하기 마련이다. 언제나 좋을 수만은 없다. 한국이 2002년에 4강에 들었지만 지금 4강 수준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중요한 건 가장 좋았을 때의 전력을 유지하려는 자세와 노력이다. 감독의 리더십, 선수단의 원활한 세대교체, 축구협회의 지원, 팬들의 성원 등이 한데 어우러져야만 비로소 최상의 전력을 유지할 수 있고, 나아가 점진적인 발전도 가능해진다.

이런 관점에서 한국축구는 어땠는지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부러워하면 지는 거라는데, 그래도 점진적으로 나아가는 일본축구가 부러운 건 어쩔 수 없다.

최현길 전문기자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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